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는 연세대 학생들이 6일 오전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가 청소·경비노동자의 노동권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 일부 학생들이 집회를 진행한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 과거 유사한 사건에서 법원은 헌법상 노동 3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학생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음으로 학습권 침해” 15억여원 청구

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사건은 2006년 한국외대에서 발생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전국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가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7개월간 파업해 학습권을 침해받았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학생 1천500명을 모집해 모인 손해배상액만 15억여원에 달했다.

지부의 파업은 임금인상·비정규직 채용제한 등 요구에 학교측이 조합원 범위를 문제 삼으며 시작됐다. 지부는 조합원 범위를 단체교섭 과정에서 논의하자고 의견을 제시했으나 거부됐다. 결국 본교섭은 착수조차 하지 못한 채 조합원 범위로 다투다 노동위원회에서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지자 지부는 그해 4월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과정에서 본관 로비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꽹과리와 확성기 등을 이용해 농성했다. 또 총장실과 총무처장실 등에 들어가 보직교수와 충돌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지부는 11월까지 전면 파업을 했다가 이후부터는 20명만 참여해 이듬해 1월 단체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부분 파업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총학생회와 충돌이 일어났다. 총학생회는 ‘불법파업’과 ‘소음’으로 인해 수업을 방해받았다며 같은해 12월 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파업은 사용자의 경영권에 관한 사항을 단체교섭 대상으로 주장해 벌인 것이므로 목적에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장기간 파업으로 학사행정이 중단돼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해 피해를 봤다고 했다.

법원 “학생 이익 침해 불가피, 수용해야”

하지만 법원은 학생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과도한 소음이 발생했다는 총학생회측 주장에 대해 1심은 “소음의 정도가 수용할 정도의 한도를 넘어 제3자(학생)에 대한 직접적인 불법행위를 구성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에 관해서는 증거와 신문 결과만으로는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헌법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 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파업이 어느 정도 학교와 학생의 이익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제3자(학생)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며 “쟁의행위로 인한 제3자에 대한 불법행위 손해배상 책임 인정은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간 파업으로 지원업무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업은 기본적으로 노무공급을 중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업이 장기화됐다는 이유만으로 노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학생들은 1심에 불복했지만, 항소심 판단도 같았다. 총학생회측은 ‘불법파업’이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파업의 주된 목적은 근로조건 개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절차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진 후 개시돼 목적과 절차에 있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학사행정 서비스를 받지 못한 손해는 학생들이 수용할 의무가 있다고 꾸짖었다. 파업의 본질은 노동자의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이므로, 설령 손해를 봤더라도 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2008년 10월 판결이 확정됐다.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노조 지지 학생 “사법만능주의 안 돼”

이번 ‘연세대 소송’에서 법원 판단은 어떨까. 연세대 학생 3명도 학교에서 시위한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지난 5월에 형사 고발하고, 6월에는 63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학습 방해에 따른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진료 등이 명목이었다.

법조계는 파업을 통한 노동권 행사는 보장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외대 사건’에서 노동자들을 대리했던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연세대 학생의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소식은 같은 자신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은 결코 수인할 수 없다는 극히 이기적이고도 잔인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며 “일부 학생의 이기적 행동은 사회적 약자에게 재갈을 물리고 강자를 두둔하는 결과를 낳아 공동체적 삶과 정의를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연세대 일부 학생의 소송은 노조 지지를 끌어내는 촉매제가 됐다.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학생 약 2천800명의 연서명을 받았다. 나임윤경 교수도 2학기 수업 강의계획서에서 소송을 낸 학생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노조의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은 6일 오전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학생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않는 연세대를 규탄한다”며 학교측을 비판했다.

해슬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에 “판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학생들이 노동자를 고소·고발하면 모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학습권 침해 명목으로 당장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법만능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는 지난 3월 말부터 △시급 440원 인상 △샤워실 설치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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