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다. 취임 뒤 첫 공식 방문지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이후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3단계로 나뉘어 정규직화가 이뤄졌다. 대부분 공기업은 자회사를 만들어 직접고용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이제 대통령은 5년 임기 막바지를 지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은 눈물을 그쳤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자회사로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은 새 정부 출범 직후 파업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파국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편집자>

정명재 공공운수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
정명재 공공운수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

문재인 정부가 사회양극화와 차별 해소를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했지만 그 목적을 벗어나 ‘공공기관 자회사’라는 또 다른 용역회사를 만들면서 불평등과 차별이 고착됐다. 정부는 ‘상시·지속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원칙’을 스스로 부정했다. 또 자회사와 무기계약직이 각각 여전히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외면했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라 속이며 실적 부풀리기에 급급했다.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이자, 국토교통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인 코레일네트웍스는 ‘용역형 자회사’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공사에서 수탁한 사업(역무, KTX공항 리무진, 철도고객센터 등)을 주 업무로 한다. 형식상 자체 사업(KTX특송, 셔틀, 주차 등)도 공사의 시설과 장비를 이용하는 등 공사의 필요로 만들어진 부대사업이다. 중동역은 코레일네트웍스 직원이, 송내역은 공사 직원이 동일한 역무업무를 한다. 하지만 역무업무는 생명·안전업무가 아니라며 직접고용에서 제외됐다. 더 전문화된 다른 위탁업무나 자체 사업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됐다. 결국 2018년 공사 노·사·전문가 협의체의 합의서와 결정서에 ‘공사와 계열사 직원 간, 기존 계열사 직원과 전환자 간 처우와 관련해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실행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20년을 일한 우리는 최저임금을 받는다. 심지어 자회사로 전환된 우리는 ‘임금 하락에 서명하지 않으면 정부가 처우개선을 위해 지급하도록 한 복지포인트·식대·명절상여금은 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고, 고용 기간은 더 짧아졌다.

정부와 공사가 처우개선 약속을 지키지 않자 코레일네트웍스지부는 2019년부터 3년간 70일 넘는 전면파업 등 수많은 투쟁을 통해 위탁비 산정시 “시중노임단가에 낙찰률 100% 적용한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사측은 기존 계약 대비 100억~130억원가량의 추가 재원 발생을 예상했다.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 중 위탁업무에 종사하는 1천400여명의 노동자 1인당 710만~920만원가량의 임금인상이 가능한 인건비를 받아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산편성지침을 이유로 “인건비로 받아 온 돈을, 인건비로 지급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임금인상을 막았다. 그렇게 우리는 20년을 일해도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남아 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경영에 관한 지침을 통해 정원을 통제함으로써 각 기관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자율적으로 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예산편성지침을 통해 각 공공기관의 임금인상률을 제한하고 있다. 이 지침은 전년도 대비 총인건비 인상률을 제한하는 것으로 각 기관의 노사 자율교섭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코레일네트웍스처럼 최초 적용 시점에 임금이 낮으면 지침이 변경되거나 폐기되지 않는 이상 평생 저임금에 시달리도록 한 제도다. 기재부의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은 ‘혁신’이 아니라, ‘차별의 고착화’다. 특히 ‘기타공공기관은 총인건비에 대해 인상률 및 차등 기준은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을 준용한다’는 5조2항은 코레일네트웍스 자회사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을 20년째 최저임금으로 묶어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수많은 자회사를 설립했지만, 이를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게다가 기재부는 경영평가 지침을 통해 자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이 될 사업비를 통제했고, 각 기관들은 낙찰률 90% 내외로 적용해 임금인상을 불가능하게 했다. 자회사 이면에 감춰진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이제 간접고용·무기계약직, 비정규 노동자들이 뭉쳐 투쟁할 때다. 기재부 지침 폐기와 차별 없는 세상은 투쟁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2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이라는 게 그 방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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