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의당은 존재 이유를 검증받는 시간에 들어섰다. 가장 가혹한 자기평가로 다시 태어나겠다. 지난 10년 혼돈의 정치노선을 정리하겠다. 변화된 현실에 맞게 노동 대표성을 확장하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연대를 주도하겠다. 이 변화는 정의당이 없으면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질 시민들과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 이후 위기의 정의당을 이끌고 있는 이은주(53·사진)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지난 25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선언한 말이다. 그는 지난달 12일 원내대표로서 전국위원회 소집권자였다가 갑작스레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전국위서 논의된 3개 안 가운데 관리·안정형이고 쇄신의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비대위였다. 비대위원장에 ‘독재관’을 데려올 수 없어 직접 지휘봉을 들고 달려온 지 한 달반이 지났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은주 위원장을 만났다.

정의당 ‘자기중심’ 잃고 심판을 받다

- 한 달 넘게 비대위를 이끌어 오셨다. 소감은.
“처음엔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제는 안개가 걷혔다고 할까. 초반 전국위 결정사항도 간신히 1안을 선택했다. 비대위 안에서도 ‘한계가 있는 비대위’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있었고, 당원들도 냉소적으로 ‘뭘 하겠어’ 같은 비판적 분위기였다. 비대위원 등 비대위 꾸리는 것도 힘들었다. 일주일 넘도록. 다행히 한석호·김희서·문정은 세 분을 모실 수 있었다. 정의당 10년평가위원회도 출범하고, 본격적인 평가작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자발적으로 요청한 시도당위원회 평가토론을 하러 전국을 한 바퀴 돌았다. 지난주에는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 앞 천막당사를 치면서 하청노동자와 함께했다. ‘아, 정의당이 있어야 할 곳이 여기다’ ‘다시 용기 내 보자’ 그런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동안 당원들이 선거에 처참하게 패배한 뒤 마음의 상처도 크고 화도 많이 났다. 그런 걸 풀어내는 한 달간의 전국 순회 평가의 시간이었다.”

- 정의당은 대선과 지선에서 충격적 결과를 받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나. 정의당 위기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위기의 본질을 두고 토론을 시작했다. 최근 양대 선거에서 시민들은 정의당을 심판했다. 누구를 대변하는 정당이야? 진보정당으로서 계속 유효한가? (이렇게 묻고 있다) 정의당은 고 노회찬 대표의 ‘6411 정신’이 있다. 힘없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시민과 함께하고 대변하겠다고 자임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서 소홀했던 거 아닌가 반성하고 있다. 시민에게 약속했던 원칙과 소신이 흔들리고, 자기중심을 잃었던 것을 평가하고 있다.”

- 자기중심을 잃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른바 검수완박, 조국대전 등 민생과 상관없는 적대적 진영정치에서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언론은 우리가 하는 민생정치보다는 검수완박에 어떤 입장이냐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만큼 우리가 중심을 못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비대위가 이끌 정의당 쇄신은 결국 잃어버린 자기중심을 찾고 우리가 대변해야 할 가난한 시민과 함께 그곳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와의 연대투쟁은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십고초려’ 끝에 완성한 비대위

- 비대위원에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과 김희서 전 정의당 구로구의원, 문정은 광주시당 정책위원장을 선임했다. 노동과 지역, 청년 등 세 가지 의제에 주목한 이유는.
“한석호 비대위원은 노동계에 쓴소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해 온 활동가이지만 변화하는 노동시장 불평등에 연대정신을 갖고 노동운동이 변화해야 한다고 온몸으로 실천한 분이다. 너무 적합한 분이었지만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김희서 위원은 주민들에게 두 번이나 선택받은 지역구 의원 출신이다. 지역정치와 진보정치 연결을 지역에서 온몸으로 해 온 분이다. 이번에 낙선했다. 본인도 충격이었을 것이다. 김희서 위원에게도 공을 많이 들였다.

