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은 7월 에너지 원가 인상으로 폭리를 취했다며 정유사를 대상으로 횡재세 도입을 촉구했다. <자료사진 정소희 기자>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고금리 정책과 각종 악재로 자금줄이 마른 증권업계가 구조조정에 시동을 걸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증권가를 떨게 하는 구조조정 한파와 정부의 정책대응, 노동관점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정책을 분석한다.<편집자>

① 돈 줄 마른 증권사 해고 칼춤 춘다

② 채안펀드 1조6천원 정부 신뢰 무너뜨렸다

③ 포스트 코로나 경제정책, 노동관점에서 묻다

지난달 30일 경남 창원에 소재한 건설사인 동원건설산업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최근 심화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달 28일 2차 도래한 어음 22억원을 결제하지 못했다. 10월 중순께는 국내 건설사 가운데 도급순위 8위인 롯데건설이 부도설에 휩싸였다. 롯데건설은 10월과 11월 두 달간 계열사에게 9천억원을 빌렸고 이 기간 2천억원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단기간에 1조1천억원의 현금을 채운 모습은 자금시장 경색 국면과 맞물리면서 부도설에 힘을 실었다.

금리인상 직격타 건설업·2금융권 ‘붕괴’ 우려

건설사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대규모 재건축으로 화제를 모았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최근 분양 결과 경쟁률 3.7대 1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을 기록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실계약률에 따라 공사 지연까지 예상하는 분위기다. 청약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하면 공사대금을 치르는 데 어려움이 커져 공사가 지연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공사자재 물가가 대폭 올라 적자가 누적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건설사 존립에도 위협적이다. 부동산에 투자한 증권사 같은 2금융권을 중심으로 도산 우려가 확산하고 희망퇴직 같은 정리해고가 고개를 든 이유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것은 한국은행의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 탓이 크다. 한은은 지난해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0.75%로 정했다. 이후 같은해 11월 다시 0.25%포인트를 인상해 1%로 정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를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나 잘라 낸 0.75%로 정한 후 20개월간 지속한 이른바 ‘제로(0)금리’ 시대의 종언이다.

이후 금리인상은 가팔랐다. 속도를 조절하던 한은은 지난 7월 금융통화위에서 기준금리를 단박에 0.5%포인트 인상하는 이른바 ‘큰 걸음(빅 스텝)’을 밟았다.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현재 국내 기준금리는 제로금리 종막 1년 만에 3.25%로 껑충 뛰었다.

코로나19 가계 직접 지원한 양적완화 고통스런 회수

물가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면서 세계 각국이 마스크를 벗는 사이 물가가 뜀박질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2월 3.7%였던 소비자물가가 7월 6.3%에 달할 정도로 올랐다. 세계적인 물가인상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세계경제가 침체하면서 강대국을 중심으로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이전하는 이른바 리쇼어링이 발생했다. 가치사슬에 따른 분배가 아니다 보니 공급자쪽의 가격이 올랐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량시장이 꿈틀거렸고 덩달아 에너지 원가마저 올랐다.

우리나라는 특히 부동산가격이 폭등했다. 제로금리 아래 돈 빌리기 쉬워지니 단군 이래 가격이 내린 적 없다는 부동산에 투자가 쏠렸다. 이른바 부동산대란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 경제위기의 핵으로 지목받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성행했다.

물가가 세계 각 곳에서 뛰어오르자 기준금리 인상 러시가 시작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금리에 반영된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의 이자가 불어난다. 대출상환 압박이 강해지면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줄어들고 물가가 내려간다. 인위적으로 경제의 활력을 낮춰 물가를 낮추는 것이다.

종래에는 이런 금리인상이 가파른 자금시장 경색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과거 경제위기마다 국가가 금융기관에 돈을 쥐어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따른 위기는 그 정도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각국은 가계에 직접 지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0%로 낮추고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을 정도다. 이를 다시 회수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금리 올릴 만큼 올렸다”
물가 안정보다 불황 극복 주장

그런데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혹은 이제 올릴 만큼 올린 것은 아닐까. 일부 경제학자와 전문가들은 “이만하면 됐다” 혹은 “애당초 기준금리 인상 대응이 틀렸다”는 논점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이만하면 됐다는 주장이다. 현대경제연구소는 최근 12월 경제주평을 발표하고 수출과 내수의 동반 침체가 시작됐다며 기준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 우리 경제의 대들보인 수출은 대중국 무역수지는 중국이 저성장기조로 돌입하면서 곤두박질했다. 10월20일 기준 우리나라의 대중국 무역흑자는 27억달러(3조5천663억원)인데, 이는 지난해 243억달러(32조881억원)에서 87%가 증발한 규모다.

