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을 판사 1명이 심리하는 ‘단독’ 재판부에 배당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중대재해는 산재 사망사고 등을 일으킨 중한 범죄이므로 판사 3명이 심리하는 ‘합의’ 재판부에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단독부가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제강 사건 ‘착오 배당’ 선고기일 연기

사건 배당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판결’로 점쳐졌던 한국제강 사건으로 불거졌다. 애초 3일 오전 선고기일이 예정됐지만 사건이 합의부에 배당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변론이 재개됐다. 상급심에서 ‘착오 배당’이 확인되면 해당 사건은 관할 위반으로 파기될 가능성이 있다. 법원은 재정합의 등을 논의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중대재해 사건을 단독재판부에서 맡게 된 근거는 법원조직법에 있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사형·무기 또는 단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은 합의부에서 심판한다. 심리하는 범죄가 중대하고 유죄 인정시 선고되는 형량이 높아 법리 공방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당시 법원조직법도 개정됐는데 중대재해 사건은 합의부 심판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1년 이상의 징역’으로, 합의부 심판 요건을 갖췄다.

국회서 법원행정처 제안으로 ‘특례’ 입법

하지만 국회의 법안심사 단계에서 중대재해 사건은 법원행정처 제안으로 단독부에 배당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2021년 1월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원회에서 이 같은 절차가 논의됐다. 회의록에 따르면 김인겸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현 서울가정법원장)은 단독사건으로 특례를 마련하자고 요구했다.

백혜련 당시 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중대산업재해가 굉장히 중한 범죄일 수 있다”며 단독부 배당에 우려를 표했지만, 김 차장은 “세월호처럼 큰 사건이라면 재정합의로 합의부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사망사고는 1년 이상, 부상은 7년 이하 징역이라 단독부에서 진행해도 무방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형식 자체는 업무상과실치사 사건”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결과 발생만으로 처벌을 가중하고 있어 단독부에서 주로 심리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나 업무상과실치사 형사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백혜련 소위원장은 사건 배당을 단독부에 배당하는 내용을 부칙에 넣는 것으로 제안해 통과했다.

“사무관할 형평성 어긋나, 편차 발생 우려”

문제는 앞으로 중대재해 사건이 단독부에 집중될 경우 처벌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기소된 11건 중 7건은 ‘착오 배당’으로 지난달 26일 합의부에서 단독부로 재배당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대표인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사무관할은 사건의 형평을 맞춰야 하는데 (법안 심사 단계에서) 단독부로 예외조항을 마련한 것은 여전히 중대재해에 대한 규범 인식이 미흡했던 것”이라며 “합의부에 사건을 맡긴다는 것은 중한 범죄에 대해 엄중하게 심리하라는 취지가 있는 것인데, 중대재해가 산재의 일환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런 개정이 이뤄진 듯 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단독부 판사는 1명이라 판결에 편차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봤다. 권 변호사는 “합의부는 부장판사 1명과 배석판사 2명이 경험이나 법리를 합의해 조율하는 과정에서 편차를 줄일 수 있지만, 단독 판사의 인식에 기대면 상당한 편차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집중 심리 저하 우려는 기우” 반박 견해도

반면 단독재판부 배당으로 ‘집중 심리’가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는 섣부르다는 견해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단독부가 심리하면 사건이 빨리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나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 등도 대부분 단독부에서 심리한다”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형사사건에서 배당 기준은 법정형이라 중한 범죄는 합의부에 배당되는 것이 맞다”면서도 “단독부 심리라고 해서 형량이 현저히 낮아진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단독 사건이라도 재정결정을 통해 합의부에서 심리할 수도 있다. 법원 예규에 따르면 △선례나 판례가 없는 사건 △선례나 판례가 서로 엇갈리는 사건 △사실관계나 쟁점이 복잡한 사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 등은 합의부로 재배당할 수 있다.

한국제강 사건의 관할법원인 창원지법 마산지원은 재정합의를 거쳐 합의부에서 계속 사건을 진행할 방침이다. 법원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여론의 관심이 높은 사안이고, 법원도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고 합의부에서 심리했다”며 “단독부 사건이라도 필요하면 합의부에서 재정결정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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