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 시간씩 자고 있어요. 한 시간 자고 나면은 다리가 아파서 깨요. 자세 바꿔서 또 한 시간 자고….”

유최안(41·사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20여년 전 먹고살기 위해 배운 용접 기술로 제 한 몸 누일 수도 없는 ‘감옥’을 만들었다. 가로·세로·높이 1미터 크기의 철구조물에 갇혀 두 팔과 두 다리를 뻗지 못하는 ‘감옥’생활을 한 지 13일로 22일째다. 유 부지회장은 “20년 동안 용접일을 해서 원래부터 건강하지 않았지만 여기 와서 더 나빠졌다”며 “여기서는 어떤 자세도 똑바로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80센터미터의 장신인 그는 요새 부쩍 무릎과 허리, 목 통증에 시달린다. 24시간 동안 손바닥보다 조금 큰 틈으로 두 다리를 뻗었다가 자세를 바꿔 쪼그리기를 반복하지만 통증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그는 왜 고통스러운 투쟁을 택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2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유최안 부지회장을 만났다. 유 부지회장이 농성을 하는 도크 벽면에는 “국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 “하청노동자가 살아야 대우조선과 한국조선업이 산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하청업체와 교섭해봤지만…”

“조선소를 옮겨다녔죠.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에서 다 일해 봤어요.”

유 부지회장은 20대 초반 조선소에서 용접기술을 배웠다. 배를 만들며 산 시간이 벌써 20년이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한 건 7년쯤 됐다. 조선소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을 처리하던 이른바 ‘사외’에서 블록 용접을 하던 그는 조선업 침체기 임금체불이 반복되자 조선소 안은 바깥보다 낫겠지하는 생각에 옥포조선소를 향했다. 기대는 무너졌다.

“여기(옥포조선소)서는 임금을 떼이는 게 아니라 임금이 깎이더라고요.” 조선업 수주절벽으로 협력업체에 지급하던 상여금 550%가 깎여 임금이 줄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노조에 가입했다.

하지만 교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하청노동자의 법적 교섭 상대는 하청업체지만, 현실에서 사용자 책임이란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 부지회장은 “합법적으로 협력업체와 교섭을 진행하고 협상을 했다”며 “교섭에서 뭔가를 얻기도 힘들지만 뭔가를 얻는 순간 업체를 폐업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폐업된 업체의 직원이 새 업체 대표로 앉고, 새 대표가 오면 원청은 더 기성금을 줄여 버린다”며 “그 고통은 또 노동자가 감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1도크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 바닥에서 농성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그는 숙식은 물론 화장실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해결하고 있다. 동료가 가져다 준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우고, 작은 페트병과 기저귀에 의존해 용변을 해결한다. 검은 매직으로 꾹꾹 철벽에 눌러썼을 ‘노동해방’ ‘나는 너다’란 글자가 좁은 창살 틈으로 보였다.

“우리가 재단하고 용접한 블록인데
왜 불법파업이냐”

투쟁이 길어지고 있지만 회사는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신 하청노동자 파업으로 지난달 2천800억원 손실을 봤고, 현재까지 6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반격했다. 원청 직반장들로 구성된 현장직반장책임자연합회는 “도를 넘는 불법파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친다.

유 부지회장도 원청 관리자에게서 “하청업체 사람끼리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회사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직접 들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제가 있는 이 블록이 유림산업(하청업체)의 블록이에요. 유림산업이 재단하고 용접한 블록. 유림산업 조합원 동지가 저기 위에 있다고요. 유림산업의 블록을 잡았(점거했)는데 왜 대우조선이 업무방해를 주장하느냐고요.” 작아 들리지 않던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유최안 부지회장과 1도크 난간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조합원 6명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한 난간에는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 내 안에 승리 있다” “갈 데까지 가 보자, 투쟁” “끝까지 함께하자”는 메시지가 적힌 리본이 바람에 나부꼈다. 하청노동자가 자신의 결심을 다지고, 농성 중인 동료를 응원하기 위해 눌러 적은 글들이다.

유 부지회장은 “다른 사람들은 여기(철구조물)에 (제가) 들어왔다고 말하는데, 떠밀린 것”이라며 “회사가 불법이니 뭐니 말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하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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