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가스공사 본사 사옥 전경. <한국가스공사 홈페이지>

한국가스공사 경비업체에서 ‘예비군중대’의 행정업무를 담당했던 직원들은 공사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경비업무는 형식에 불과할 뿐 실질적으로는 공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예비군중대의 업무를 수행했다는 취지다. 자회사 설립으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우회하는 방식을 활용한 공공기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비업체 소속돼 ‘예비군중대 사무원’ 업무

3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엄상필·주선아·김광남)는 가스공사 경비업체 직원 A씨 등 5명이 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 항소심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A씨 등은 2004~2019년 사이에 각각 공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경비업체에 입사해 지역본부에서 경비·방호·보안 업무를 담당했다. 2013년 공사가 경비업법에서 정하는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된 데에 따른 것이다. 공사는 통합방위법에 따라 자체 방호계획을 세우고, 2013년부터 경비업체와 특수경비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경비업체는 경비대장·행정조장·조원 등 직책을 나눠 업무를 맡겼다. A씨 등은 ‘특수경비대 행정조장’으로 근무하며 행정사무를 처리했다. 그런데 경비업무 외에 ‘예비군중대 사무원’으로 행정업무를 맡으며 문제가 됐다.

그러자 A씨 등은 공사의 예비군중대장(방호실장)의 지휘·감독을 받았으므로 공사와 근로자파견 관계가 성립한다며 지난해 2월 소송을 냈다. 계약상 직책은 경비대 행정조장이나 실제 행정업무만을 담당하는 사무원이라 경비업법에서 정한 경비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1심은 근로자파견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 등은 경비대의 행정조장 업무를 담당했으므로 행정업무 역시 경비업체가 경비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며 “경비업체 직원 중 행정조장만을 분리해 경비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 깨고 근로자파견 인정 “예비군, 별개 업무”

그러나 항소심은 1심을 뒤집고 파견근로계약이 체결됐다고 봤다. 경비업체와 공사의 용역계약은 실질적으로는 ‘예비군중대 사무원’ 업무에 관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비업무와 예비군중대 사무원 업무는 별개의 업무”라며 “A씨 등은 공사의 지휘·명령 아래 예비군중대 사무원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예비군중대장의 지휘·감독이 구체적 근거가 됐다. 중대장은 공사 인트라넷으로 전자문서를 접수하면 A씨 등에게 공람시키거나 방호실에서 사내 메신저를 통해 문서를 전달했다. 또 A씨 등은 기안문을 작성해 회의에 직접 참석하고 예비군중대장 아이디로 인트라넷에 접속해 회계처리 업무를 했다.

공사가 파견법 관련 분쟁을 대비해 2020년 행정조장들을 행정업무에서 배제한 부분 역시 불법파견 인정 지표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사가 행정조장들을 업무에서 배제하기 전에는 원고들이 예비군중대장 지시로 용역계약 업무 범위를 벗어난 예비군중대 사무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했다”며 “공사의 지휘·명령은 경비업무 범위에 한정돼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비업체가 예비군 업무와 관련해 독립적인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지 않은 부분도 근거로 삼았다.

법조계는 공공기관에서 ’행정직‘의 불법파견이 인정됐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A씨 등을 대리한 유태영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공공기관이 원청인 경우 지휘·명령의 근거를 규정으로 공식화해 파견법 위반을 우회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스공사도 이런 방식으로 도급인의 지시라고 주장했다”며 “최근 몇 년간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는 명목으로 자회사를 도입한 기관이 많은데, 실상은 직접고용의무를 지면서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자회사 제도를 활용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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