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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평판 상위 9곳 커피전문점이 직원 소지품을 검사하고 때로는 몸 수색까지 할 수 있는 내용의 시대착오적인 취업규칙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취업규칙을 심사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눈을 감고 있다.

8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노동부에서 받은 투썸플레이스와 메가커피(앤하우스)·이디야·빽다방(더본코리아)·폴바셋(엠즈씨드)·커피빈(커피빈코리아)·파스쿠찌(파리크라상)·할리스(할리스에프앤비)·엔제리너스(롯데GRS)의 취업규칙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매장이 직원 출퇴근 때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노조활동이나 인쇄물 배포·게시를 비롯한 정치활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문제가 불거진 뒤 취업규칙을 수정한 스타벅스(스타벅스커피코리아)를 포함해 국내 커피브랜드 평판 상위 10위 업체다.

‘기본권인데’ 검사 거부하면 출입금지·퇴장

스타벅스에 이어 브랜드 평판 2위인 투썸플레이스는 취업규칙에 사원의 출입제한과 퇴장명령 조항을 규정했는데, “소지품 검사를 부당히 거부한 경우”를 해당 조항 적용 대상에 넣었다. 취업규칙 개정 전 스타벅스가 사내 질서유지와 예방을 위해서라며 최소한의 근거를 제시한 것과 비교해도 수준이 다르다. 커피전문점 9곳 가운데 이런 규정을 둔 곳은 투썸플레이스·메가커피·엔제리너스다.

특히 메가커피는 위해를 방지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소지품 검사뿐만 아니라 검신까지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몸 수색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지를 금지한 품목에는 ‘신문’도 포함돼 있다. 검신은 불법 신체수색으로 형법상 3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엔제리너스도 복무수칙에서 점포와 창고를 출입할 때 소지품 검사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업무에 필요하지 않은 물품이나 서적 등을 소지하면 입장을 거부하거나 퇴장을 명할 수 있고, 소지품 검사를 거부하면 경위서를 쓰도록 했다. 소지품 검사나 몸 수색은 기본권 침해인데도 특별한 사정 없이 취업규칙에서 강제하고, 책임까지 묻는 것이다.

집회·결사의 자유 나 몰라라
시도만 해도 걸린다

정치적 의사표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허다했다. 투썸플레이스 취업규칙을 보면 사원은 회사 승인이나 허가 없이 리본·배지·어깨띠 같은 표식을 부착할 수 없고, 허가받지 않은 집단적 행위도 금지했다. 또 사무실이나 회사의 부속시설 내에서 집회·연설·기금모집, 인쇄물 배포·회람,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이를 어기면 회사 출입을 금지하거나 퇴장시킬 수 있다. 국민의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검열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을 명시적으로 위반해 기본권을 제한한 셈이다.

이런 내용은 커피전문점 취업규칙 곳곳에서 드러났다. 메가커피는 집회·시위나 소요 같은 행동으로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하면 퇴장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했을 뿐 아니라 사내·외를 막론하고 불법적 불온선동이나 집단행동을 주도해 회사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면 징계나 해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밖에 △사업장 내 연설·집회·시위·온라인 및 오프라인 인쇄물 게시 및 배포시 징계(이디야) △회사 허락 없이 사내 문서 인쇄·배포 또는 게시 금지(빽다방) △회사 허락 없이 문서 또는 인쇄물 배포·게시 행위 및 근무시간 중 집단적 활동 금지(폴바셋) △회사 허가 없이 근무시간 중 집회·업무 무관행위 및 정치운동 참여 금지(커피빈) △회사 내 불법집회 개최와 기도 금지, 불법단체 결성 및 가담 금지(파스쿠찌) △사원을 선동해 불법쟁의를 유도하거나 방해시 징계(할리스) △취업시간 중 조합활동, 시위 행진, 인쇄물 배포 및 게시, 집회 금지(엔제리너스) 등이다.

헌법상 기본권 침해뿐만 아니라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자의적으로 운용하거나 회사의 요구에 따라 ‘업무상 긴급사유’를 명목으로 특별근무를 지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드러났다. 사실상 취업규칙이 무법지대에 가까운 셈이다. 게다가 이런 조항들이 노조활동이나 결성을 방해할 소지도 커 다수 노동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객응대에 따른 감정노동 강도가 큰 특성에도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26조)에 따른 규정을 두지 않은 곳도 있었다. 노동부는 제도 도입 이후 표준 취업규칙을 마련하고 “고객응대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 예방조치 의무가 신설된 만큼 취업규칙을 통해 사내규정 및 고객응대 매뉴얼에 명문화해 고객응대 노동자 권익보호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취업규칙 심사 눈감은 노동부
류호정 의원 “근로감독 실시해야”

노동부는 위법소지가 큰 취업규칙을 심사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다. 취업규칙은 신고제로 이뤄지지만 노동부는 기업의 취업규칙이 사회상규를 현격하게 벗어나거나 관계법령상 불법소지가 있는 것을 규율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심사한다.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에 따라 마련한 취업규칙 심사요령이 그 기준이다. 취업규칙 심사요령에 따르면 노동부는 취업규칙 신고나 변경신고가 있을 때 법에서 정한 필수 사항을 제대로 기재했는지 여부를 따지면서 동시에 취업규칙 내용이 관련 법령에 저촉하는지, 단체협약이나 행정지도 혹은 사회통념상 부당하다고 판단되는지, 근로자에게 불리한지 여부 등을 심사한다. 만약 그런 대목이 발견되면 개선 또는 변경을 하도록 조치한다.

이런 심사 권한이 있음에도 커피전문점 업계에서 헌법과 형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조항이 다수 발견된 것은 사실상 취업규칙 관리감독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류호정 의원은 “국내 대표적인 커피전문점 대다수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노조혐오 정서를 표현하는 내용을 취업규칙에 담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취업규칙은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조건을 규율하는 가장 중요한 법규범이므로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법령 위반 여부를 심사하고, 업계 전반을 근로감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5년간 9곳 브랜드에서 산재 454건
1위는 엔제리너스

한편 커피전문점의 산업재해 현황도 드러났다.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9곳 커피전문점 노동자가 낸 산업재해보상 신청 474건 중 454건이 승인되고 20건이 불승인됐다. 사고산재는 신청 454건 가운데 442건이 승인됐고, 질병산재는 20건 가운데 12건이 승인됐다.<표참조>

산재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엔제리너스로 5년간 산재신청 202건 가운데 196건이 승인됐다. 파스쿠찌가 신청 165건, 승인 157건으로 뒤를 이었고 △커피빈(신청 29건, 승인 28건) △폴바셋(신청 26건, 승인 25건) △투썸플레이스(신청 20건, 승인 18건) 순이다. 투썸플레이스 산재 현황은 올해 2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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