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트라스 평택공장 내부 모습. 정기훈 기자
▲ 모트라스 평택공장 내부 모습. 정기훈 기자

“길은 다르지만 우리가 향하는 곳은 어차피 하나입니다.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조합 할 수 있는 세상, 노동자의 권리가 가장 보편적인 권리가 되는 세상, (현대모비스) 모듈부품사연대도 그 길에 언제나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현대모비스 13개 하청업체들을 통합해 만든 생산전문 통합계열사 모트라스(MOTRAS)·유니투스(UNITUS) 설립을 앞둔 지난해 8월, 현대모비스 부품모듈노조연대가 “다른 길이지만 같은 곳을 향하겠다”며 낸 통합운영 입장문의 일부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원청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투쟁과 다른 길을 택하면서 금속노조 내 비판이 일자 내놓은 다짐이기도 했다. 이들은 사측과 통합운영안에 합의하면서 “고용형태, 회사형태, 자본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일은 우리가 얼마나 단결하고 연대해 노사관계를 주도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를 만든 뒤 외부와 성벽을 쌓고 내부의 처우개선에만 집중해 고립되고 있는 일부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으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도 노조활동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미조직 노동자가 노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생산전문 통합계열사 출범 6개월, 이들이 그렸던 전망은 실현되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7일 오전 모트라스 평택공장을 찾아 통합계열사 설립을 주도해 온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화성지회와 만나 현 상황과 고민을 들었다. 이날 자리에는 안재연 지회장, 나우진 부지회장, 박인화 교육선전부장 등 노조 관계자가 참석했다. 현대모비스 모듈부품사연대회의는 모트라스·유니투스 노동자들이 소속된 금속노조 10개 지회(화성·울산·김천·평택·충주·안양·울산모비스·광주·아산·천안)로 구성돼 있다.

현대모비스 계열사되니, 입사 경쟁률 치솟아

- 생산전문 통합계열사가 출범한 지 반년 정도가 흘렀다. 달라진 점은.
나우진 :
일하는 것은 달라진 게 없다. 다만 고용이 안정되다 보니 외부에서 높이 평가한다. 입사경쟁률도 달라졌다. 얼마 전 계약직을 뽑는데 경쟁률이 300대1 정도였다. 과거에는 직원 1명 뽑으면 3~4명만 지원했다. 이제는 ‘모트라스 들어가기 빡세다(힘들다)’ ‘막차 타고 들어와 정규직 전환된 애들이 황금세대다’란 말을 한다.

조합원들이나 주변에 있는 지인들이 느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조합원들은 협력업체에서 현대모비스 계열사가 됐으니, 계열사다운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올해 임금·단체교섭을 앞두고 있다. 주요 목표, 요구안은 무엇인가.
나우진 :
통합계열사가 된 뒤 첫 교섭에서 차별을 없애 임금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힘을 모으고자 했다. 청소·경비·미화·식당 노동자인 필수노동자의 임금을 정규직과 같은 폭으로 정액인상하고 우리 회사 직원 간에 존재하는 내부 수당(교대제 전환 수당) 차이를 없애는 내용이다. 불합리한 이유로 임금격차가 나면 문제니, 임금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조합원 간 토론을 했다. 화성지회 내부에도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었지만 설득했다. 하지만 전체 조합원(10개 지회)은 설득하지 못했다.

통합계열사 출범 후 임금은 기존 근속에 따라 받고 있지만, 연차 같은 경우는 신입 기준으로 적용받아 리셋된 상태다. 기존 근속대로 각종 복지제도를 적용받도록 하고, 임금·상여금 인상, 주간 2교대 미시행 사업장의 주간 2교대 시행을 요구할 계획이다. 모트라스·유니투스 공동교섭도 요구한다.

교대제 전환수당은 2013년 3월 밤샘근무를 포함하던 ‘10시간+10시간’ 근무형태를 주간연속 2교대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당시 노사는 밤샘근무 대가로 심야할증수당을 ‘주간연속 2교대 전환수당’으로 전환해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주간연속 2교대가 시행된 후 입사한 2013년 4월 이후 입사자에게는 해당 수당 지급을 제외하기로 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다른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안재연 : 필수노동자 처우를 개선할 수 있도록 올해 임금교섭 요구안에 구체적으로 담으려 했지만 못 담은 것이 아쉽다.

▲ 안재연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화성지회장 <정기훈 기자>
▲ 안재연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화성지회장 <정기훈 기자>

통합계열사 출범 후 첫 임단협
정규직-필수노동자 임금격차 해소, 조합원 설득 못해

- 필수노동자 처우 개선에 관해 조합원 설득이 어려웠던 이유는.
박인화 :
현대모비스공장에 연쇄적으로 노조를 만들고, (불법파견) 소송 중심의 비정규직 운동 대신 통합운영으로 회사다운 회사를 만들어 보려 했다. 이 시기 조합원들의 욕망은 임금을 높이고, 상여금을 확대하는 일보다 새로운 노사관계, (불법파견 투쟁을 넘어) 새로운 운동의 그림을 만들어 보자는 ‘전망’이 먼저였다. 그런데 현재는 아닌 상황이다. 물론 처우개선을 바라는 욕망이 잘못은 아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노조의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전망에 관한)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 것 같다.

