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공공기관에 노동이사를 두도록 한 법률이 지난 8월 시행됐지만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임명 절차는 ‘멈춤’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이사 임명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주무부처가 법 시행에도 노동이사 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3일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공부문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8월2일 개정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시행 이후 곳곳에서 노동이사제 선출 논의가 파행을 겪고 있다. 부산항만공사·인천항만공사·여수광양항만공사·울산항만공사 등은 임원 임명권을 가진 해양수산부에서 ‘노동이사 도입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 해수부가 노동이사제 도입 논의 중단을 지시한 이유는 이들 항만공사가 기재부의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방안’에 따라 공기업에서 기타공공기관으로 변경되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지난 8월22일 15년째 유지해 온 ‘정원 50명, 총수입 30억원, 자산 규모 10억원 이상’인 공기업·준정부기관 기준을 정원 300명, 총수입 200억원, 자산 규모 30억원 이상으로 높였다. 이에 따라 공기업(36개)과 준정부기관(94개) 중 약 32%(42개)가 기타공공기관으로 바뀐다. 노동이사 선출 의무를 가진 공공기관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 것이다. 4개 항만공사도 이에 해당한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변경되면 기재부가 아닌 주무부처가 임원 임면권을 갖고 공공기관운영법이 아닌 개별 법이나 정관에 따라 임원을 선출한다. 기타공공기관이라도 공공기관운영법을 준용해 노사합의로 노동이사를 둘 수 있지만 주무부처인 해수부에서 ‘기타공공기관은 노동이사제 도입 대상이 아니다’며 선을 그은 것이다. 김주영 의원은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법을 그대로 둔 채 시행령을 개정해 마음대로 공공기관 분류기준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항만공사뿐만 아니다. 공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이달 비상임이사 임기 만료에 따라 노동이사 선출을 준비하던 남부발전에서는 관련 논의가 갑자기 중단됐다. 법 시행에 따라 이사회에서 정관을 개정해 노동이사 근거를 마련한 후 남부발전 노사는 ‘노동이사TF’를 구성했다. 노동이사 처우나 선출방식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회사가 돌연 노동이사TF에 나오지 않고 있다. 송민 남부발전노조 위원장은 “사측이 노동이사TF 논의를 해태하고 있다”며 “이유를 따지자 정부에서 논의를 시작하라는 신호가 안 온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주영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기업인 발전사들에 ‘별도 통지가 있을 때까지 노동이사 도입을 멈추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갑자기 노동이사의 법적 지위를 문제 삼으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려는 기관에 불법을 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재부와 금융위원회는 노동이사의 상법상 지위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특례규정에 따라 ‘사외이사’로 보는 반면, 법무부는 ‘기타 비상무이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 노동이사 선출 논의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김 의원은 “공공적 가치 실현을 위한 지배구조 마련을 위해서는 시행령이 아닌 공공기관운영법 전면 개정이 논의돼야 한다”며 “기재부와 관계부처는 노동이사제 도입 방해행위를 당장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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