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8월 시행된다. 정부는 시행대상과 휴게시설 설치 기준 등을 하위법령에 담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제안을 해 왔다. 5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정하나 서비스연맹 정책국장
정하나 서비스연맹 정책국장

TV에서 빈곤한 가구 지원금을 모금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아빠 혼자 어린 자식들을 키우는 가정의 사례였다. 아빠는 어느 중소도시의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고 있어 그가 일하는 모습이 한참 화면을 채웠다. 워낙 어려운 형편이니 여러 안타까운 장면이 방송에 나왔지만, 콜 한 건 받아 처리하고 난 후 추운 겨울 아파트 단지 뒤편의 찬 보도블록에 쭈그려 앉아 다음 콜을 기다리는 모습에 탄식이 나왔다. 이동노동자의 휴게공간은 춥거나 더운 길바닥이나 기지개 한번 제대로 켤 수 없는 차 안이어야만 하는 걸까?

최근 몇 년 이동하며 일하는 노동자의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플랫폼종사자의 규모와 근무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는 66만1천명으로 전년도 대비 3배 증가했다. 그중 배달플랫폼 노동자, 대리운전 기사, 퀵서비스 기사와 같은 배달·배송·운전에 종사하는 노동자수는 50만2천명(75.9%)으로 압도적이다. 약 2만명 정도인 가사·청소·돌봄서비스 노동자도 다른 가구로 옮겨 다니며 하루 1건 이상의 일을 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동시간이 많다.

플랫폼노동과는 별도로, 대표적인 이동노동자인 택배노동자도 약 5만5천명이나 된다. 또한 최근 스마트홈 산업이 급성장하며 부각되고 있는 가구용 가전 대여제품 방문점검 노동자도 이동노동자다. 고용노동부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기준보수액 및 평균임금 소득수준 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대여제품 방문점검원은 약 3만명, 가전제품 설치기사는 약 1만6천명으로 추산한다.

이렇게 많은 이동노동자들은 대체 어떻게 어디서 쉬어야 하는가? 이동노동의 특성은 ‘호출형 노동’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업무의 장소를 정할 수 없고, 호출(콜) 건수에 따른 수수료가 임금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신속한 이동과 고강도 압축 노동, 그리고 장시간 노동을 한꺼번에 강제당한다. 회사 사무실이나 창고처럼 특정 거점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체류 시간이 길지 않다. 노동자 개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편안한 휴게공간은 고사하고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례로 서비스연맹 가전통신서비스노조의 방문설치기사들이 부품이나 제품을 받으러 가는 창고는 그야말로 창고이기 때문에 냉난방도 잘되지 않는다. 정수기도 겨우 요청해서 가져다 놓았으며, 노동자들이 잠시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다. 화장실마저도 성별로 구분돼 있지 않고 추운 겨울에는 수도가 얼어 터지기도 한다. 택배터미널이나 대리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작은 컨테이너 하나가 노동자들이 체류하고 잠시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거점이 있는 경우도 이 지경인데, 배달기사처럼 특정 사업장에 소속되지 않고 플랫폼으로 호출을 받는 이동노동자는 완전히 실외에서만 일하고 쉬어야 한다. 그간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랍시고 지하철역 부근 같은 곳에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수가 매우 적다. 서울시만 놓고 봤을 때, 간이 이동노동자 쉼터를 현재까지 9개소 설치했다. 아직 자치구별로 1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 지역, 자기 구역 내에서도 동서남북으로 시간에 쫓기며 일하는 이동노동자가 ○○구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쉼터에 ‘일부러’ 찾아가서 ‘일부러’ 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지자체의 쉼터는 평일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배달·대리운전을 하는 노동자처럼 야간까지 일하는 이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없다.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된다. 현재 노동부에서 휴게시설 설치와 관리기준을 정하는 시행령안을 만드는 중이지만, 이러한 이동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적극적으로 고려해 방안을 만들고 있지는 않다. 거점공간이 있는 경우는 반드시 노동자들의 휴게권이 보장되는 공간까지 고려해 거점을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의 지원으로 지역 내 휴게공간을 마련할 때에는 사용자측의 기여의무를 규정하고 그 수를 충분하게 늘려야 한다. 이미 마련돼 있는 공간을 이용하기 어려운 업종특성을 감안해 노동자가 스스로 접근 용이한 카페 같은 곳에서 쉴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는 것도 고려돼야 한다.

앞서 강조했듯 이동노동자는 장시간·고강도 압축 노동을, 그것도 야외에서 해야만 한다. 누구보다 휴식할 권리가 제대로 보장돼야 하는 처지에 있는데, 법·제도를 만들어 가는 현재 논의 수준은 ‘이동노동자는 어쩔 수 없다’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산업 변화와 고용형태의 속도는 급격히 빨라지고 노동권 침해는 더욱 정교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휴식권과 같은 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해서마저 정부가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동노동자 휴게권을 위한 법·제도적 상상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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