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사람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른 평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과거와 똑같이 가는 방향이 맞는 건가요? 잘못된 방향이었다면 고치는 게 바람직하겠죠.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뭘 가지고 후퇴했다는 거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의 이튿날인 지난 11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1년을 맞았다. 하지만 마냥 축하만 할 분위기는 아니다. 지난 1년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을 두고 ‘후퇴’했다는 평가가 높다는 질문을 던지자 이 장관은 인정하지 않았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이정식(62·사진) 장관을 만났다. 인터뷰는 연윤정 선임기자·논설위원이 했다.

이 장관은 1986~2017년 30년 가까이 한국노총에서 기획조정·대외협력·정책본부장을 거쳐 사무처장까지 두루 근무했다. 중간에 건설교통부 장관 보좌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거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한국노총을 떠난 뒤엔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노사법치,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출발점”

‘과거와 다르다는 이야기’에는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을 앞에서 집행·지휘하고 있는 이정식 장관 본인도 포함될 것이다. 과거 노동쪽에 있었던 것과는 달라진 위치 때문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과거 발언과 비교되며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

이 장관 인터뷰 내내 관통하는 단어는 ‘노사법치’였다. 그는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좋은 일자리, 노동시장 약자 보호”라며 “이를 위해 노사법치, 법·제도 개선, 이중구조 개선 3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사법치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관의 책무가 뭐냐.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적용하는 것”이라며 “노사 불문 누구에게나 법을 엄정하고 일관되게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그게 잘못인 거냐”고 되물었다.

지금의 노사·노정관계는 물론 노동정책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지적에 대해서도 이 장관은 “(직장내) 괴롭힘, 임금체불, 포괄임금, 불공정채용 이거 다 사용자의 부당행위, 불법비리를 잡는 것”이라며 “사용자가 탄압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냐”고 말했다. 노조만 정부의 노사법치를 “탄압”이라고 주장한다는 얘기다. 이어 “법을 지키면 모두에게 예측 가능하고 갈등이 예방된다”며 “정부가 법을 집행하는데 탄압이라고 하는 것이 정당하냐”고 반문했다.

법치주의. 민주주의 통치원리, 곧 법의 지배를 말한다. 하지만 형식적 법치주의가 ‘법에 의한 지배’로 흐를 때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목도했다. 그 반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법의 내용과 목적이 인간의 존엄성이나 실질적 평등에 부합해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다. 정부에서 말하는 법(노사법치)은 공정한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노조를 하면서 그랬죠.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고. 모든 사람이 법이 공정하지 않다며 안 지키겠다? 법이 마음에 안 들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면 법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하죠.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내 마음대로 하면 공동체 질서와 규범이 흔들리잖아요.”

노조법 2·3조 개정안, 거부권 건의 ‘시사’

노동자들은 법을 바꾸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이다. 원청의 사용자성과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고,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정리해고에 반발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파업에 동참한 노동자들에게 2014년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진 것이 계기였다. 지난 9년간 법 개정을 위해 노력했고,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에 이어 이달 24일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냐고. 이 장관은 “가정적 상황을 전제하고 답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이것이 정말로 올바른 해법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했다. 원청은 단체교섭 상대방과 교섭 범위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고, 단체교섭 의제·교섭창구 단일화 등을 둘러싼 현장의 혼란과 갈등이 증가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특히 손배청구 제한이 기존 노조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다수 미조직 근로자 보호에는 취약한 결과를 초래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설명이 노동현실에 부합할까.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지난해 6~7월 진행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농성파업이 도화선이 됐다.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에게 470억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장관은 “문재인 정부는 노조법 2·3조 문제를 국정과제로 설정했지만 왜 안 됐을까”라며 “정부가 바뀌니까 한다? 그때는 왜 못했을까. 그런 걸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법을 집행하면서 발생할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장관으로서 직무유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사회적 대화 통해 노동법 통으로 고치자”

그가 생각하는 해법은 뭘까. 크게 두 가지를 제시했다. 사회적 대타협과 중층적 교섭 확대다. 이 장관은 “원·하청 문제를 노동법으로 해야 할 문제냐. 교섭을 (진짜 사장인) 산업은행이 하라, 대통령이 하라,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악순환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섭 관행이나 산별교섭, 단협 효력 확장, 조직적·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이 있고 법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 등이 있는데 다 노동법으로 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9년을 노력한 노조법 2·3조 개정조차 정부·여당의 반대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데 이 장관이 말한 방법은 어떻게 구현 가능할까. 그는 “그동안 현실에 안 맞는 노동법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고쳐 왔다”며 “전체를 보고 한 게 아니다 보니 누더기라고 그러잖냐”고 반문했다.

지금 말고 ‘언젠가’ 하겠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그는 “사회적 대타협이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실태조사와 공론화를 하고, 정밀하게 여론을 들어 한 번에 정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법·제도 간 정합성도 있어야 하고 4대 보험 등 안전망과의 정합성도 있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노조법 2·3조 개정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여야 의원들을 찾아 통으로 다른 제도까지 다 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바로잡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 장관은 “이번엔 제대로 해 보자”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가서 충분히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라면서도 “과거 정부처럼 보여주기식 사회적 대화는 안 된다”고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지난 1년간 경사노위는 정상화하지 못했고 노사정 대화는 ‘실종’ 상태다.

