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경기도 김포 쓱(SSG)닷컴 네오 물류센터에서 배송기사로 일하는 김태원(37)씨는 ‘1회전 물량’ 기준으로 2~3시간 내에 22~23곳을 배송해야 한다. ‘2회전 물량’은 44~45곳으로 더 많다. 정해진 배송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될 위험도 크다. 김씨는 지난 7월부터 산재·고용보험이 적용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나마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7월 이후 ‘운송비 내역서’에는 보험료가 공제된 내역이 전혀 없었다. 운송사 관리자에게 경위를 물어 보니 “돈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운송사는 보험료 때문에 가입을 못 한다고 미루고, 마트도 수수방관하면서 서로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7월1일부터 특수고용 노동자인 마트 배송기사들도 산재·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보험 적용의 혜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사업주가 고의로 가입을 누락하거나 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추진하는 데다 용차비까지 배송기사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산재·고용보험 확대적용 취지에 맞게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의로 가입 누락하고 ‘적용제외’ 추진까지”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는 2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운송사는 산재·고용보험 가입을 회피하려고 입직신고를 최대한 늦추거나 확대적용을 철회하라는 서명을 배포하고 있다”며 “이제야 사회안전망 안에 들어오게 됐는데 운송사는 보험료까지 노동자에게 전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부터 대형마트나 물류센터에서 음식점·고객에게 상품을 배송하는 ‘유통배송기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포함돼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사업주의 가입 의사와 상관없이 보험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상 재해를 입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유통배송기사는 같은달부터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자가 돼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운송사가 고의로 가입을 누락하거나 배송기사에게 보험료를 전가하는 등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송사마다 대응도 다르다. 같은 네오 물류센터에서 일하지만 다른 운송사와 계약을 맺은 서태일씨의 ‘운송비 내역서’를 보면 산재·고용보험료로 각각 약 1만4천원, 2만3천원이 공제됐다. 서씨는 “몇몇 지역 운송사는 이전까지 없던 ‘관리비’ 명목으로 15만원을 받겠다는 통보를 하기도 했다”며 “절반씩 부담해야 할 산재·고용보험료를 배송노동자에게 전가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송사가 모인 협회 차원에서 고용보험 적용제외를 추진하겠다는 조직적인 움직임도 포착됐다. 경기도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는 지난달 31일 “운송물량에 따라 입·이직이 잦은 화물업계 특성상 실업급여 수급이 어려워 피보험자인 화물차주도 고용보험 가입을 꺼리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며 “협회에서 ‘화물차주 고용보험 적용제외’를 추진하려고 하는 만큼 소속 화물차주를 대상으로 고용보험 적용제외에 찬성하는 서명부를 작성해 제출해 주기 바란다”고 각 회원사에 공문을 보냈다.

▲ 어고은 기자
▲ 어고은 기자

산재신청 또 다른 걸림돌, 용차비

산재보험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더라도 운송사가 입직신고를 누락하거나 보험료를 전가하는 식의 회피하려는 태도는 결국 배송기사가 산재신청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운송사는 대체 기사를 구할 때 드는 비용인 ‘용차비’를 배송기사에게 지우고 있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가 발생해도 요양기간에 마음 편히 쉬기가 어렵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다.

김태원씨는 “하루에 버는 돈이 13만원 정도인데 용차비는 24만~40만원 수준”이라며 “동료의 경우 목디스크로 2주간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1주만 ‘휴차’가 되고 나머지는 용차비를 내라고 해서 결국 일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지회는 “마트와 운송사가 외면하는 사이 배송노동자들만 고통받고 있다”며 “산재·고용보험 확대적용 취지에 맞게 노동부가 마트와 운송사를 대상으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 산재보상정책과 관계자는 “입직 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에는 과태료 조항이 있는데 산재보험료 절반 부담에 대한 (제재) 조항은 없다”며 “(지회 요구에 대해서는) 대응을 검토하고 있어서 답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