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BC 홈페이지 갈무리

수십년간 한국전력의 도서지역 전력발전 사업을 수행해 온 한전 하청업체 JBC 노동자들이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재판부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수십년간 진행된 한전과 JBC·노동자들 사이의 불법파견 관계가 확인됐다.

한전 퇴직자 모임이 수십년간 독점
“용역업체 근로자, 한전 사업에 실질적 편입”

광주지법 11민사부(부장판사 유상호·이지숙·김창환)는 JBC 노동자 145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에서 지난 9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 제도가 시행된 2007년 7월1일 이전 입사자인 노동자 60명은 한전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하고, 나머지 85명에게는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한전에 주문했다.

JBC는 내륙의 발전소에서 송전·배전을 받기 어려운 섬 지역, 즉 자가발전시설이 설치된 도서지역의 발전시설을 운영해 왔다. 1996년부터 한전과 수의계약 방식으로 용역계약을 체결해 왔다. JBC는 한전 퇴직자들의 모임인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회사로 수십년간 도서전력발전 사업을 독점해 ‘퇴피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재 JBC가 한전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도서전력발전시설은 66개로 약 6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JBC 노동자들은 한전과 JBC가 맺은 용역계약이 도급계약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한전이 업무상 지휘·감독을 했는지 △JBC 노동자들이 하나의 작업집단을 구성해 한전의 사업에 편입됐는지 △JBC가 노동조건에 대한 결정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 △JBC가 독자적인 기술성이나 설비를 지니고 있었는지 여부를 살폈다.

재판부는 △도서발전사업과 관련된 27개의 업무처리지침을 JBC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이행하는지 지휘·감독한 점 △한전이 공문을 통해 JBC 사장에게 업무를 지시한 점 △JBC 노동자들이 공문을 공람한 뒤 업무처리 결과를 한전 담당자에게 이메일과 유선으로 보고한 점에 주목했다. 또한 △각 섬마다 배치된 발전운전원들이 일일보고서를 작성해 발전소장 명의로 한전 지사에 매일 보낸 점 △한전 지사장이 메신저나 이메일로 JBC 소속의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한 정황도 수차 례 확인된 점도 불법파견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원고는 JBC 소속 근로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면서 이들을 자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시켰다고 보인다”며 “JBC는 소속 근로자들의 전반적인 노무 관리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한전, 공기업으로서 모범 보여야”

이번 판결에 따라 한전이 도서전력 발전사업을 직접 운영하고 JBC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김덕현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수십년간 수의계약 방식으로 한전 퇴직자에게 특혜를 주며 도서지역의 전력사업이 이뤄져 왔다”며 “그 자체로 문제이자, JBC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나 고용안정은 도서지역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원·하청이 분리돼 같은 곳에 위치한 동일한 사업장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작업장으로 인정받은, 비제조업 사업장으로서는 최초의 사례”라며 “한전은 즉각 JBC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촉구했다.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인 이재동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장은 “한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회적 공기업으로 불법파견과 한전 퇴직자단체와의 부당한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도서 오지에서 같은 공공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공기업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전측은 “판결문을 송달받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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