보고서를 작성한 주원 현대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급격한 경기침체 가능성을 생각할 정부의 내년도 경제운용방향 목표는 물가 안정보다 불황 극복에 비중을 둬야 한다”며 “내수시장 위축 원인 중 하나인 고금리 현상 완화를 위해 미국 정책금리를 따라가기보다 한국 시장에 맞는 독립적 통화정책 방향 수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물론 이런 제안의 끝자락에는 기업 지원과 규제 완화가 있다. 보고서는 “시장 여건 변화 대응력이 취약한 중소기업 무역보험 및 수출물류비 지원 확대 정책을 강화”하고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핵심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단계적 완화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금리인상 피해를 본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책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물가인상 억제 대책, 금리인상 아니다”
계급적 통화정책 비판

한은의 금리인상이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비판도 나온다. 한은이 물가인상 대책으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기대인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기대인플레이션은 금융주체들이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수치화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을 추동한다고 여겨 왔다. 반론도 있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 게 아니라 반대”라며 “실제 인플레이션이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한은이 기대인플레이션을 조사하는 방식에 따르면 응답자는 현 시점의 인플레이션에 기대어 기대인플레이션을 말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인플레이션이 자극된 상황이니 응답의 결과인 기대인플레이션도 오르는 것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의 후행지표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물가 오르니 임금인상 자제? “사실은 반대”

금리인상에 따른 결과가 차별적이라는 점도 금리인상을 제고해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나 교수는 “주류경제학에서는 통화는 중립적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계급적”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줄곧 물가인상을 자극할 수 있으니 노동자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라고 촉구해 왔는데 이야말로 기망이라는 것이다.

실제 서구 경제학자의 연구들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미국 노동자 임금이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19%)보다 기업의 이윤 증가가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38%)이 더 컸다. 물가급등의 원인을 나눠 보니 임금상승에 따른 영향은 15%로, 이윤증가에 따른 영향은 60%라는 호주연구소의 분석도 있다. 이자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은 5월 2019년 4분기부터 2020년 4분기까지 임금과 기업 이윤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3~4분기부터 기업 이윤이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 임금이 차지하는 몫이 커질수록 물가상승률이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이 대목에서 기업의 초과이윤에 대한 과세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른바 횡재세다. 특히 공급망 위기를 틈타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인 정유사가 우선 타깃이다. 코로나19 기간 천문학적 수익을 기록한 4대 금융지주도 예외는 아니다. 단순한 징벌적 과세 이야기는 아니다.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시장 요인으로 높은 이익을 거뒀을 때 부과하는 세금인 횡재세 같은 과세를 바탕으로 물가상승에 피해를 입은 저소득층을 위한 물가 바우처 같은 보조적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종합하면 계급 차별적 금리인상으로 물가를 낮추는 발상보다 합리적 과세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두텁게 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부실한 곳 수술 불가피” 금리인상 지속 목소리도

물론 여기까지는 여전히 논쟁의 범위에 그치는 게 사실이다. 경제 전반에서는 금리인상을 지속하면서 환부를 도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어둡지만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금리가 더 인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낮출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통화정책 효과를 반감하는 유동성 완화 정책을 펴기보다 기업의 섣부른 부도를 막기 위한 회생절차 정비와 고용안정을 위한 조치를 병행하고 지금처럼 다소 환율에 여유가 있다면 원화를 절하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실한 곳은 수술대에 올릴 수밖에 없고 아프지 않게 수술하고 진통제를 처방해야 한다”며 “수술을 하지 않으면서 진통제(유동성 완화)만 놓고 금리를 못 올리게 하면 자칫 더 고통스러운 수준으로 금리를 폭등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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