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민주연구원은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 4.5일제 도입방안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노총>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주 69시간(주 6일 근무 기준)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한 반발이 주 4일 또는 주 4.5일 근무제 논의 촉발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 일각에서 정부의 장시간 집중노동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맞불을 놓으면서다. 주 4일제는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단시간 일자리 확산, 저임금 노동자 소득감소와 같은 우려를 동반하는 정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설익은 주 4일제 도입 주장이 주 69시간제 도입 저지를 위한 광범위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저임금 노동자 소득감소
단시간 일자리 확산 우려

2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더불어민주당은 조만간 주 4.5일제 확산을 지원하는 내용의 노동법을 발의한다.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거나, 시범사업을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주 4.5일제는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잠깐 화제가 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가 주 4일제를 대표 노동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지난해 1월26일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고 단계적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내놨다.

주 4일제나 4.5일제는 정치권의 언어는 아니다. 주 5일제 도입을 이끌었던 금융노조는 2020년 산별교섭에서 주 35시간제를 요구하는 등 금융업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활발했다. 교대근무 조합원이 많은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 주 4일제를 대선 핵심요구로 정했다. 하지만 전체 노동계의 요구로 확산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노동운동의 역사가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점에서 환영일색일 듯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우려는 소득격차 심화다.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강력한 노조와 교섭력으로 임금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대다수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등은 소득감소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이 2021년 11월 발표한 ‘임금 불평등 추세와 대안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시간은 2003년 50.2시간이었는데 2020년에는 42.7시간으로 줄었다. 비정규직은 같은 기간 45.0시간에서 32.7시간으로 더 큰 폭으로 줄었다. 비정규직은 노동시간이 줄면서 정규직보다 임금손실도 컸고, 이는 비정규직 중 저임금 노동자(중위임금 3분의 2 미만) 비중이 같은 기간 41.2%에서 48.8%로 늘어난 결과로 나타났다.

정부 지원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노동시간 단축을 이행하고, 인사관리를 잘하면서 정부에 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기업 역시 대규모 사업장이 다수일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노동환경이 좋은 사업장에 정부 지원이 더 많이 흘러가면 정부 자원을 역진적으로 배분하게 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밖에도 단시간 일자리를 확산하고, 변종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가 활성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노동계는 이런 우려 때문에 가능한 사업장은 시범사업 등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주 4일제를 전면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다.

“노동시간 개편안 맞불로는 부적절”
양대 노총 “내부서 합의되지 않아”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당 정책위원회·민주연구원이 개최한 ‘주 4.5일제 도입방안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노동시간단축제 필요성을 강조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발제에서 정부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을 “과로사회,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김 소장은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과로 노출집단을 분석했더니 무노조(9.6%), 파견용역(13.9%), 특수고용직(9.4%), 여성(10.3%), 고령(10.6%), 5명 미만 사업장(14.3%)에서 주 52시간 이상 근무가 많았다”며 “주 69시간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취약계층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토론에서 “(주 4.5일제는) 보편적 적용 가능성이 작고 시간 양극화를 부추기는 부작용도 염려해야 한다”며 “대선국면은 특수상황이라 해도, 지금 정부 노동시간제도 개편방안의 맞불 카드로도 접점은 희미하다”고 진단했다.

양대 노총의 생각도 비슷하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해야 실질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정리된 입장”이라며 “노조와 사업장별로 격차가 있는 현실 속에서 주 4일제는 실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임금과 초단시간 노동 확산 등의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 국면에서 주 4일제를 확 부각하면 노동시간 개악을 저지하는 논의가 산으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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