문정은 위원은 당에서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았다. 청년정치를 정의당에서 시작했다. 지금 광주에서 지역정치를 하는 정의당이 키운 청년정치인이다. 다른 보수정당에서는 청년정치인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당에서 성장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정은 위원이 선임됐을 때 뿌듯했다. 세 비대위원 모두 ‘십고초려’ 하며 모셨다. 노동과 지역, 청년이 정의당의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점에서 핵심 키워드라고 봤다.”

이렇게 완성된 비대위는 정의당 평가작업을 하는 10년평가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재창당과 노동·지역·진보정치통합·선거연대·지도체제 등 6대 핵심의제에 대한 논의도 들어갔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전국적으로 한 바퀴 돌며 평가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고, 6대 핵심의제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토론을 하고 있다. 10년평가위는 각각 한석호·문정은·김희서 위원이 맡은 노선·조직·선거평가위를 구성해서 활동하고 있다. 7말8초께 3개 위원회에서 초안이 나오면 이를 가지고 광역시도당에서 토론할 것이다. 8월 당대회 전까지 토론을 마치고, 당대회에 쟁점을 최대한 정돈해서 제출하자는 게 목표다.”

“노동과 멀어졌다는 지적 뼈아파”

- 정의당은 노동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노동에서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동계 출신 비례의원으로서 의견은.
“노동현장 출신 비례의원으로서 대단히 뼈아픈 지적이다. 정의당이 어떤 노동의제나 현장에서 싸우는 노동자와 연대가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정의당표 노동정치’에 대한 조직적 체계, 집중적 사업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현안이 터졌을 때 단발적 대응에 그쳤던 것이 문제였다. (비대위에서) 그 부분을 평가하고 있다.

특히 노동현장에서 고질적 산업안전 문제, 플랫폼·프리랜서·특수고용 등 새로운 노동형태 문제를 다룰 때도 토론회 등 필요한 것을 했지만 때로는 관성과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관성적 입법과 기자회견을 뛰어넘어 끈질기고 악착같이 공론화하고 변화를 만드는 정의당표 노동정치 복원을 만들어야 한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파리바게뜨·쿠팡·아시아나케이오·연세대·대우조선해양 등 노동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는 그곳에 ‘찾아가는 정의당’ ‘찾아오는 정의당’을 만들기 위해 다시 뛰고 있다”

- 자기중심을 잃었다고 언급했다. 평가에서는 노동중심성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의존전략, 노동·농민·영세상인 등 기층대중을 중심에 놓지 못한 ‘무작위 대중 확장전략’ 등으로 민주당과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노동과 페미니즘을 대척점처럼 놓고 보는 평가도 나온다.
“우리는 거대 양당이 대변하지 않거나 못하는 목소리를 대변했어야 하는데 중심을 잃고 혼선을 빚는 과정에서 제3정당과 진보정당다운 모습을 놓쳤다고 본다. 노동과 페미니즘 역시 제대로 하나의 용광로 안에 녹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에 대해 얼마 전 10년평가위 주관 토론에서도 당내 일정한 공감대를 이룬 바 있다. 정의당은 강령에 성평등사회를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노동시민을 대표하는 동시에 페미니스트 정당이 맞다. 노동과 페미니즘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비례의원, 쇄신으로 신뢰회복”

지방선거가 끝난 뒤부터 당내에서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사퇴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사퇴 권고 당원총투표 발의 서명이 최근 600명을 넘겼다고 한다. 당원 총투표가 성립하려면 전체 당권자인 1만8천185명의 5%인 910명이 8월7일까지 서명해야 한다.

