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법원이 업무량 조정이 없거나 임금 삭감의 정도가 과도한 임금피크제는 위법이라고 판결하면서 노동계에 관련 소송이 줄이을 것으로 보인다. 제도 도입을 강제했던 정부가 대법원 판결 이후 직무개발 같은 임금피크제 보완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법원은 26일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성과연급제) 운용을 불합리한 차별로 판결했다. 임금피크제 운용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 정도 △적정한 대상조치 마련 여부 △임금피크제로 감액한 재원의 본래 목적 사용 여부를 제시했다. 이에 하나라도 미치지 못하면 무효가 된다.

“일부 기관 노동자 소송 관련 문의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 따라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쪽에서 관련 소송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제도 자체를 위법으로 본 것은 아니라서 사업장별 상황에 따라 법률대응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기관별 임금피크제를 재검토하고 이번 판결에서 제시된 기준과 자신의 임금 삭감 정도 등을 비교해 하급심 소송을 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이미 일부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관련한 문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인건비 절감 목적으로만 도입했다는 점이 입증되거나 업무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상조치를 했더라도 정도가 명확하지 않으면 기준에 미달하는 셈이 된다. 특히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의 대상조치는 이미 법정 정년 나이가 정해진 상황에서 적확한 대상조치로 보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119 대표)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차별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리적 이유를 사용자가 입증해야 할 것”이라며 “이런 사정이 있는 기관들이 모두 법적 분쟁으로 발전하지는 않겠지만 현재 실시하는 제도를 대법원에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게 변경하는 조치들이 필요해졌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노조가 단체교섭 같은 방식으로 이런 제도를 개선할 여지도 커졌다는 평가다.

기재부, 미적대던 ‘직무개발’ 가능성 커져

임금피크제 보완을 위한 기획재정부의 정책적 접근도 빨라질 전망이다. 노동계는 2015년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전면 도입 이후 줄곧 제대로 된 직무개발 같은 후속조치를 요구해 왔다. 정윤희 정책실장은 “올해 2월에도 직무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속해서 제기됐다”며 “계획이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닌 만큼 이번 판결이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 직무개발을 추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국노총은 “나이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명백한 차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당연한 결과”라며 “판결을 계기로 노동자 임금을 깎는 현장의 부당한 임금피크제가 폐지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다. 민주노총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조항을 강행규정으로 판단했다면 임금피크제 자체를 무효로 선언했으면 됐을 것”이라며 “대상조치 여부 같은 여지를 남겨 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끼워 넣어 자본가에게 퇴로를 만든 통상임금 사건의 재판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