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노조 신대구부산톨게이트지회가 13일 오전 불법파견 판결 확정 이후 경남 밀양에 있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반노조 신대구부산톨게이트지회>

민자고속도로인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수납노동자들 간 ‘불법파견’ 관계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상경해 선고를 방청한 노동자들은 선고 직후 <매일노동뉴스>에 “연차에 상관없이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았는데, 정규직이 돼서 당당히 다니고 싶다”며 판결을 환영했다.

원·하청 유기적 협력, 법원 “지휘·명령”
원청 ‘민자도로’ 주장, 대법원 “파견법 따라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3일 오전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의 하청업체 노동자 135명이 원청을 상대로 낸 고용의사표시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4년5개월 만이다. 다만 소송 도중 숨진 노동자 1명과 근무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않은 직원 1명에 대해선 파기했다.

사건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의 통행료 수납원들이 “원청이 직접고용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2018년 11월 내면서 시작됐다. 원청은 요금수납·교통상황·순찰·도로유지·조경 등 5개 업무를 협력업체에 위탁했다.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한 뒤 불법파견으로 보고 2019년 12월 직접고용 지시를 내렸지만, 원청은 행정소송으로 대응했다. 과태료와 시정명령도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각하 판결했다.

수납원 135명은 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이전에 소송을 냈다. 1심은 2020년 9월 정년이 도래한 3명을 제외한 나머지 132명에게 “원청이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원청 직원과의 임금차액 지급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파견근로자를 2년 넘게 사용할 경우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재판부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사실상 하청노동자들에게 지휘·명령했다고 봤다. 협력업체가 차로개방보고서를 원청에 제출하면 원청은 개방하는 입·출구수를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재판부는 “본질적으로 원청의 지휘·명령이 전제되지 않고선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또 통행료 수납이 단순·반복적이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로고가 새겨진 복장을 착용한 점 △원·하청 직원들이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업무를 수행한 점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직원과 함께 홍보·직무훈련을 수행한 점 등을 근거로 ‘원청에 실질적인 편입’이 됐다고 봤다. 하청이 채용·임금·휴가 등 근로조건을 결정할 독자적 권한도 없다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협력업체가 독자적인 설비·조직을 운영할 능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용역계약의 목적은 근로자의 노동력 제공 자체에 있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도 이날 불법파견이 맞다고 판결했다. 원청측은 상고심에서 민자도로 회사이므로 근로자파견관계 여부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민간투자법)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 성립 여부는 민간투자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이므로 파견법에 따른 판단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개통 멤버 “17년 근속했는데 최저임금”
노조 “원청은 즉시 직접고용하라”

김선경(56) 일반노조 신대구부산톨게이트지회 총무부장(가운데)과 조합원 정분남(53)씨(오른쪽), 이은수(52)씨가 13일 오전 불법파견 판결 확정 직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김선경(56) 일반노조 신대구부산톨게이트지회 총무부장(가운데)과 조합원 정분남(53)씨(오른쪽), 이은수(52)씨가 13일 오전 불법파견 판결 확정 직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2006년 2월 ‘개통 멤버’로 입사한 노동자들은 5년여 만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일반노조 신대구부산톨게이트지회 조합원들은 선고 전까지 대법원 앞에서 매달 1인 시위를 벌여 왔다. 이날 선고를 방청한 김선경(56) 지회 총무부장은 “어젯밤 결과가 뒤집힐까 봐 긴장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원청이 ‘수수방관’한 부분도 성토했다. 김 총무부장은 “시스템이 낙후해 요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원청은 10억원이 넘는 돈이 든다며 교체하지 않았다”며 “수납원들이 애로를 겪을 뿐만 아니라 고객 불편도 늘었다”고 지적했다. 대주주인 국민연금도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제라도 원청이 직고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합원 정분남(53)씨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신 재판부에 감사하다”며 “최전선에서 부끄럽지 않게 정규직 사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수(52)씨도 “16년 넘게 근속했는데도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어디서 말하기도 부끄러웠다”며 “매년 계약하며 불안에 떨었는데 정규직으로 당당하게 근무하게 해 달라”고 강조했다.

노조도 선고 직후 경남 밀양에 있는 원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수납노동자를 즉시 직접고용하라”고 외쳤다. 노조는 “원청은 불법파견 피해자인 수납노동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며 “사과의 진정성은 노동조건 개선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양우주 지회장은 “참됨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확인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며 “이제는 원청이 대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이날 판결은 민자고속도로의 불법파견이 확정된 첫 사례다. 앞서 대법원은 2019년 8월 한국도로공사 수납원을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신대구부산톨게이트 노동자를 대리한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영업소 전체를 도급하고 특수목적법인 형태로 설립된 민자고속도로의 불법파견을 확정한 최초 판결”이라며 “요금수납 비정규직들도 실질적으로 근로조건 결정권이 있는 사용자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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