▲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9월부터 신규 입국하는 고용허가제(E-9) 이주노동자는 일정한 권역 안에서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해진다. 동일 업종이라면 지역에 관계없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지금보다 이주노동자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38회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외국인 근로자 숙식비, 사업장 변경 및 주거환경 관련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조선업은 해당 업종에서만 이동 가능
사업주 내국인 구인 노력 의무는 완화

내용을 보면 개선방안이라기보다는 뒷걸음질에 가깝다. 정부는 “수도권 등으로의 인력 이동에 따른 심각한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해 그동안은 업종 내에서 전국적 이동이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수도권, 충청권, 전라·제주권과 같은 일정한 권역과 업종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달 내에 정부 지침과 전산을 개편해 9월 신규 입국자부터 동의를 받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현행보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방안을 이미 입국해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는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과 같은 인력난이 심각한 업종은 세부 업종 안에서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게 했다.

반면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를 더 쉽게 고용할 수 있게 했다. 입국 초기 사용자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면 7~14일간의 내국인 구인노력을 하지 않고도 외국인력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상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은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 또는 갱신 거절시 허용된다. 특히 휴업·폐업·고용허가 취소, 고용제한, 관련법령을 위반한 기숙자 제공,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같은 외국인 근로자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때 가능하다.

“지역소멸 대응에 이주노동자가 왜 희생하나”

이런 현행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도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런데 이번 정부 결정은 사업장 변경을 더욱 제약한다는 지적이다.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기존 사업장변경 제도도 이주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비판해 왔는데, 이번에는 지역에 제한을 둬 거주이전의 자유까지 제한한다”며 “조선업 업종 제한은 이주노동자의 이탈을 도리어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이주노동자는 사용자 귀책 없이는 애초에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며 “사용자 귀책이 없는데도 사업장 변경을 할 경우 내국인 구직기간을 삭제해 주겠다는 정책은 말이 안 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지역소멸 대응에 왜 이주노동자가 희생해야 하는지, 산업의 논리로만 정책이 뒤범벅됐다”고 덧붙였다.

박영아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이주노동자가 재취업할 때 거주이전의 자유까지 제한하겠다고 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필요해 보인다”며 “권역 제한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 외에 무슨 근거와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사업주에 인센티브 제공 위주
주거환경 개선도 기대 못 미쳐

정부가 이날 발표한 숙식비 기준과 주거환경 개선에 관한 정책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노동부 지침에 따라 사업주는 월 통상임금의 8~20%를 숙소비 명목으로 공제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지역 시세를 반영해 공제할 수 있게 했다. 지역 시세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국토교통부가 제공한 지역 내 부동산 실거래가를 참고해 지방노동관서의 권익보호협의회가 정기적으로 제시한다.

이와 함께 하나의 숙소를 공동 사용하는 경우 숙소비의 여러 노동자가 공동부담하도록 했다.

이날 발표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대책은 사용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형태의 방안이 주를 이뤘다. 공공기숙사를 설치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장별 고용한도를 상향하는 식이다. 또 우수기숙사를 인증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정영섭 활동가는 “통상임금 대비 일정 퍼센트로 징수하던 것을 권익보호협의회에서 정한다는 것은 앞으로 두고 봐야 할 문제”라며 “방별로 숙식비를 징수한다는 점에서는 약간 나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노동계의 가설건축물 금지 요구나 숙식비 임금 공제금지 원칙은 하나도 안 받아들여졌다”고 꼬집었다.

최정규 변호사는 “인력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산업인력 구조개편의 문제, 노동권 문제에서 경제문제로 점차 번져 가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강예슬·정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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