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노동자들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정부의 정책대응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을 하는 사무금융노조의 모습. <강예슬 기자>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고금리 정책과 각종 악재로 자금줄이 마른 증권업계가 구조조정에 시동을 걸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증권가를 떨게 하는 구조조정 한파와 정부의 정책대응, 노동관점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정책을 분석한다.<편집자>

① 돈 줄 마른 증권사 해고 칼춤 춘다

② 채안펀드 1.6조원 정부 신뢰 무너뜨렸다

③ 포스트 코로나 경제정책, 노동관점에서 묻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권업계가 대량해고 사태를 앞두고 있다. 이미 연봉계약직을 기반으로 구성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이나 법인영업·사업지원부서를 중심으로 해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주사 지원이 더딘 일부 증권사는 정리해고에 가까운 희망퇴직을 실시하거나 할 전망이다. 이런 고용위기는 내년도부터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는다.

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규직 대상 희망퇴직을 공식화한 DGB금융그룹 산하 하이투자증권은 이미 10월께부터 이른바 ‘냉장고부서’를 운영해 희망퇴직 대상자를 솎아내고 있다. 냉장고부서란 희망퇴직 대상으로 분류한 노동자를 한 데 모아 놓는 부서다.

하이투자증권 ‘냉장고부서’ 일찌감치 신설

김형래 사무금융노조 하이투자증권지부장은 “회사가 희망퇴직 공식화 전 냉장고부서를 신설하고 희망퇴직 대상과 교집합을 이루는 노동자 10여명을 발령했다”며 “사용자쪽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할 방침인데 나가지 않는 직원에게 긴장감을 주는 환경을 고착화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정식명칭은 디지털케어팀이다. 비대면 방식으로 개설한 계좌 등 비대면 자산을 관리하는 역할이다. 10만원 미만의 6개월 이상 비활동 계좌들이 대상인데, 이들 계좌를 일일이 확인해 하루에 15통씩 전화를 하고 기록해 보고하면서 영업을 하는 부서다. 반복적인 단순업무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금융업계에서 희망퇴직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투자증권은 2018년 10월 지금의 DGB금융그룹으로 인수될 당시 향후 5년간 노조와 협의하지 않은 인위적 구조조정을 일체 하지 않겠다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한 바 있어 사실상의 단체협약 위반에 해당한다. 김 지부장은 “협액 체결 당시 일체라는 표현은 희망퇴직을 겨냥했던 것”이라며 “법률상 정한 해고 외에는 불가능하고 노조의 동의를 명시했음에도 희망퇴직을 강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이투자증권의 희망퇴직 규모는 거의 40%에 육박한다. 정규직 700여명 가운데 260여명이 회사가 정한 희망퇴직 목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은 만 55세 이상, 근속연수 20년 이상, 근속연수 10년 이상 2급 부장으로,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하면 희망퇴직 대상이다.

상반기 800억원 벌었지만 후반기 정체

하이투자증권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배경은 최근에 지속한 자금시장 경색 같은 위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은 이미 800억원 가량의 이익을 전반기에 거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반기부터 손익이 나빠진 상태다. 올해 영업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워진 상황에서 고정비인 인건비를 삭감하기 위한 조치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 인건비만 줄이고 보자는 식의 희망퇴직 시도는 근시안적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이 회사는 최근 문제가 된 부동산 PF 투자에 따른 손실을 감내할 충당금 규모도 정하지 못한 상태로 알려졌다. 제대로 된 위기경영계획 없이 우선 사람만 줄이는 것이라 노조가 동의하기 어렵다.

김 지부장은 “내년은 올해보다 힘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고 하이투자증권만의 일이 아니라 업계에 희망퇴직에 대한 요구가 생길 수도 있다”며 “그러나 그를 위해 노조와 협의해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고용안정협약으로 정했는데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4일부터 컨테이너를 동원한 농성을 시작하고, 냉장고부서가 설치된 서울과 대구에서 결의대회도 진행할 방침이다.

부동산 PF·법인영업 ‘계약해지’ 대세

문제는 이렇게 커진 증권사 위기가 하이투자증권만의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단기계약 방식으로 일을 하는 부동산 PF팀과 법인영업·리서치센터 같은 사업부문 축소가 상당부분 진행됐을 것으로 본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이미 법인 상대 영업부와 리서치사업부를 폐지하기로 했고, 다올투자증권도 정규직 희망퇴직을 지난달 실시했다.

한만수 노조 케이프투자증권지부장은 “케이프투자증권은 2016년 사모펀드로 인수되면서 이미 500명 규모 노동자가 250명 정도로 감원됐는데 (사용자쪽이) 올해는 더욱 규모를 줄이길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주요 업무는 자산관리(WM)와 기업금융(IB), 주식매매(S&T)다. 이 가운데 기업금융은 특히 소규모 인원으로 조직된 팀단위로 계약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막대한 연봉을 받는 이들이기도 하지만 연단위 계약을 하다 보니 고용안정성은 매우 취약하다. 최근 부동산 거래가 뚝 끊기고 자금시장마저 경색하면서 돈이 돌지 않아 건설사가 위기에 처하다보니 이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PF를 주로 도맡았던 IB쪽 계약직들이 다수 일자리를 잃고 있다. 평판이 중시되는 업계 특성상 이들은 사용자쪽의 계약해지 요구를 거스르기 어렵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아 그 수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기원 노조 증권업종본부장은 “신한투자증권 같은 곳을 제외하면 IB나 S&T쪽은 거의 계약직”이라며 “케이프투자증권처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은 채 부서를 정리한 증권사가 많다”며 “증권사들이 11월까지는 유동성 확보에 집중한 뒤 정부 지원책 등의 추이를 보면서 현재는 부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한국은행은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모습. <한국은행>
▲ 한국은행은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모습. <한국은행>

금리인상발 위기 지속, 고용안정 대책 절실

최근의 자금조달 위기는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장 미국이 금리를 지속해 인상할 방침인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결국 증권사들의 노동자 정리해고 유혹은 더욱 커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우선 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태도를 지적했다. 조경범 노조 KB증권지부장은 “하이투자증권처럼 노사가 합의한 고용안정협약을 사용자가 버젓이 무시해도 과태료 처분이 전부”라며 “헌법에 근거한 자율적인 교섭으로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저버리는 행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하고, 노조의 활동에 무조건적인 불법딱지를 붙이는 시각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대책도 촉구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자금경색 위기를 부른 레고랜드 사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정부의 초기 대응이 매우 미진했다는 것”이라며 “지금 상황이 지속하면 가계 대출금리 인상으로 가처분소득이 없어져 구조적인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금융회사 1곳, 하이투자증권 1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장기불황 초입에 있는 상황”이라며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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