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BC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전력으로부터 도서지역 전력공급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JBC의 직원들이 한전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9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한전 퇴직자 모임 자회사,
30여년간 도서발전사업 독점

JBC는 울릉도·백령도 등 전국 66개 섬에 있는 한전의 도서발전소 운영·정비 업무를 한전에서 위탁받아 하고 있다. 600여명의 JBC 노동자들은 각 섬에 있는 발전기·배전시설을 관리하고 전기를 만든다.

과거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서발전소를 관리했지만 1998년 이후 한전에서 이를 인수했다. 한전은 1996년부터 한전 퇴직자 모임인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전우실업 주식회사에게 도서발전소를 위탁했다. 전우실업은 2016년 JBC로 사명을 바꿨다.

각 섬에는 발전운전원·정비원·사무원·소장이 배치된다. 울릉도나 조도·거문도처럼 큰 섬은 JBC 직원이 20~30명 가량 배치되지만 작은 섬에는 7~8명의 직원이 전부다. 발전운전원은 5조3교대로 주 52시간 상한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에 맞춰 일을 하고 나머지 직군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발전원은 경유나 화석연료를 사용해 각 섬에 있는 내연발전소의 엔진을 가동해 발전기를 돌린다. 육지의 화력발전소를 섬에 축소해 옮겨 놓은 꼴이다.

한 번 섬에 배치되면 지역을 순환하는 일은 드물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섬 거주자를 주로 채용했지만 지역이 소멸하면서 육지 사람도 늘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서 논의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30년 가까이 한전의 도서발전 사업을 독점해 온 JBC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나서게 된 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좌절하면서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12차에 걸쳐 도서전력 분야 노·사·전문가 협의회가 개최됐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이후 지부 조합원을 비롯해 최종적으로 144명이 한전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가 공개한 노사전협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협의회 참석자는 총 18명으로 외부전문가 1명, 회사대표 9명, 근로자대표 8명이다. 구성에서부터 운동장은 다소 기울어진 셈이다. 근로자대표 중 비조합원 3명과 기업노조 3명은 정규직 전환에 반대했고 소수노조였던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쪽 근로자대표 2명만이 정규직 전환에 찬성했다. 당시 지부는 “상시지속업무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대상이며 발전설비 운전과 정비는 공중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라며 정규직 전환을 주장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JBC는 불법파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서지역 발전 수의계약과 한전의 불법파견을 멈추기 위해 발전사업 계약에 대한 감사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박 의원이 공개했던 자료에는 한전의 지사장이 JBC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업무를 지시한 정황도 확인됐다. 박 의원은 해당 감사를 바탕으로 올해 1월 농어촌 전기 공급사업의 위탁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고도의 기술 가진 전문업체? 인력업체에 가까워”

“설비도, 건물도, 각종 자재도 다 한전 거예요. 사람만 JBC에서 공급하죠.”

JBC에서 21년 동안 일한 이재동(53)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장이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말했다. “(정비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전기기능사 정도의 자격을 갖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무척 전문직이라고 보긴 어렵죠. 회사가 독자적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전문업체는 아니고.”

그도 소송 당사자 중 하나다. 섬 곳곳에 전기를 공급한다는 자부심으로 20년 넘게 한 곳에서 일해 온 이 지부장은 “교육을 보내는 등의 소극적 역할을 하지만 JBC는 사실상 인력공급업체”라고 덧붙였다. 과거 발전원으로 8년 정도 일하다 정비원과 사무원을 거쳐 다시 정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 지부장은 “우리 회사가 고도의 기술을 가진 민간업체라는 이유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의에서 탈락된 것은 문제”라며 “전기요금이 발생하면 한전이 받아 가고, 사람 채용도 한전의 승인을 받는데 무슨 근거로 전문업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전이 JBC 노동자들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업무 지휘·명령을 한 정황은 적지 않다. JBC는 한전이 제공하는 절차서와 업무 편람에 따라 발전시설을 관리하고 운영한다. 박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대로 한전의 지사장이 JBC 직원에게 이메일과 메신저로 직접 업무수행을 지시함과 동시에 각 발전소에서 매일·매주·매월 업무 보고를 받기도 했다. 한전은 각종 모의훈련을 주최해 JBC 직원을 교육하기도 했고, 설령 JBC가 업무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더라도 한전의 승인이 필요했다.

수십년간 ‘퇴피아’ 사업, 공정한 전환은 어디로

박영순 의원이 발의한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을 검토한 국회 산자위 수석전문위원 보고서에 따르면 “JBC 사업 위탁은 25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특혜성 논란이 있으며 수의계약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감사원 및 국무조정실에서 관련 사항을 지속적으로 점검 중인 상황”에 놓여있다. 정부 역시 한전과 JBC를 둘러싼 수의계약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기획재정부는 “한전이 사업을 직접 수행할 경우 인력 증원 및 조직 개편이 필요해 추가적인 재정부담이 예상되므로 위탁운영 방식의 개선 등으로 현행법을 유지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위탁운영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신재생 발전업체가 참여해 경쟁입찰을 활성화하고 도서 발전설비 운영 자동화를 통해 자구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도서 발전설비 자동화를 추진한다는 한전의 입장을 고려하면 JBC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의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부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부터 도서발전설비의 신재생에너지 전환 사업 예산을 배정했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공정한 전환은 육지뿐 아니라 도서지역 발전 노동자에게도 화두가 됐다.

이재동 지부장은 “수십년간 퇴직자들이 이득을 본 구조를 설계해 놓고 소송이 진행되고 불법파견 논란이 되자 이제 와서 나몰라라하는 한전의 태도는 옳지 않다”며 “노조와의 대화를 통한 에너지 전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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