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2022년 8월 시행된다. 정부는 시행대상과 휴게시설 설치 기준 등을 하위법령에 담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제안을 해 왔다. 5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최재혁 사무금융노조 비정규센터 부국장
▲ 최재혁 사무금융노조 비정규센터 부국장

카드사 하청 콜센터에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일하는 신영혜씨는 사무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그 위에 누워서 쉰다. 같은 콜센터에 다니는 동료들은 캠핑용 간이침대나 접이식 리클라이너를 가져온다. 심지어 텐트를 사무실 자투리 공간에 설치해 그 안에서 쉬는 노동자도 있다는 것이 신영혜씨의 설명이다. 콜센터란 작업공간에서 사비를 들여 쉴 공간을 마련하는 게 야간에 일하는 상담사들이 최근 겪는 진풍경이다.

플랫폼, 쇼핑, 제품 수리, 서비스업, 카드·보험 사고접수 등 상당수 업종이 콜센터를 24시간 운영한다. 콜센터에서 야간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휴게시설은 꼭 필요하지만, 지금은 사무실 냉골 바닥에서 입 돌아가지 않게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콜센터 노동자가 사무실 바닥에서 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휴게시설이 아예 없거나, 좁거나, 또는 있어도 폐쇄됐기 때문이다.

공주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정책연구팀 연구위원은 ‘감염병에 취약한 여성 노동현장(2021)’ 연구에서 “수탁업체가 운영하는 콜센터는 별도 휴게공간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수탁사가 다른 원청 업체와 계약을 맺으며 공간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휴게공간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사례가 있다”고 분석했다. 콜센터 아웃소싱이 고도화되면서 원청은 비용을 줄이고, 하청은 중간착취 수수료를 높이는 자본의 이해관계가 휴게시설은 사라지게 하고 좌석은 좁아지게 하는 노동환경 악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좁은 휴게시설도 사무노동자 현장에는 상당하다. 국내 대형 플랫폼기업의 하청 콜센터는 200명이 근무하는 센터에 4인용 테이블 서너 개가 들어가면 꽉 차는 휴게시설이 1개 있다. 밤과 주말에는 날벌레가 들끓을 정도로 컵라면 그릇 등의 쓰레기가 휴게실 쓰레기통에 사람 키만큼 쌓인다. 이곳은 휴지통인가 휴게실인가.

콜센터에 휴게시설이 있지만 노동자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는 회사에서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이유로 폐쇄했기 때문이다.

올해 10월까지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콜센터용 지침은 실내 휴게시설을 여러 명이 이용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11월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단계별 일상회복으로 개편하면서, 노동자를 감염체로만 취급하느냐는 지적을 의식해 휴게시설과 관련한 부문을 아예 삭제했다. 휴게시설을 이용하라는 신호를 주기는 부담되지만 휴게시설에 대한 내용 자체는 삭제해 지침이 노동자 통제 수단으로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뜻이 담긴 개편이었다.

하지만 기업은 정부의 지침을 과대 해석하거나 자의적으로 활용하면서 콜센터의 휴게시설 폐쇄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를 쉼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사업에 중대한 지장을 주는 집단감염 매개물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버젓이 있는 휴게시설은 막아 사무실 바닥에서 쉬게 하고, 백신휴가는 보장하지 않고, 마스크를 끼고 하루 내내 상담하지만 휴게시간을 추가로 부여하지는 않는다. 무슨 말만 하면 감염 우려를 꺼내면서 노동자를 통제하는 동시에 사업주가 지키고 싶은 정부 지침만 골라서 지키는 게 코로나19 시대 콜센터 노동의 현실이다.

콜센터를 비롯해 사무노동자에게는 안전하고 쾌적한 휴게시설이 필요하다. 1명당 단위면적을 2제곱미터 이상으로 정해 있으나 마나 한 좁은 휴게시설을 방지해야 하고 감염 위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휴게시설에 비품·쓰레기통이 상당 면적을 차지해 사실상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128조의2(휴게시설의 설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행령 등의 하위법령이 입법 취지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는 시설을 만들게끔 방치하지 않길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