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들은 레고랜드 사태 관련 정부의 초기대응이 미흡해 시장의 신용 붕괴를 불렀다고 꼬집었다. 11월28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습. <기획재정부>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고금리 정책과 각종 악재로 자금줄이 마른 증권업계가 구조조정에 시동을 걸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증권가를 떨게 하는 구조조정 한파와 정부의 정책대응, 노동관점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정책을 분석한다.<편집자>

① 돈 줄 마른 증권사 해고 칼춤 춘다

② 채안펀드 1조6천원 정부 신뢰 무너뜨렸다

③ 포스트 코로나 경제정책, 노동관점에서 묻다

정부의 레고랜드발 자금시장 경색 최초 대응정책은 9월28일 발표한 2조원 규모 국고채를 되사는(바이백) 것이었다. 한국은행도 3조원 규모 국채 단순매입 계획이다. 강원도의 강원중도개발공사(GJC) 회생신청 발표보다 앞서 나온 것으로, 이미 레고랜드가 심상치 않다는 증권가 입소문이 돈 뒤였다.

이후에도 대책은 이어졌다. 정부는 10월23일 이른바 50조원 더하기(+) 알파(α) 지원대책을 내놨다. 한은은 같은달 27일 환매조건부채권(RP) 6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11월11일에는 1조8천억원 지원을, 11월17일에는 5대 금융지주의 85조원 지원정책을 냈다. 지난달 28일에는 RP 2조5천억원 추가 매입 같은 정책을 더했다. 지원규모를 다 더하면 100조원이 넘어가는 규모다. 발단이 된 GJC가 BNK투자증권에 빌린 돈이 2천50억원임을 고려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 채권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2천464조1천1571억원에 달한다. 이른바 ‘조족지혈’에 불과한 레고랜드 사태가 이 정도 규모의 채권시장을 위기로 몰아간 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부 초기대응에 증권맨들
“시장 사정 모른다” 신용 붕괴

노동자들은 정부의 초기대응을 꼬집는다. 9월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GJC 회생신청 발표 이후 한 달 정도 시차를 두고 발표된 정부의 이른바 50조원 더하기 알파 대책이 문제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최근 기업어음(CP)과 회사채 시장, 단기 금융시장의 불안심리 확산과 유동성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시장안정조치에 더해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 더하기 알파 규모로 확대해 운영하겠다”며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전펀드(채안펀드)는 가용자원 1조6천억원을 활용해 내일(10월24일)부터 시공사 보증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등 매입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한국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이 운용하는 CP 매입 프로그램 한도도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2배 확대하고 증권사 같은 금융회사가 발행한 CP도 매입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김기원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장은 “채안펀드 1조6천억원 활용 소식에 여의도가 뒤집어졌다”며 “자금이 말라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증권가 같은 금융시장을 되살리는 데 턱없이 모자란 규모라 ‘정부가 사태를 잘 모른다’는 인식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한은의 CP 직접 매입 경로가 닫힌 문제도 크다. 현재 정부가 공급한 100조원가량의 유동성 매입 자금은 사실 시장 내부의 자금을 활용하는 성격이 짙다. 증권을 대상으로 한 채안펀드도 증권사들이 펀드로의 지급을 약정한 자금이 모태다. 일부 증권노동자들은 “증권사 지원할 돈을 증권사에서 빼온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자금시장을 궁극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인 한은이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직접 떠받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신용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은은 코로나19가 확산을 시작한 2020년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설립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을 벗어났다고 판단해 지난해 말 매입을 종료했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자금시장 경색을 비롯한 금융시장 불안정 우려가 크다면 SPV를 활용해 한은이 직접 회사채와 CP를 매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리인상 지속·부동산 PF 부실,
내년 더 큰 위기 온다

전문가들이 자금시장을 비롯한 금융안정을 위한 후속대책을 요구하는 배경은 내년에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핵심은 지속적인 금리인상과 부동산 PF 위기다.

