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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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는 노태우 정권 때인 1992년 12월 국제노동기구(ILO)가 1947년 채택한 ‘근로감독’(labour inspection) 협약 81호를 비준했다. 근로감독 협약은 대한민국이 1991년 12월 ILO에 가입하고 가장 처음 비준한 협약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한국이 최초로 비준한 근로감독 협약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나 토론회는 없었다. ILO 기준을 노사정 3자 기준이 아닌 노동자 기준으로 착각하는 정부나 사용자단체야 그렇다 쳐도, 노동조합조차도 근로감독 협약 30주년 기념토론회 하나 개최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노동문제’(Labour Questions)에는 관심 없고 ‘고용관계’(employment relations)에만 집착해온 한국의 노동학계(사실상 고용학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노동행정 한 축으로 60년 넘게 시행 중인 근로감독에 대한 진단과 성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근로감독관이 중점을 둬 보호해야 할 대상이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인지, 아니면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인지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논의는 많지만, 근로감독이 1차 노동시장에 집중해야 하는지, 아니면 2차 노동시장에 집중해야 하는지 논의도 없다.

또한 일반 근로감독과 산업안전 근로감독을 나누어 직제를 두는 효과도 논의한 적이 없다. 그 결과 근로감독관 총수에 안전감독관 수를 넣거나 빼는 것을 두고 고용노동부의 장난질이 심해졌다.

근로감독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실천적 토론도 없다 보니, 근로감독관이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과 사무실을 가지 않고 노동조합, 그것도 총연맹이나 산별노조 같은 상급노동조합을 찾아오는 관행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노동조합도 근로감독관을 노조가 없는 미조직 사업장에 가라고 보채기보다 자기 노조의 문제를 도와주는 해결사로 여기는 데 익숙해졌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노동시장 하층의 무노조 사업장은 근로감독관의 발길이 뜸해졌다.

노동시장의 하층 노동자들은 노조로 조직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여러 난관을 거쳐 노조로 조직하더라도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통해 단체교섭으로 이어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나라의 근로감독은 그 중심이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 맞추지 못하고, 노동조합 조직이나 기업의 지불능력에서 나오는 ‘후광 효과’(hallow effect)을 통해 사회경제적인 목소리를 내는 노동시장 중상층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 노동조합도 이런 사정에 동조했는데, 무슨 의도가 있기보다는 근로감독에 대한 노조의 무지 때문일 것이다.

근로감독이 노동행정 핵심인데도 양대 노총이 대한민국 정부의 근로감독 행정에 대해 체계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몇년 동안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근로감독 행정을 모니터링했는데 이마저도 중단됐다. 근로감독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전무하고 근로감독 행정에 대한 운동적 감시가 부재한 상황은 근로감독관 수가 모자라다는 노동부의 농간에 놀아나 근로감독관 수를 늘리라는 ‘관료적’ 목소리에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뭣 모르고 동참하는 해프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문재인 정권 때 근로감독관을 1천명 가까이 증원해 그 수가 3월 기준 2천874명에 이르게 되었다. ILO는 한국과 같은 산업 국가의 경우 노동자 1만명 당 근로감독관 1명을 제안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근로감독관 1명당 노동자수는 7천500명으로, ILO 기준을 충당하고도 넘친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노동자 수 대비 근로감독관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세계 최고 수준으로 증가한 근로감독관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다. 노동시장 하층의 공장과 사무실에 찾아가 근로감독을 하기보다 노총이나 산별노조 등의 노동조합 상급단체에 찾아와 노조 회계 장부를 뒤지는 일이 근로감독관이 하는 일이 됐다.

노조 재정에 부정이나 횡령 등 불법적인 요소가 있으면 형사 처벌을 위해 경찰이나 검찰을 보내면 될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열악한 근로조건의 ‘검열’(inspection)을 위해 존재하는 근로감독관을 노동시장 하층의 공장과 사무실에 보내지 않고,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정부 자신이 주장하는 노동조합에 보내고 있다. 이는 1992년 12월 대한민국 정부가 비준한 근로감독 협약 81호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근로감독은 영어로 labour inspection이다. 감독의 대상은 일이나 고용이 아니라 노동(labour)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어 번역을 받아들여 감독으로 해석한 inspection의 원래 의미는 ‘검열’과 ‘사찰’이다. 노동자를 위해 공장과 사무소를 검열하고 사찰하는 것이 근로감독관의 임무다.

근로감독 협약 81호 어느 조항도 근로감독관의 임무로 노동조합을 방문해 회계 장부를 검열하거나 사찰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대신 시간·임금·건강·복지·아동고용·청소년고용 등과 관련해서 근로조건(conditions of work)과 노동자의 보호(the protection of workers)와 관련된 법률 조항을 집행하는 것이 근로감독의 기능이다(3조1항).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용어를 빌리자면 집단적 노사관계가 아니라 개별적 노동조건을 챙기는 것이 근로감독관이 할 일이다. 이러한 협약의 취지에 충실한 건 일본이다. 일본 노동기준 감독관은 우리나라의 근로감독관에 해당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우리로 치면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된 사안들의 법 집행이다. 특히 단체협약도 없고 법 집행도 잘 이뤄지지 않는 무노조 영세사업장을 찾아가 근로조건을 검열하고 사찰하여 사건과 사고를 예방하는 게 주된 임무다.

문재인 정권 때 새로 늘어난 근로감독관 1천명이 지금 하는 일이 노조 사무실을 찾아와 노조회계 장부를 사찰하는 일이라니, 생각할수록 한심하기 그지없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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