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최근까지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를 운영했던 김정호(52·가명)씨가 2일 새벽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본관 옥상에 올랐다. “아무리 호소해도 달걀로 바위치기, 소귀에 경 읽기”라고 속내를 내보인 그는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의 반복되는 임금체불이나 4대 보험 체납은 기성금이 적은 구조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20년 넘게 사내협력업체를 운영했지만, 지난 3월 빚만 떠안은 채 폐업했다. 당시 회사는 노동자 임금체불액과 4대 보험 체납액이 40억원에 이를 정도로 경영사정이 악화됐다. 2일 <매일노동뉴스>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복리후생비, 협력사에 맡기고 ‘나 몰라라’

“협력사에 제대로 된 기성금을 줘야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고, 세금 내고 운영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기성금을 깎아 놓고 시작하니 이게 첫 단추부터 안 돼요.”

수화기 너머 김씨가 한숨을 쉬었다.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에 주는 공정단가는 매년 조금씩 오르지만, ‘맨아워’로 책정되는 예산이 생산성·능률 향상 등을 이유로 줄면서 원청이 협력업체에 주는 기성금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10년 넘게 물가가 오르고 세금도 오르는데 기성금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협력업체 경영사정은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별도로 주던 경영지원금 일부를 기성금에 산입하면서 더욱 악화됐다. 경영지원금에는 귀향비·휴가비·식대·간식비·피복비·세탁비·혹서기 손실지원금 등 복리후생비가 포함된다. 김정호씨는 “중식비를 예로 들면 원청은 생산능률 100%일 경우를 상정해 한 달에 17일치 중식비를 지급하는데, 협력사는 평균 생산능률이 65~70% 수준으로 실제 13일치의 중식비 수준밖에 안 된다”며 “공기 안에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서 한 달 평균 24일 이상 일하는 것을 감안하면 11일치의 중식비는 협력사가 감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청이 협력업체에 매월 별도 지급할 때는 하청노동자가 복리후생비를 떼일 일이 없었다. 하지만 경영지원금이 기성금에 산입되면서 자금융통이 원활하지 못한 협력업체가 복리후생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늘었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기성금이 너무 적어 기존에도 적자 상태였기 때문에 하청업체가 4대 보험도 못낸 상황인데 경영지원금을 기성금에 산입하면서 올려줬다고 생색을 낸 것”이라며 “실제 업체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주는 복리후생비를 감당하지 못하니 여름휴가비, 피복도 제대로 지급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경영부실 협력사 폐업 계속될 것”

김씨는 지난해까지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 조선회장을 역임했고, 경영지원금 산입 문제를 지적해 왔다. 돌아온 것은 경영부실을 이유로 한 6개월 한시계약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정규 협력업체와 통상 1년 단위 계약을 맺고 갱신한다. 일감도 줄었다. 그의 사업장에는 115명이 일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50여명에 해당하는 물량만 주어졌을 뿐이다. 결국 그는 빚만 떠안은 채 3월 폐업했다.

김씨는 “지난 5개월 동안 집을 담보로 대출받고, 신용카드 대출과 현금서비스까지 받아 직원들 월급 주며 운영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며 “대출을 못 갚으면 식구들이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라서 옥상 위에 올라가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근본적으로는 협력사들에서 저 같은 사람, 제2·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현대중공업이) 정상적으로 기성금을 올려 줘야 한다”며 “이런 저런 명목으로 4대 보험 납부를 유예해서 체납돼 있는데 현대중공업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산 동구가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조선업 협력업체는 4대 보험 납부유예 정책을 적용받아 왔다. 이 탓에 체납은 계속됐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밝힌 지난 3월 기준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194곳의 4대 보험 체납액은 466억원이다.

정부가 조선업 숨통을 틔워 주겠다며 2017년 시행한 4대 보험 납부유예 정책이 최근 종료돼 화살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앞으로도 협력업체 폐업이 계속될 것”이라며 “1차 협력사가 140곳 정도인데 이 중 4대 보험을 제대로 납부하고 있는 곳은 70곳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못 내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날 오전 옥상에 오른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현대중공업 관계자 요구에 따라 농성을 중단했다. 현대중공업쪽은 “현재 입장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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