정부정책으로 급한 불은 껐다지만 중소형 금융회사들이 다수 얽혀 있는 부동산 PF 구조상 돌발적인 문제가 터질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만약 부동산 PF로 사업을 진행하던 건설현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역으로 금융사에서 지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건설사와 금융회사 모두 즉각적인 도산 위기에 처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부동산 PF 위기 원인 진단과 정책적 대응방안 보고서는 “수년간 이어진 우호적 부동산 경기 흐름 속에서 전국적으로 부동산 PF 사업이 추진됐는데 부동산 PF 시장 내 금융사 참여 방식이 다양해지고 규모 역시 크게 늘었으며 유동화증권을 통한 자본시장 연계성이 커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 조치는 높은 신용등급의 대기업 회사채나 금융채 지원 중심이라 부동산 PF 사업과 관련해 유동성 공급장치로서 한계가 있고 부동산 PF 부실가능성 대응조치로는 불충분”하다고 적고 있다.

부동산 PF는 부동산개발사업 추진에 필요한 자금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조달하는 기법이다. 금융회사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건설시행사와 대출 약정을 맺고, 부동산 신탁회사에 자금을 예치하면 공사기간 신탁회사가 하도급업체에게 자금을 집행하고, 준공 이후 시행사가 분양·임대사업으로 자금을 상환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시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이른바 본PF와 브릿지론이다. 본PF는 건설시행사가 직접 부동산 토지를 매입하거나 토지주에게 계약금을 지급한 약정서를 받아 공사도급계약서 인허가까지 마무리한 사업장에 금융기관이 땅값과 공사비를 대출하는 방식이다.

브릿지론은 사업계획서와 시공사 사업 참여 의향서, 땅을 팔겠다는 약정서만으로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일종의 양해각서(MOU) 수준에서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 최근 제로(0)금리 속 부동산 활황기에 각광을 받았지만 부실 위험은 더 크다. 김 본부장은 “브릿지론은 증권사가 무분별한 부동산 PF 확장의 투자책임을 지고 손절하더라도 실제 공사에 들어간 본PF에 대해서는 관련한 사업장 고용과 건설사 도산을 우려해서라도 지원이 필요하다”며 “현재 정부의 지원정책에 AA급 신용등급을 가진 증권사는 배제된 상황이라 이런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부실 현실화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금융사쪽의 부실이 아니더라도 최근 원자재 인상 등으로 건설사의 공급우려도 있는 상황이다.

내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부실이 건설사로 전이하거나 건설사의 원자재 공급 문제로 공사가 중단할 우려가 커 정부의 예방적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내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부실이 건설사로 전이하거나 건설사의 원자재 공급 문제로 공사가 중단할 우려가 커 정부의 예방적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아직 안정’ 실업률,
내년부터 널뛸 우려 “안전장치 시급”

우려대로 부동산 PF쪽에서 부실사태가 잇따른다면 금융사에서 시작한 자금경색 위기가 전국적인 실업으로 이어질 염려도 크다. 자금시장 경색에도 10월 실업률(계절조정)은 이전 달과 같은 2.8%를 유지했지만, 영향이 없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실업률은 경제위기에 따른 후행지표기 때문이다. 증권사 정리해고도 12월 들어 본격화하는 모양새라 다른 산업으로의 고용위기 전이는 해를 넘길 전망이다. 나 교수는 “만약 생각하지 못한 대형 건설사나 증권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대처가 어렵다”며 “자금경색 위기가 해소되더라도 부동산 PF로 과잉된 시장인력 구조조정을 위해서라도 증권사의 구조조정은 진행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한 일반 노동법적 안전장치 마련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예방적 차원에서라도 부동산 PF 관련한 정부의 유동성 공급이 신속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부동산 PF 같은 곳에서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 유동성 공급을 해야 한다”며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할 것으로 보이는 내년 상반기에 재정지출을 집중해 내년도 예산 조기집행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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