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다. 취임 뒤 첫 공식 방문지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이후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3단계로 나뉘어 정규직화가 이뤄졌다. 대부분 공기업은 자회사를 만들어 직접고용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이제 대통령은 5년 임기 막바지를 지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은 눈물을 그쳤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자회사로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은 새 정부 출범 직후 파업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파국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편집자>

한상각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장
한상각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장

공공기관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십수 년 일하는 동안 해가 바뀔 때마다 작업복 가슴팍에 새겨진 회사 이름만 달라졌다. 자회사 전환 이전 한국마사회에 27개의 용역업체가 존재하고 있었다. 용역업체들은 마사회와 거래하기 위해 최저가 경쟁을 했고, 하나같이 법정 최저 낙찰률인 87.995%에 맞춰 들어왔다.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업체별 계약 조건이 다 달라 27개 용역업체 모두 임금이 달랐던 것은 물론, 용역업체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손쉽게 우리 몫의 임금 12%까지 합법적으로 챙겨 갔다. 중간착취가 일상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비정규직이니까. 경쟁 입찰은 당연하니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바람이 불었다. 기대에 부풀었던 것도 잠시, ‘자회사도 정규직’이라는 정권과 원청의 말이 반복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비롯해 어지간한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을 자회사로 전환했고, 정부는 정규직화가 이행되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실제 자회사로 전환된 2020년 이후 우리의 임금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은 낙찰률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무소불위의 기획재정부가 각종 규정과 규칙까지 바꿔 가며 자회사와 수의계약을 할 방법을 만들었다. 수의계약이 무엇인가. 경쟁하지 않고 원청이 자회사와 사실상 유일하게 독점적 계약권한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우리는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니까. 내가 채용된 자회사가 2개가 아닌 한 경쟁할 일은 없으니까. 그러나 자회사 전환 이후에도 원청 한국마사회는 용역업체와 똑같은 방식으로 12%의 낙찰률을 적용했다. 즉, 우리는 임금 12%를 반납하고 시작했다. 이유는 없었다.

요구했다. 지금 적용되는 낙찰률의 부당함과 최저임금과 다를 바 없는 노동조건으로 더 이상 일할 수 없음을, 공공기관 자회사의 높은 자리는 모회사 낙하산들의 노후 보장 용도로 활용됨을 지적했다. 실권 없는 허수아비 자회사 경영진, 하나부터 열까지 모회사의 눈치만 보는 무능력한 사장을 두고 50차례가 넘는 교섭을 하며 낙찰률을 폐지하라고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원래 해 왔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뿐이었다. 낙찰률이 계속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관행이었던 것이다.

자회사로 전환한 곳마다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하나같이 임금 떼먹기와 다를 바 없는 낙찰률 폐지와 원청의 무분별한 경영 개입에 ‘이럴 거면 차라리 원청 사장이 직접 나와서 교섭’하라고 요구했다. 이쯤 되자 문재인 정부도 자회사 운영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거꾸로 한국마사회는 놀랍게도 12.005%가 삭감된 87.995%의 인건비가 우리에게 지급할 전부임을 자회사 노동자들에게 공표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에도 자랑스럽게 낙찰률 적용 없이, 배정된 사업비 전액을 노동자에게 지급해 처우개선에 힘쓰고 있는 좋은 회사라고 보고했다. ‘87.995%=100%’라는 기적 같은 수식을 보며, 황당함을 넘어 분노가 치솟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자회사도 정규직이라던 그 말에 임기가 다할 때까지 결자해지의 자세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공무직위원회든, 노정 협의든 당신의 ‘치적’인 자회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야 한다. 새 대통령에게도 요구한다. 이미 자회사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실패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새 정부에 제대로 된 개선책을 요구하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최소한 최저임금 수준은 아니도록, 비상식적인 낙찰률은 없도록 해 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로 말이다.

화려하게 시작할 당신의 5년, 자회사 노동자들에게도 아름다운 변곡점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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