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로 시행 1년을 맞았다. 재계는 법 시행 이후 50명 이상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실효성을 깎아내린다. 정부는 재계 입장을 반영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내놓고 보완(혹은 완화) 입법을 서두르겠다는 계획이다.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은 효능이 없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의 공소장 11건을 모두 입수해 살펴봤다. 네 차례에 걸쳐 한계와 성과를 짚고 개선점을 모색한다.<편집자>

중대재해 수사업무를 맡고 있는 근로감독관 A씨는 요즘 통 잠을 자지 못한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서 업무 생각을 하게 되고 아침까지 한숨도 자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는 지난해 발생한 제조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사건 수사를 10개월 가까이 끝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서 보강수사 지시만 세 차례나 내려왔다. 결국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고용노동부는 7개 지방노동관서에 중대재해 수사를 전담하는 ‘광역중대재해관리과’를 신설했다. 애초 100명을 인력을 배치했다가 최근 17명을 증원했다. 중대재해 사건이 계속 늘어나는 데다 수사도 장기화하면서 기존 수사인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중대재해 수사업무는 노동부 내에서도 가장 기피하는 일로 꼽힌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건 처리에 대한 부담이 크다”며 “새로 제정된 법에다 판례 이론도 쌓인 게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년간 압수수색만 30차례
방대한 수사범위, 쉽지 않은 입증책임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작동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수사 장기화’를 꼽는다. 지난 26일 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아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컸다. 지난해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644명이다. 이 중 48명은 법 시행일(2022년 1월27일) 이전에 숨졌다. 노동부는 229건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해 52건을 처리했다. 사건처리율은 22.7%로 177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의 사건처리율이 2021년 63.7%인 것과 비교하면 노동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수사 속도는 매우 느린 편에 속한다.

실제로 노동부가 검찰에 송치하기까지 걸린 평균 수사 기간은 132일이다. 6개월 이상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만 해도 1호 사건인 삼표 채석장 매몰사고를 비롯해 53건에 이른다. 이처럼 장기화하는 이유는 수사 범위가 방대하고 범죄혐의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태호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과거 5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이뤄진 압수수색은 평균 연 2.1회였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는 1년 동안 30건의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1번 압수수색 할 때 감독관이 많게는 40명씩 투입된다.

기업의 임의제출 서류도 방대하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점검 여부를 살피기 위해 조직도부터 안전보건 관련 규정, 도급계약서, 위임전결 규정 등 상당한 양의 자료를 제출할 것을 기업에 요구한다. 또 피의자와 참고인 조사도 원·하청 관계자들을 10차례 넘게 소환하기도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에는 대부분 사건에 압수수색이 진행됐지만 하반기 들어 수사해야 할 사건이 늘면서 강제수사보다는 자료 임의제출이나 소환조사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수사가 방대해진 이유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죄 성립과 함께 중대재해 발생과의 인과관계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는 13가지다. 크게 분류하면 △안전보건 인력 및 조직, 예산편성 △절차·기준 마련 △반기 1회 이상 점검 △점검결과에 따른 조치 등이다. 어느 정도 서류작업이나 컨설팅으로 형식을 갖추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는 갖춰진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유일하게 불기소 처분을 받은 대흥알앤티 사건이 대표적이다.

▲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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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어려우니 입증 쉬운 사건에 송치 몰려

지난해 50명 이상 사업장 중대재해가 늘어난 결정적인 이유는 2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형사고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화재·폭발, 무너짐 등 2명 이상이 사망한 사고는 13건으로 전년 대비 5건이 늘었고, 사망자수도 39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전보다 77.3%나 증가했다.

반면 노동부 수사는 떨어짐이나 끼임 등 비교적 인과관계가 명확한 재래식 재해에 집중됐다. 지난해 노동부가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넘긴 34건 가운데 떨어짐 사고는 35.3%(12건), 끼임 사고는 23.5%(8건)으로 58.8%를 차지한다.

노동부에 따르면 떨어짐 사고 12건은 모두 안전난간이나 작업발판, 안전대 부착설비 등 기본적인 안전시설물을 설치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끼임 사고는 주로 노동자 접근을 제어하는 방호장치를 설치하지 않거나 가동 중인 설비를 정지하는 절차 없이 임의로 작업하도록 해 발생한 사고다. 사고의 원인이 분명해 화재·폭발사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경영책임자의 고의성 입증이 쉬운 사건들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기소한 11건의 공소장 모두에서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업무수행평가 기준’을 마련하도록 한 의무(시행령 4조5호) 위반을 적시했다. 반면 노동부는 34건의 송치사건(복수혐의 적용) 중 28건(22.2%)에서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및 점검 의무(시행령 4조3호)’ 위반 혐의를 적용해 차이를 보인다. 시행령 4조5호의 경우 20건으로 15.9%의 비중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많이 적용한 조항은 ‘급박한 위험에 대비한 매뉴얼 마련 의무(시행령 4조8호)’ 미이행으로 17건(13.5%)이다. 노동부는 “시행령 4조 3·5·8호 규정 위반이 송치사건 전체의 51.6%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사망으로 돈 버는 대형로펌
수사관 1명당 사건, 올해 1.9건 내년엔 5건 이상?

수사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또 있다. 경영책임자 처벌만은 막으려 대형 로펌들이 동원되고 선을 넘는 법률 컨설팅이 수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중대재해 혐의가 적용된 226건의 사고 중 158건은 기업이 로펌을 선임해 법률 컨설팅을 받고 있다.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기업들은 기소되기 전 변호사부터 선임해 수사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26일 노동부 토론회에서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4시간 대기조로 불리는 대형 로펌이 공개적으로 압수수색을 피하는 법이나 진술을 거부하는 법 등을 경영책임자에 교육하고 혐의부인과 증거인멸 시도 등을 하고 있어 강제수사 빈도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수사 기간은 장기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50명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이 확대되는 2024년부터다. 지난해 발생한 중대재해에서 50명(건설 공사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이 62.3%를 차지한다. 현재 중대재해 수사관 1명당 1.9건의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데, 2024년에도 중대재해가 크게 줄지 않고 수사가 정체되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수사관 1명당 5건 이상의 사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는 매년 1%씩 5년 동안 5%의 공무원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중대재해 수사관 인력과 역량이 크게 향상되지 않는다면 중대재해 사건 수사 표류는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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