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본인들 월급 반납하겠다는 건 한 번도 안 했지 않느냐.”(한덕수 국무총리, 6월21일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동행 기자 간담회)

“한전 스스로 지난 5년간 한전이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6월20일 기재부 출입기자 간담회)

정부가 한전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방만하게 경영을 한 한전이 성과급 잔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거두지 않는 모양새다. 천문학적 부채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방만경영의 결과일까. 한전의 최근 부채는 대부분 회사채 발행으로 인한 것이다. 회사채 발행은 전력을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영업구조를 만회하기 위한 한전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5일 <매일노동뉴스>가 한전의 재정상황을 점검해 봤다.

145조 부채, ‘회사채’ 발행 비중 커

지난해 결산 기준 한전의 부채는 145조7천970억2천100만원이다. 최근 5년을 놓고 보면 2017년 108조8천242억7천400만원에서 36조9천727억4천700만원이 늘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기준 223.23%다.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5년 새 형성한 부채의 대부분은 금융부채다. 한전의 5년간 연결재무제표를 살펴보면 1년내 갚아야 할 유동금융부채는 9조1천945억5천200만원에서 14조371억2천500만원으로 4조8천425억7천300만원 늘었다. 1년 이후 도래하는 부채인 비유동금융부채는 같은 기간 45조9천808억9천900만원에서 66조5천704억1천900만원으로 20조5천895억2천만원이 증가했다. 둘을 합한 금융부채는 25조4천320억9천300만원이다. 대부분 한전이 그간 발행한 회사채다. 한전은 5년간 회사채 33조8천900억원을 발행했다.

금융부채 외에 일부 부채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한전은 해외유연탄 장기해상운용을 위해 선박 리스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것도 부채인데, 2021년 감사보고서에는 그 규모가 3조292억1천900만원으로 명시돼 있다.

‘팔수록 적자’ 지난해 원가회수율 85%

145조원에 달하는 부채규모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롯이 운영을 못 했다고 꼬집기에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한전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기업이다. 지난해 한전은 5조8천601억원 적자를 냈다. 영업적자가 거의 전부다. 지난해 결산서에 따르면 한전 매출액은 60조5천748억1천900만원이다. 전력 등 매출액은 전년 대비 2.7%, 해외사업수익은 18.5% 증가했다. 기타수익과 금융수입은 줄어서 총수익은 63조5천36억7천만원이다.

지출은 더 크다. 연료비와 구입전력비가 전년 대비 각각 31.2%, 37.6% 올랐다. 이외에도 다른 지출이 이어져 총비용은 68조7천328억9천500만원을 기록했다. 총수익보다 총비용이 커 5조2천292억2천500만원 적자다. 본업을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가 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전기요금은 2013년 이후 인상한 적이 없어 적자경영을 부추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전은 마음대로 전기요금을 올릴 수 없다. 전기요금은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물가안정법) 시행령과 공공요금 산정기준 같은 제도에 근거해 국내 전력공급 소요비용인 이른바 총괄원가를 보상하는 수준에서 결정한다. 한전은 매년 총괄원가를 산정해 정부에 제출한다. 현재 요금을 책정한 2013년 이후 한전의 총괄원가는 매년 올랐다. 2014년 53조9천억원이었던 총괄원가는 지난해 67조3천억원으로 14조원가량 높아졌다. 판매수입은 같은 기간 53조9천억원에서 57조8천억원으로 4조원가량 인상했다. 이에 따라 원가회수율은 곤두박질쳤다. 2014년 100.1%였던 원가회수율은 지난해 85.9%까지 감소했다. 회사채 발행의 배경이다.

한전 성과급 잔치 했나

한전이 성과급을 많이 지급한 것은 사실이다. 국내 공공기관은 정부의 경영평가를 받고 등급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올해 4월 경영평가(2021년 시행) 성과급 9천315만원을 받았다. 상임감사와 이사도 각각 6천210만원, 6천219만원을 받았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사장은 매년 1억원 넘는 돈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그렇지만 성과급을 지급하는 평가주체는 정부다. 정부가 정한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에 따라 해당기관의 실적보고와 실사단의 점검으로 결정한다. 이후 최종 결과도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승인한다. 철저하게 정부주관 평가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6개 등급을 매긴다. 탁월(S등급)·우수(A등급)·양호(B등급)·보통(C등급)·미흡(D등급)·아주 미흡(E등급)이다.

이 평가에서 한전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양호(B등급) 평가를 받다가 지난해 보통(C)으로 하락했다. 앞선 5년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성과 산업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임기 첫 경영평가편람에 △일자리 창출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 △안전·환경 △상생협력과 지역발전 △윤리경영 배점을 늘렸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정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도 경영평가편람에 제시된 잣대 중 하나다. 한전은 5년간 8천259명을 자회사 설립 같은 방식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현재도 한전산업개발 재공영화를 통한 정규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대목이 한 총리와 추 부총리가 지적하는 조직과 인력의 비대화와 같은 대목이다.

탈원전이 한전 적자 부추겼나

일각에서 주장하는 원전 가동률 하락에 따른 적자 가속화는 사실일까.

단정하기 어렵다. 원전 가동률과 한전 적자 사이의 관계성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친원전론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평균 원전 이용률과 가동률이 71.5%와 71.9%로 박근혜 정부 당시의 81.4%와 81.7%보다 낮았고, 한전 영업이익은 박근혜 정부 7조6천637억원보다 크게 낮은 3천390억원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면 원전 가동률이 영업손익과 연동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기간을 넓히면 사정은 다르다. 이명박 정부 시절 평균 원전 이용률과 가동률은 89.9%와 89.2%지만 무려 1천97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원전 이용률과 가동률이 가장 높았던 2008년에도 2조7천980억원 적자를 내 공적자금 6천700억원을 받았다. 원전 이용률·가동률 증가가 영업이익을 늘린다는 단순함수가 무너진다.

화석연료 의존률 67%, 원자잿값 급등 직격

우리나라 전력의 석탄·석유 같은 화석연료 의존율은 67%로 알려져 있다. 비중이 높다 보니 국제적인 연료비 인상요인의 직격타를 받는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위해 설립된 비정부기구(NGO) 기후솔루션은 “한전 재무위기가 심각해진 원인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에 따른 국제 유가, 석탄가격 급등 현상이 심화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석탄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호주산 발전용 석탄(유연탄) 가격은 올해 4월 전년 대비 280% 상승해 톤당 292달러(37만8천414원)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가격도 4월 기준 전년 대비 190% 상승했다. 이 결과 한전은 전기를 파는 족족 적자를 냈다. 특히 전력을 거래하면서 발생하는 전력거래금액은 21조3천억원을 지출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9조1천억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이 가운데 LNG와 석탄발전 비용이 각각 5조2천억원, 2조9천억원으로 증가분 9조1천억원의 89%를 차지했다. 기후솔루션은 “LNG와 유류 같은 국제지수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지난해 7월 도입했지만 정부가 물가상승을 우려해 인상요인을 요금에 연동하지 않아 한전은 올해 1분기 평균 킬로와트시당 181원에 전력을 사와 110원에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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