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노동자가 직장내 괴롭힘과 지속적인 사직 강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면 ‘진의(속에 품고 있는 참뜻)’에 따른 의사표시가 아니므로 부당해고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회사의 일방적 의사에 따라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 것이라는 취지다.

대표이사 비서, 2년 만에 영업보조로 변경
모욕적 언행에 비품 미지급, 휴가 뒤 사직

1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송각엽 부장판사)는 광주광역시의 철강업체인 K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30)씨는 2020년 2월 K사에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비서로 일했다. 그런데 회사는 1년10개월이 흐른 2021년 12월부터 사직을 권고하기 시작했다. 사직 종용은 지난해 3월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같은해 2월에는 A씨 업무를 ‘영업보조’로 바꿨다.

A씨는 끊임없이 대표이사의 괴롭힘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이사와 이사는 수시로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일삼았다. A씨에게 영업보조를 맡기고선 전화기와 컴퓨터 등 비품을 주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도 A씨는 계속 일하겠다고 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지난해 3월24일 사직의사를 전달하고 5일 뒤 사직서를 냈다. 3월29일부터 4월15일까지 연차휴가를 신청했고, 회사는 그해 4월16일 퇴사처리했다. 하지만 A씨는 사직서에 ‘지속적인 사직 강요와 직장내 괴롭힘’을 사유로 적었다.

A씨는 노동위원회로 달려갔다.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를 인정하며 회사가 서면통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중노위도 초심을 유지하자 회사는 소송을 냈다. 사측은 “A씨가 청년내일채움공제의 만기일까지만 근무하고 사직하겠다고 해서 영업보조 자리를 만들었다”며 “사직일을 4월16일로 정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므로 ‘비진의의사표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원 “근무 의사 분명한데 일방적 해고”

법원은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는 회사의 지속적인 사직 종용과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해 사직 의사가 없음에도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라며 “회사가 이를 수리해 퇴직처리한 것은 원고 회사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으로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표이사가 직접 사직을 종용하고, A씨가 사직하지 않자 직장내 괴롭힘을 자행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회사도 사직서가 진정한 의사로 제출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며 “A씨가 계속 근무할 의사가 분명했는데,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사직처리를 한 것은 사직 종용과 직장내 괴롭힘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대표이사의 아들인 상무는 ‘계속 근무하라고 권유했지만 사직의사가 확정적이었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상무는 대표이사 아들이므로 중립적인 진술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대표이사가 사직을 종용하고 괴롭히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한 차례 이 같은 말을 했다고 해서 회사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근로계약관계가 종료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주장한 청년내일채움공제와 관련한 사정도 부수적인 이유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A씨를 대리한 지하림 변호사(법무법인 이평)는 “비록 노동자가 사직서를 제출했더라도 직장내 괴롭힘 및 지속적인 사직 강요로 인한 것이라면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며 “구체적 사실관계를 살펴 부당해고로 인정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사측의 항소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