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다. 취임 뒤 첫 공식 방문지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이후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3단계로 나뉘어 정규직화가 이뤄졌다. 대부분 공기업은 자회사를 만들어 직접고용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이제 대통령은 5년 임기 막바지를 지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은 눈물을 그쳤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자회사로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은 새 정부 출범 직후 파업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파국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편집자>

전현진 공공운수노조 코웍스지부장
전현진 공공운수노조 코웍스지부장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포용과 상생의 개발협력으로….’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주로 수행하는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 코이카의 소개글 중 일부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심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정작 소외를 없애기 위한 노동을 도맡아 했던 노동자들은 소외당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모회사라 불리는 원청으로부터. 코이카의 자회사 ‘코웍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코이카는 그동안 상시·지속 업무 중 상당수를 파견·용역 노동자들에게 외주화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나 정규직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또 언제든 해고될지 모르는 처지였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실낱같은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약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가 직접 만든 ‘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는 자회사’로 바뀌었다. 코웍스도 마찬가지다.

자회사 노동자들의 처우는 과거 용역업체 시절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다. 코이카는 여전히 ‘낙찰률’ 명목으로 자회사 인건비의 12%를 후려치고 있고,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원청의 6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자회사 설립 당시, 노동자들의 임금은 경력이나 업무에 관계없이 과거 어느 용역업체에 소속됐는지에 따라 정해졌다. 때문에 동일 직급에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 간에도 임금 격차가 심각했다.

정부가 ‘자회사도 정규직’이라고 주장하는데, 왜 노동자들의 처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을까? 모-자회사 간 용역계약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수십 개 용역업체와 맺던 계약을 하나로 통합했지만, 정작 내용면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 21개 세부 사업별로 인원과 인건비가 원청에 의해 이미 세세하게 정해져 있었다. 마치 21개 용역 부서가 자회사 안에 별도로 존재하는 듯했다. 이렇다 보니 자회사 안에서 통합적 임금체계를 만들거나 공통으로 처우를 개선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코이카 건물에서 원청 직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일하고 있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상시적으로 정규직들과 미팅, 업무 연락, 이메일 소통을 하며 국제개발협력 업무를 한다.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시설물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는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자회사 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원청 코이카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벗인 공공기관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도 지금처럼 임의로 나눠 놓으면 안 된다.

모-자회사가 분리돼 있더라도 원청은 자회사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로서 책임이 요구된다. 코이카가 자회사의 인력 규모와 노동조건을 매우 세부적인 수준에서 직접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회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면, 코이카는 자회사의 노동조건에 대해 자회사 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한다.

지난 1월 웬일인지 원청 코이카가 직접, 그것도 먼저 ‘모-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자회사 노조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자회사 노조가 ‘모-자회사 간 계약 개선과 처우개선’을 논의하자고 했더니, 원청은 돌연 ‘없던 일로 하자’며 회의 취소를 통보했다.

코이카가 모-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를 제안한 건 아마도 고용노동부가 실시하는 자회사 운영 평가에서 가점을 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형식적인 회의에 들러리로 참여해 기념사진 촬영하는 수준을 넘어 계약 개선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니 이마저도 없던 일이 됐다. 이제 코웍스지부는 노조설립 후 처음으로 원청이 허락한 선을 넘는 요구를 가지고 교섭과 투쟁에 임한다. 주는 만큼 받는 게 아니라, 요구한 만큼 주게 만드는 투쟁을 준비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자회사의 현실을 이제 노동자의 눈으로 새로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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