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9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유족들이 모이면 안 됩니까?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유족 몇 분을 만날 수 있었어요.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을 만든 것도 결국 유족끼리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제공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입니다. 유족들이 모여 얘기할 공간은 참사 24일이 넘도록 왜 안 해 주는 겁니까.”(희생자 이민아씨의 아버지)

“왜 (희생자들을) 경기도 외곽 병원으로 흩어 놓았나요? 무엇이 두려워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린 것입니까? 유족끼리 만나지 못하도록 철저한 계산 아래 이뤄진 것이 아닌가요? 유족의 아픔을 진정성 있게 생각한다면 솔직해지세요. 책임자들은 우리 아들에게 사과하고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세요.”(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내 유족의 흐느낌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희생자 부모는 “대통령님, 우리 아들 살려 내 주세요”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말을 토해 내듯 외쳤다. 유족 한 명은 울다가 실신 직전에 놓이기도 했다. 자식의 영정을 품에 안은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유족 6명 입장 발표 “국가의 간접살인”

22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처음으로 세상 앞에 섰다.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해 158명이 목숨을 잃은 지 24일 만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는 희생자 유족 34명과 두 차례 간담회를 가진 다음 이날 오전 유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는 28명의 유족이 참석했다. 희생자 자녀의 영정사진을 꼭 안고 나온 유족 6명은 저마다 꾹꾹 눌러 쓴 자필 입장문을 힘들게 읊었다. 이들은 자식을 잃은 심경을 울분과 함께 토해 냈다. 유족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통곡이 터져 나왔다.

유족들은 “국가는 없었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희생자 송은지씨의 아버지는 “이태원 참사는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에 의한 간접살인”이라며 “10월29일 오후 10시15분 차디찬 죽음의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보고받은 적 없다, 몰랐다고 일관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발언 말미에 김의곤씨의 시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를 낭독하자 이내 회견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오스트리아 국적의 희생자 김인홍씨의 어머니는 “아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 어학당에 공부하러 왔다가 이태원에서 희생됐다”며 “우리 아들을 보내며 가장 힘든 것은 나라를 이끄는 분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8일 오스트리아 빈에 아들 장례식이 있어 가야 한다며 외국 국적이지만,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유족 모임 차단 ‘비인도적’ 처사”

스물여섯 살 딸을 떠나보낸 희생자 이상은씨의 아버지는 참사 현장을 찾아 손수 썼던 편지를 읽으며 흐느꼈다. 그는 이씨가 미국 공인회계사에 합격하고 “아빠 합격했어”라며 웃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딸을 대신해 절규한다”며 “국민 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지키겠다며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하고 전 대통령까지 수사하려는 현 정부의 모습에 묻고 싶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했는지 이제는 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는 아들 사진과 사망진단서를 품속에서 꺼내며 울먹였다. 그는 “사망진단서에는 사망 추정장소가 ‘이태원 노상’이라고 돼 있다. 이게 말이 되냐”며 “어디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아 병원 이송 도중 사망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무능한 정부에 아들을 뺏겼지만, 더는 눈물만 흘리는 무능한 엄마가 되지 않겠다”며 철저한 진상조사와 대통령의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희생자 이민아씨의 아버지는 참사 문제점을 두 가지로 지적했다. 그는 “첫째로 집회 대처와 대통령실 경호에 경찰력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둘째, 참사 이후 수습진행 상황 안내와 피해자 권리 안내 등 기본적인 조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특히 유족의 모임을 차단한 정부 대처는 “비인도적”이라고 성토했다.

배우 이지한씨 어머니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 어머니는 “초동대처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만약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정안전부 장관의 자식들이 한 명이라도 ‘압사당할 것 같다’고 신고했다면 과연 설렁탕을 먹고 뒷짐 지고 걸어갈 수 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아울러 책임자들에게 모두 직무유기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며 “엄마 생일 축하해. 사랑해”라고 말하는 육성을 이씨 어머니가 틀자 뒷줄에 있던 유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다시 흘렸다.

▲ 홍준표 기자
▲ 홍준표 기자

“진상규명, 유족이 주체 돼야” 6가지 요구

이날 유족의 공통된 요구는 일관됐다. 철저한 책임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민변 이태원 참사 TF는 유족의 6가지 요구사항을 정리해 발표했다. 유족들은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것 △모든 책임자를 조사해 엄격한 책임을 물을 것 △진상규명 경과를 투명하게 밝히고 유족의 참여를 보장할 것 △피해자들이 소통할 공간을 보장하고 인도적 조치를 할 것 △유족과 협의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추모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TF는 유족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참사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TF 공동간사인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희생자 가족에게는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한 조치를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진정한 애도와 추모는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지원 대상’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 변호사는 “피해자는 관련 정보에 접근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주체여야 한다”며 “정부는 유족 지원 대책을 일방적으로 공표할 것이 아니라 참사 당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진상을 확인하고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을 직접 들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희생자 유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명단공개는 본질 호도, 유족 뜻 반영해야”

희생자 ‘명단공개’ 논란에 대해서도 사안의 본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TF 팀장인 윤복남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명단공개의 잘잘못이 핵심이 아니라 정부의 공적 조치를 통해 진행했으면 됐을 일”이라며 “정부의 조치가 미비한데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 유족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 유족은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딸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있던 한 유족은 “위패와 영정사진이 없는 분향소 또한 2차 가해”라고 정부를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분향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 앞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무릎 꿇고 통곡하는 것을 봤다”며 “그것이 분향소가 맞나. 그런 분향소를 봤나. 저는 못 봤다”고 했다.

한편 법률가 단체들이 속속 피해자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민변 TF는 앞으로 유족의 의견을 모아 구체적인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지난 18일에는 이태원 참사 현장 CCTV와 경찰·소방당국의 무전 기록 등 증거보전을 법원에 요청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8일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회’ 출범식을 갖고 국가배상책임 상담과 소송제기 등 법률지원을 실시한다.

▲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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