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창립 77주년 기념식과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 후원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한국노총>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에 협조해 달라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한국노총 창립기념식 축사를 두고 한국노총 내부가 끓고 있다. 친정인 한국노총에 대한 예의·배려 없이 정부 정책만 홍보하고 갔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 77주년 기념식서 대정부 투쟁 선포
김동명 위원장 “대선 1년 만에 사회 역진”

한국노총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관에서 창립 77주년 기념식과 좋은친구산업복지재단 후원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에 맞선 투쟁을 선포하는 자리로서 기념식이 준비됐다.

김동명 위원장은 기념사에서 “대선이 끝난 지 1년 만에 우리는 한국 사회의 후퇴와 공동체의 붕괴를 목도하고 있다”며 “노동법의 시간을 70년 전으로 되돌려 놓고자 하는 역주행도 시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계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취급하고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대립의 시간과 강도는 길어지고 강해질 것”이라며 “조직 내부 소수의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단호하게 척결하며 당당한 혁신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노총 내에서 불거진 노조간부 조합비 횡령과 금품수수 의혹 등을 빌미로 정부가 회유·압박해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노총은 조직혁신위원회 활동을 통해 상반기 중으로 혁신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김동명 위원장은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와 특수고용직·비정규직 조직확대 사업에 힘을 쏟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김 위원장 발언은 이날 행사가 기념식인 점과, 이 장관과 재계 관계자 등 외빈이 참석하는 점을 감안해 수위를 낮춰 당일 수정한 끝에 나왔다. 당초 윤석열 정권을 유신정권 등 과거 정권과 비교하며 비판하고, 정부 노동정책의 친기업 성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장관 회계 투명성 강화 요구
“내가 아는 이정식 맞나, 대화 안 돼”

정부 정책에 협조해 달라는 취지의 이정식 장관의 축사는 기념식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평가다. 노조에 회계 관련 장부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밝혔던 “불법·부당한 관행 개선”과 “조합원 알권리 보장과 투명성 강화 노력 필요”와 같은 발언을 축사 곳곳에 담았다. 이 장관은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며 “70년 전 공장법 시대의 낡은 노동법·제도를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바꿔 나가고 합리적인 노사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사 모두의 불법·부당한 관행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낡은 공장법을 바꿔야 한다며 정부가 내놓은 노동정책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허물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 노동시간 유연화와 직무성과급제다. 노동계와 대화조차 없이 노동자의 임금·노동시간 제도를 정부 주도로 바꾸려 한다는 데에서 양대 노총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장관은 “정부 노동개혁 정책들이 ‘현장과 함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라는 한국노총의 운동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며 “조합원과 전체 국민을 위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결단과 책임 있는 역할을 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축사를 두고 한국노총 내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은 기념식을 앞두고 위원장실에 ‘압축노동·과로사 조장, 시대 역행 노동시간 개악 반대’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인사차 위원장실을 찾은 이 장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 장관은 기념식 전 김 위원장과 사전 간담회에서 플래카드를 보고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며 “그러더니 기념식 축사에서 한국노총과 노동계를 대 놓고 비판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아는 이정식은 사라졌음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제 이 장관과는 아무런 대화나 소통이 안 된다”며 “이 장관도 한국노총을 대화의 상대라기보다는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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