- 필수노동자 처우개선이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박인화 :
윤석열 정부가 노조에 씌우는 프레임은 비리 집단, 이기적인 집단이다. 니들 때문에 다수의 노동자가 고통받는다는 프레임이다. 전체 노동운동의 전망을 볼 때 이런 프레임을 깨고 다른 프레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현장의 필수노동자 처우개선이라고 본다. 완전히 무권리 상태고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저임금 노동자의 권리를 바로 세우고, 싸우는 데 노조가 함께 하는 것 말이다. 머릿속으로는 지회 확대간부들이 상경해 공동기자회견도 했어야 했는데 쉽지 않다. 올해 필수노동자 처우개선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갔어야 최소한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명분을 가지고 사측을 상대로) 투쟁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노조 스스로가 닫은 느낌이다.

“고용불안 매개 투쟁, 전망 없어”

- 13개 하청업체에서 현대모비스 계열사 2곳에 소속됐다. 고용불안 문제는 완전히 해소된 것인가.
박인화 :
자동차 산업전환기 특정 부품이 필요 없게 되면 물량이 변동되고, 고용이 불안해지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 쪼개져 있을 때 아이템 생산이 필요 없게 된 사업장은 각개격파당할 수 있었지만 통합운영되면서, 회사에 신규아이템을 가져오든지 해당 공장의 비전을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됐다. 현대모비스의 공식적인 계열사가 됐으니 사용자와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다. 개별적인 상황을 보면 불안할 수 있지만 전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성차도 고용이 불안하다고 하는 마당에 (우리가) 고용불안을 매개로 투쟁하는 것은 전망이 없다.

나우진 : 물량을 배분하고, 고용을 지키는 일은 노사 양쪽의 의지가 맞아야 한다. 그러려면 노사 간 지속가능한 관계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사 협치주의나 극단적인 노사갈등으로 가지 않으려면 우리 임금과 고용을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명분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9월8일 현대모비스 모듈부품사연대 미래차위원회에서 노사는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산업전환 미래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는 “통합계열사의 제조경쟁력 향상과 전 조합원의 장기적인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확보하며, 생산안정과 품질안정을 위해 노사협력해 지속 가능한 미래차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산업전환 패러다임을 정립해 나간다”는 내용을 담았다.

- 금속노조로부터 최근 징계를 받았다. 통합계열사 취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거나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나우진 :
불법파견 투쟁이 아닌 방식의 교섭과 투쟁은 다 인정하지 않으니깐, 그런 것에 대한 고충이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 소송이 아닌 다른 전망은 정말 없는지 묻고 싶다. 노조가 정한 원칙을 어겼으니, 징계를 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토론을 하면 좋겠다.

지회는 이달 12일 금속노조 13차 징계위원회에서 노조규약 위반으로 경고 처분을 받았다. 생산전문 통합계열사 설립에 관한 노사합의는 단체교섭 사항으로, 노조위원장이 체결해야 하는데 조합의 승인 없이 지회들이 추진했다는 이유에서다. 금속노조는 지회가 사과문을 노조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도록 했다.

▲ 나우진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화성지회 부지회장 <정기훈 기자>
▲ 나우진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화성지회 부지회장 <정기훈 기자>

“다른 기업 자회사 설립, 사측 주도가 문제”
“불법파견 소송 이겨도 이중구조 해결 못해”

- 포스코·현대트랜시스·현대모비스 물류까지 원청이 자회사를 설립해 하청노동자를 고용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나우진 :
포스코·현대트랜시스에서 자회사가 생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사측이 주도해서 자회사를 설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전망을 세우지 않으면,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깐 사측은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노조가 주도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대모비스지회들은 직접 통합운영을 제안했고, 만들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현재 사측에서 주도해 설립한 자회사 노동자는 사측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시기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불법파견 사업장의) 전망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박인화 :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이 성공한 사례를 보면 대부분 다 대기업 사내하청이었기 때문이다. 노조 조직력이 되고, 상대가 지불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 투쟁 같은 경우는 그게 불가능하다. 불법파견 소송에서 이기거나, 정규직이 되면 극단적인 이중구조가 만들어진다.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정답은 정규직화라고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 고착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만든 것은 자본이고, 자본의 책임을 묻는 게 소송’이라는 것이다. 물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회사를 만나 고용되는냐에 따라 노동자 계급 안에서 계속 분할되고 쪼개진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노동자가 단결과 연대를 할 거냐, 그 방법이 뭐냐를 좀 고민하면 좋겠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 통합전문자회사를 만들 때 전문성을 기르고, 노사가 장기적인 목표 지향을 가지고 상생해 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했는데, 잘 되고 있나.
안재연 :
자회사는 지난해 11월14일에 출범했다. 당연히 5개월 만에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들어 가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다.

박인화 : 미래차위원회나 통합요구안을 추진하면서 (노사가) 강조한 게 구조적 신뢰다. 완성차회사와 현대모비스는 직서열 생산구조다. 노조가 완성차 생산에 바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상황에서 회사는 노조를 믿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사용자들도 이것을 알고 있으니 함부로 할 수 없었고, 모비스도 (통합운영에 관해 논의하던) 미래차위원회에 나왔던 것이다. 통합 이후에 노사가 삐그덕 거리는 일이 있지만 신뢰가 무너져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현재는 과도기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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