- 왜 이 같은 요구가 계속된다고 보나.
“정의당의 변화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의당 비례의원은 정의당을 상징하는 얼굴이다. 제대로 된 변화가 있어야 시민들이 정의당이 변했구나, 달라졌구나, 여길 것이다. 총투표 발의자들의 그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와 관련해 백가쟁명식 토론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생중계하는 토론회도 했고, 지역에서도 평가하고 있다. 어떤 것도 금기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다 열어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비례의원 사퇴 문제는 결국 해당 의원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강도 높은 쇄신으로 당원과 시민에게 새롭게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 비대위 출범 뒤 정의당이 부쩍 노동현장을 가까이 찾는 것 같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타결은 됐지만 손해배상 소송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노동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추진하려는 노동정책이 다 후퇴정책이다. 연금개혁·노동개혁을 한다면서 그 주체인 노조를 혐오·배제하는 데 대통령과 여당 대표(직무대행)까지 나선다.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적했듯이 약자에게만 법과 원칙을 들이대는 것은 법치가 아니다. 파업하는 노동자에게는 법대로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한다. 맞지 않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약자에게만 법 들이대는 것 법치 아냐”

이 위원장은 지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강자에게만 관대한 가짜 법치주의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그는 “0.3평이라는 사제 감옥에 31일간 자신을 가뒀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을 기억하실 것”이라며 “22년차 용접공인 그의 월급은 207만원이었고, 그 처참한 현실을 고백한 그에게 대통령은 손배소가 법과 원칙이라고 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에서 제기되는 손배소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노란봉투법, 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추진에 당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노란봉투법을 국회 후반기 중점법안으로 추진할 것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최소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배 책임을 떠맡긴 채 조선업 개혁을 위한 다음 스텝을 밟으라고 할 수 없다. 손배 문제를 그대로 둔다면 하청노동자들은 다시는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켜 쟁의권을 박탈하는 손배·가압류를 해소하는 한편 이번에 노사가 합의한 조선산업 비정규직 TF가 제대로 작동해 조선업 변화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19대, 20대 국회에서도 계속 발의됐지만 임기종료로 폐지됐다. 이번에는 반드시 통과시켜 문제를 해소하도록 할 것이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노란봉투법 추진에 탄력이 붙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강병원·임종성 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최근 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TF에서도 노란봉투법 추진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 위원장은 “제가 준비하는 노란봉투법은 한 발 더 나아가 노조법상 손배·가압류만이 아니라 프리랜서 등 (법 밖의) 노동자에게도 손배소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 손잡고와 같이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노란봉투법’ 21대 국회서 통과할까

- 21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로 환경노동위원회를 선택했다.
“1지망으로 환노위를 희망했다. 사실 전반기에도 환노위를 1지망으로 꼽았으나 그때 강은미·류호정 의원 등 경쟁자가 많았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계속 (환노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선점한 셈이다.(웃음) 윤석열 정부가 우리가 노동현장에서 싸워 오며 변화했던 문제를 과거로 회귀하려는 반노동정책을 펼치고 있다.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답게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쉴 권리,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한 노동정치를 하겠다.”

-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정치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 총선을 앞두고 다시 후보단일화, 이를 넘어 진보정치 통합 요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치 통합 문제는 비대위가 선정한 6개 핵심의제에 포함되는 주제다. 토론과 논쟁 과정에서 당내 형성된 의견의 분포와 크기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한 양적 통합과 연대가 아니라 시민들이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는 가치와 방향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다. 어떤 답을 내릴 수 있는가는 그 토론의 결과로 답하겠다.”

- 앞으로 남은 비대위 일정과 계획은.
“이번 비대위에 부여된 임무는 두 가지다. 정의당 존재 이유를 다시 찾는 것. 그리고 시민들이 다시 지지할 수 있는 혁신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선거평가를 통해 그동안 당이 노정한 오류·관행·문제를 충분히 드러내고 토론과 논쟁을 통해 우리가 개선해야 할 과제와 쟁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제와 쟁점을 풀어낼 유능하고 책임 있는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비대위원장으로서 6대 핵심의제에 대한 당내 토론을 힘 있게 이끌고, 8월 중순부터 2기 정의당을 이끌어 가고자 하는 당의 새로운 리더들이 당 개혁의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청사진을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 그렇게 해서 정의당의 새로운 10년을 내다보는 디딤돌을 꼭 만들겠다. 지켜봐 달라.”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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