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원고들이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도서관 등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집회 중 발생한 소음으로 인해 불편이 초래되는 등 면학 분위기에 부정적인 환경이 조성된 사정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중략)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피고들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정도로 원고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연세대 재학생 이아무개(25)씨가 청소노동자 김현옥 전 공공운수노조 연세대분회장 등 2명을 상대로 낸 638만원의 손해배상(환) 청구 소송에서 지난 6일 원고 패소로 판결한 서울서부지법 민사36단독(주한길 판사)의 판시 내용이다. 이씨가 2022년 5월 학내 집회가 “시끄럽다”며 고소해 여론의 주목을 받은 지 약 1년8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법원 판단은 명확했다. 노동자들의 집회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정한 신고의무를 위반했더라도 집회 소음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하청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원청 사업장을 사용하는 제3자인 학생들도 노조의 쟁의행위를 일정 부분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대법원은 2020년 ‘한국수자원공사 업무방해’ 사건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일하는 원청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했더라도 원청 사업주가 쟁의행위를 일부 수인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행위였는데도 학생들이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무리한’ 소송을 제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단체교섭 결렬에 노조 점심시간 학내 집회
소음 기준치 미달인데 “시끄럽다” 638만원 청구

학생이 학내 소음 피해를 이유로 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이례적이라 이번 사건은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집회 배경보다 ‘학습권 침해’에 시선이 쏠려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태의 시작은 연세대분회가 하청용역업체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다. 분회는 시급 인상, 샤워실 설치, 정년퇴직자 충원 등을 요구했지만 업체측이 거부하면서 교섭은 결렬됐다.

분회는 2022년 3월28일부터 매일 점심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12시30분)을 이용해 집회를 시작했다. 시설물 관리업무를 총괄하는 부서가 있는 학내 건물 인근에서 피케팅을 하고 확성기를 민중가요를 틀거나, 구호를 외쳤다. 이때부터 이씨의 ‘신고’가 이어졌다. 해당 건물에서 매주 이틀간 수업을 듣던 이씨는 4월18일 경찰에 신고했고, 분회는 1학기 종강 직전까지 학생회관 앞 계단으로 변경해 집회를 이어 갔다.

하지만 이씨는 한 달도 채 안 돼 다시 소음을 이유로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의 현장 소음 측정 결과 약 63데시벨로 집시법 시행령의 기준치(65데시벨)에 미달했다. 그러나 이씨는 같은해 7월 직접 소음을 측정해 일시적으로 75데시벨 이상이 나오기도 했다. 이씨는 분회가 집회 사전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경찰에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해 5월 집시법 위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했고, 업무방해 부분은 검찰에서 수사하고 있다.

이씨는 형사고소에 이어 손배소에서도 ‘학습권 침해’ 주장을 유지했다. 소음으로 피해를 봤으니 등록금 일부와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 나아가 치료비까지 요구했다. 김 전 분회장 등 2명에게 청구한 금액만 638만원이다. 하지만 법원은 세 차례 변론 끝에 이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법원 “소음 정도 크지 않아, 쟁의행위 정당”

법원이 주목한 부분은 ‘미신고 집회의 정당행위’와 ‘학습권 침해’여부였다. 주 판사는 집회의 정당성에 관해 “미신고 집회더라도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나 형사처벌이 제한될 수 있다”며 “집회 중 발생한 소음 피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를 넘는 정도에 이르러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쟁의행위 과정에서 절차를 지켰고, 집회 방법도 피케팅이나 구호 제창 등 폭력을 동반하지 않아 정당했다는 취지다.

소음 역시 수업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주 판사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소음 정도가 쟁의행위를 위법하다고 판정할 정도로 중대하다거나 학습권을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하는 형태로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소음이 집회 장소에서 떨어져 있는 강의실이나 도서관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봤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회를 하고 수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학생회관 근처로 장소를 옮긴 점도 근거가 됐다.

항소한 학생, 대리인 “대체 어떤 시대 살고 있나”

이씨측이 구체적인 불법행위를 증명하지 못한 점도 드러났다. 법원은 이씨가 쟁의행위 상대방이 아닌데도 분회 간부에게 개인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선 분회장이 주도적으로 불법 쟁의행위를 기획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입증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주 판사는 “원고들은 단순히 피고들이 분회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주도적으로 집회를 개최했다고 보고 청구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질타했다.

연세대 동문 법조인으로 구성된 대리인단은 “연대 의식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반겼다. 이들은 “청소노동자들이 제공하는 노동의 결과를 누리는 학생 역시 이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일정 부분 수인할 의무가 있다”며 “법원 판결은 공동체에 대한 연대 의식 없이 오로지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선고 다음날 바로 항소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분회장 등을 대리한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원고는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는 격앙된 표현을 쓰며 언론 인터뷰를 했고 판결문이 나오기도 전에 항소장을 접수했다”며 “원고는 대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법원 판결에 최소한의 존중을 보였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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