‘조선업 상생모델’로 노사정 대화 공백 메우기?

이 장관이 그다음 제시하는 것이 ‘조선업 상생협약’ 같은 모델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이후 지난해 11월 노동부는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꾸리고, 올해 2월 상생협약을 맺었다. 주요 내용은 △원청은 적정 기성금 지급, 하청은 임금인상 △숙련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 △에스크로 결제 제도를 활용한 임금체불 예방 △물량팀(상시업무 재하도급) 사용 최소화 △하청의 사회보험료 체납처분 유예 등이다.

처음부터 노조가 빠진 것이 문제가 됐는데, 원청사들의 요구를 반영해 노조를 뺀 것이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업 노동계는 하청노동자 4대 보험료 체납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정식 장관은 “노조가 못 들어간 게 아니라 전문가가 먼저 들어가 목적 실현을 위해 무엇이 효과적인지 고민하는 수밖에 없었다”며 “전문가가 초안을 만들고 노사, 원·하청 의견을 듣겠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사회적 대화는 (경사노위 이외에도) 사회적 대화 책무를 가진 주체들이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그런 다양한 방식으로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조선업 상생협약”이라고 말했다.

이를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의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중층적 단위 사회적 대화로서의 조선업 상생모델을 타 분야로 확산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 16일 발표한 상생협의체 업종별 확산 내용의 이중구조 개선방안과 맥을 같이한다.

이 장관은 “상생협약 합의사항에 대해서는 지금 정부가 점검하고 있다”며 “이행이 안 된다면 정부는 (해당 업체들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석열 정부 1년 만에 건설노동자 분신사망
“안타깝고 애도 표시” … “노조 때리기 아냐”

다시 돌아 ‘노사법치’다. ‘노동약자 보호’를 말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사법치라는 잣대는 공교롭게 전통적으로 노동약자라 불렸던 하청·화물·건설노동자를 향하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부터 주무부처 장관까지 건설노조를 ‘조직폭력배’(조폭)에 빗대 ‘건폭’이라는, 쉽게 쓸 수 없는 표현을 앞세우며 전방위적으로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 지난 노동절 아침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도 안 돼 벌어진 비극적인 일이다.

건폭 같은 표현은 24일 국가인권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국회 운영위원회의 현안질의에서 대표적인 노조혐오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권위는 정부의 노조혐오 표현과 건설노동자 분신사망 등에 대해 진정서가 접수되면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장관은 “건설노조 조합원이 분신사고로 사망하시게 된 것에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노사법치는 현장의 불법·부당한 비정상 행위를 바로잡아 편법·특권을 뿌리 뽑고 노동약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노조 때리기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제도·의식·관행을 바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며 “법을 우습게 보는 것은 법이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일관성 없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법을 집행하는 데 일관되게 간다면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 때리기’로 표상하는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이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당선자 시절 한국노총을 방문하고 “한국노총의 친구”라고도 했고 “노동의 가치”를 언급하는 등 노동계와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대선후보 때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도 찬성했다. 하지만 화물연대 2차 파업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급변했다고들 평가한다.

이 장관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노동약자니까 보호한다고 했는데 실정을 보니까 취업장사하는 데 노사가 담합하고 하니, 노동을 존중하려고 했는데 현실이 아니더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노조회계 투명성 강화, 공정채용법 입법 추진 등과 맞물렸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국제사회에서도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건설목공노련(BWI)은 이달 4일 인권위를 찾아 고 양회동 지대장 분신사망과 관련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위반이라며 6월 ILO 총회에서 주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나라마다 제도·의식·관행이 다 다르고 정부는 위법사항에 대한 법을 집행한 것뿐”이라며 “(국제사회에서의 문제는) 지켜보자”고 말을 아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근로시간 설문조사 거쳐 7월 말 개선방안 발표

한국노총 출신 이 장관은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중 최대 이변이자 상대적으로 잘된 인사로 꼽혔던 인물이다. 보수정부를 넘어 역대 정부에서 노동계 출신이 노동부 장관으로 발탁된 예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친정’인 노동계에서 상대적으로 기대할 법했다.

하지만 스텝이 꼬였다. 지금 이 장관은 ‘개각 1순위’로 지목되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주 69시간제’로 불리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추진하다가 역풍을 맞았다. 정부는 올해 3월 주 단위였던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 총량으로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최장 주 69시간 근무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윤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무리”라고 하는 등 혼선을 거듭한 끝에 정책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 장관과 노동부가 ‘덤터기’를 쓴 셈이 됐다.

