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세대 재학생이 청소노동자들을 업무방해로 경찰에 고소했다. 임금·단체협상 중인 노동자들이 학내에서 선전전을 하면서 수업을 방해했다는 이유다. 노동자들은 당황해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가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노동자들은 기본권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노동자와 학생의 권리는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김민경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 김민경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연세대 학생회관 맞은 편에는 중앙도서관과 백양관 건물이 있다. 그곳은 2004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5년간 밥을 먹고 공부를 하던 내 ‘삶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은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다만 학생보다 먼저 일어나 청소를 하고, 학생보다 늦게까지 건물을 지키다 보니 마치 ‘투명인간’처럼 잘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들의 존재를 인지한 것은 입학하고 한참이 지난 뒤였다. 2007년 7월1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시행을 앞두고 정규직 전환을 피하려 기간제 노동자들을 ‘계약해지’ 형식으로 사실상 해고하며 비정규직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비정규 노동에 대해 스터디를 하고, 집회에 갔다. 하지만 기간제법의 문제점은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정작 일상에서 매일 마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대학생 친구들’은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중앙도서관과 백양관 등의 청소·경비 노동자 휴게실을 찾았고, 그들과 함께 2008년 1월 지금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 출범식을 열었다.

그 후 연세대를 포함해 서울지역 사립대에서 일하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용역업체’를 협상장으로 불러내 ‘집단교섭’을 시작했다.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올해도 임금인상과 휴게실 개선, 샤워실 설치를 요구했지만 교섭은 결렬됐다. 이에 연세대분회는 지난 3월 말부터 오전 11시30분~오후 12시30분에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를 했다. 그런데 ‘백양관에서 수업을 듣는 어느 한 학생’이 ‘시끄러운 시위로 수업을 방해받았다’며 경찰에 고소·고발을 했다고 한다.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대학과 청년층의 보수화, 개인주의 강화 등을 거론한다. 그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학생들이 학교를 자신만의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노동자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세대분회 조합원들은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의 주체다.

학생들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들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학교는 학생의 ‘삶의 터전’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시끄럽다는 이유로 학내에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집회를 열어야 할까. 더욱이 학생들은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노동 덕분에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이익’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이 근로를 제공하는 장소로서 도급인의 사업장은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고, 쟁의행위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파업이나 태업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또한 도급인은 비록 수급인 소속 근로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지만, 수급인 소속 근로자가 제공하는 근로에 의해 일정한 이익을 누리고, 그러한 이익을 향유하기 위해 수급인 소속 근로자에게 사업장을 근로의 장소로 제공했으므로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쟁의행위로 인해 일정 부분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이를 용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원청에서 집회를 했다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국수자원공사 용역업체 청소노동자들의 무죄를 확정한 2020년 대법원 판례가 연세대분회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삶의 터전’을 공유하고 있는 그 학생에게도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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