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불법파견을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회사 소유 물건을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노동계는 불법파견 피해를 본 노동자의 기본권을 사법부가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스프레이 낙서·불법집회’ 기소
집회 정당성 인정했으나 결론은 ‘위법’

대구지법 김천지원 형사2단독(서청운 판사)은 7일 오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차 지회장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오수일 수석부지회장을 비롯한 간부와 조합원 4명은 각각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서 판사는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을 언급하며 “피고인들의 근로자 지위와 처지를 고려할 때 집회와 시위를 벌인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집회 참가자들의 래커 스프레이 낙서는 집회방식과 수단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 임직원들이 불편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도 차 지회장이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불리한 양형요소로 삼았다.

차 지회장 등은 2019년 6월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본사 앞 차로에서 회사를 규탄하는 불법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애초 신고한 장소를 벗어나 회사 정문 앞까지 이동해 약 11~12분간 구호를 제창한 것을 집시법 위반으로 봤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재물손괴죄도 적용됐다. 지회가 다양한 색깔의 래커 스프레이를 이용해 회사 앞 도로와 인도 등에 ‘아사히는 전범기업’ 등의 글자를 새겨 5천200만원 상당의 수리비가 발생했다는 취지다.<본지 2019년 8월21일자 9면 “도로에 래커로 ‘복직’ 썼다고 손배 청구한 아사히글라스” 참조>

검찰은 지난 5월19일 차 지회장에게 징역 10월을 구형했다. 차 지회장이 이미 2003년과 2007년 집시법 위반 혐의로 각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차 지회장쪽은 재판에서 집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차 지회장은 최후진술로 “매년 집회를 진행했고 경찰도 위법한 행위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스프레이 낙서도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낙서 행위가 도로의 효용을 해치지 않고 원상회복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판단한 과거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불법파견’ 대표와 형량 차이 없어
“비정규직 입에 재갈”

차 지회장의 1심 구형량과 선고 형량은 불법파견 혐의로 기소된 하라노 타케시 전 아사히글라스 대표와 비교된다. 그는 지난해 5월 1심에서 징역 6월이 구형된 뒤 같은해 8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차 지회장보다 구형량이 적다. 함께 기소된 하청업체 지티에스의 정재윤 전 대표에게 검찰은 징역 4월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검찰 구형과 법원 판결이 ‘이중잣대’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차 지회장은 <매일노동뉴스>에 “사법부가 노동자의 위법행위는 사용자보다 훨씬 엄중하게 판단해 반노동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며 “불법파견 피해를 본 해고자가 회사에 돌아가지 못하고 불법파견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검찰의 구형량을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도 이날 선고 직후 논평을 내고 “법원이 ‘불법파견’을 저지른 회사의 편에서 불법파견 시정을 요구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아사히글라스가 2019년 8월 해고자 4명에게 제기한 5천2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도 규탄했다. 손잡고는 “아사히글라스는 유독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해서만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날을 세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차 지회장쪽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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