어떤 심경일까. 이 장관은 “(개각설에) 대통령을 보좌하는 입장에서 제대로 못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부족했던 게 있었고,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나오는 총선 출마설에는 “여러 설이 돈다”면서도 “지금 주어진 일을 하기도 버거운데 무슨 총선 출마를 하겠다고 건방을 떨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이 장관은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개선이 “노동시간을 줄인다는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주 40시간제를 완전히 정착시켜 실노동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가려는 게 취지”라며 강조했다. 주 52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는 최저, 강행 규정이다. 업종과 직종을 불문해 5명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다. 이 같은 획일적·경직적 근로시간 제도와 정부 규제에 의존하는 방식은 지속할 수 없고 실노동시간 단축은 불가능하다고 이 장관은 말했다. 노사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선택지를 부여하는 제도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왜 비판을 받은 것일까. 공짜야근, 포괄임금 오남용 등 누적된 관행에 따른 노동자의 뿌리 깊은 불신이 우려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정식 장관의 분석이다.

이 장관은 “국민은 우려하는 부분이나 잘 모르는 부분이 있거나, 혹은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될까 하는 걱정을 한다”며 “6천명을 대상으로 대국민 설문조사(FGI)를 하고 정량·정성분석을 통해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법을 내놨다. 그 발표 시기는 7월 말께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이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한 점이 상한이 될까. 이 장관은 “상한이 얼마가 될지는 논의해서 더 낮출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도 “확실히 중요한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서 공짜노동·포괄임금 오남용을 없애고 선택권과 건강권·휴식권을 보장하는 원칙하에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공짜야근·포괄임금 오남용 대책, 6월에 내놓는다”

7월 말 개선방안이 나온 이후의 과정에서는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다. 이 장관은 “(개선방안이 나온 뒤) 정기국회에서 논의하게 되는데 그 전에 노사 의견도 들을 것”이라며 “그래서 사회적 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7월 말 실태조사 결과와 정부안이 나올 텐데, 경사노위에 들어가서 논의할 수도 있고, (노동계가) 안 들어가겠다고 하면 대화의 방식은 다양하지 않느냐”며 “경사노위에 안 들어가면 정부가 직접 TF를 만들어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노동시간뿐 아니라 모든 쟁점에서 계속 노사 의견을 들어왔다”며 “그런데 경사노위가 구성도 안 됐고, 양대 노총이 각각 사정이 있어서 안 들어간 것을 두고 정부가 대화를 안 한다고 하면 대단히 과장된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노동시간을 노동자 선택에 맡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가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뽑은 노동자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하고, 노동자 본인이 동의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사용자와 노동자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해야 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조가 없거나 힘이 약한 중소·영세기업에서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는 “공짜야근·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을 위해 정부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장시간 근로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 800곳에 대한 집중감독을 이어 나가고, 그동안의 감독 결과와 현장·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6월에 포괄임금 오남용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규율 중대재해 예방체계 “방임 아니다”

노동계가 ‘노동정책 후퇴’로 꼽는 또 하나의 영역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추진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해 자기규율 예방체계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올해 1월에는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TF’를 발족하고, 산재사고 처벌 대상과 수위 등 제재방식 개선, 처벌요건 명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지 이제 1년반도 되지 않은 시점. 처벌 대상과 수위가 하향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이 장관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는 방임이 아니다”며 “처벌이 무서워서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라 노사 참여하에 기업주가 안전투자를 확대하고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만들어 이행·점검·개선하도록 하고, 노조가 감시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외 노동자가 안 죽고 안 다치게 하는 게 중심”이라며 “이것이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쉽고 간편한 위험성평가 틀을 개발·보급하고, 산업안전보건법령과 감독체계도 위험성평가 중심으로 전면 정비하는 한편 단계적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거나 부적정하게 실시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상반기 중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TF 활동과 관련해서는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는지 노사단체, 안전관리자 등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국내외 사례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TF에서 중대재해 예방 실효성을 강화하고 기업의 안전투자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근로기준법 70년 “전면적용은 어려워”

올해는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제정 70년을 맞는 해다. 이 장관은 앞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통으로’ 노동법을 고치자고 언급한 바 있다. 노동계는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을 뼈대로 한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야말로 노동약자 중 노동약자다.

이 장관은 “전면적용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이야말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보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보호법도 그냥 만들어 놓기만 하면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되고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며 “정말로 꼭 중요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제도화가 될 것이기에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사노위 노동시장이중구조개선연구회에서 논의 중인데, 논의 결과를 토대로 입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출범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노동개혁 완수’를 2년 차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노사법치주의 확립과 특권·반칙을 뿌리 뽑아 노동약자를 보호하는 등 지난 1년간 마련된 노동개혁 기틀을 토대로 공정하고 상식이 바로 서는 노동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최악의 노정갈등과 함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부 퇴진”을 내걸고 7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최근 건설노조 1박2일 노숙투쟁을 계기로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까지 추진하는 등 일촉즉발의 강대강 구도는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사정 대화 복원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이 장관은 “정부는 있는 제도를 (적용하고), 당연한 것을 한다는 것 아니냐”며 “노동운동도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통합이든 뭐든, 통합을 해야 한다면서 법을 어기면서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아무리 급해도 법은 지키면서 해야 한다. 모든 국가나 조직의 기본이다. 약속이니까”라고 말했다.

정리=연윤정·강예슬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