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H노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사태를 불법적으로 개발정보를 이용한 조직적 투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개발사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이해상충을 철저히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다. 금융쪽에서는 증권회사 사람이 주식 거래를 못하는 것처럼 이해상충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LH에는 개발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토지 거래와 소유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거다.”

LH 사태를 바라보는 관련 학계 교수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당시 개발정보 도면을 부동산업자가 먼저 취득했을 정도로 허술했던 보안 문제를 개선해 정보 접근권을 소수 인원으로 제한하는 제도개선이 이뤄졌다”며 “3기 신도시 업무 담당자 가운데 투기 의혹을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아니라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매일노동뉴스>가 19일 입수한 LH 혁신방안 타당성 검토 연구 중간보고서 내용이다.

이번 연구는 LH노조 의뢰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한국도시연구소가 했다. LH 사건과 관련해 정부 혁신방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조직개편 방안을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했다. 부동산학계 교수와 전문가 65명을 설문조사하고, 14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면접조사에 응한 전문가와 교수들은 대체로 “조직적 투기” 주장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통제강화·구조조정·조직분할 방안 제시
전문가 “기능개편 몰라도 조직분할 안 돼”

3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투기의혹을 제기하고 공익감사를 청구하면서 LH 사태가 촉발했다. 정부는 같은달 9일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수사를 시작했고, 국회는 3월24일 한국토지주택공사법과 공직자윤리법·공공주택 특별법·도시개발법 같은 투기방지 관련 법안을 의결했다. 이사이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가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하는 혁신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면서 정부는 LH 조직분할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LH노조는 4·7 재보궐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LH 사태로 지지율이 폭락한 여당이 여론 무마용으로 LH 해체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후 6월7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민신뢰 회복을 위한 LH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통제장치 구축과 경영관리 강화, 기능·조직개편 3개 분야 혁신을 담았다. 발표 당시 정부는 LH가 1만명 규모의 조직으로 방만하게 운영된다며 인원을 2천명 감축하고 직무급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거복지와 주택·토지부문을 나누는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1안은 주거복지·주택과 토지부문을 분할하는 안이다. 2안은 주거복지와 주택·토지부문을 병렬분할하는 내용이다. 3안은 사실상 ‘정부안’으로, 주거복지 모회사 아래 주택·토지부문을 자회사로 두는 직렬분할안이다. 전문가들 시선은 싸늘하다. 설문조사에 응한 전문가 65명 가운데 51명(78.5%)이 조직개편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조직 개편하면 3기 신도시 정책 수행 차질
전문가 “공공성 제고 법·제도 개선이 우선”

특히 주거복지와 주택·토지부문을 분할하는 조직개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능개편 방안에는 오히려 적정하다는 의견이 나온 항목도 많다. 시설물 성능인증사업(건설기술연구원 이관)과 안전영향평가(건설기술연구원 이관) 기능개편은 적정하다는 의견이 각각 69.9%, 64.1%로 반대보다 높다. 적정한 기능 분배가 필요하지만 조직을 개편하는 것은 과하다는 게 중론인 셈이다.

이는 조직개편시 예상되는 문제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원가상승으로 주택가격·임대료가 상승(57%)하고 △자산 분리시 재무건전성이 악화(60%)하며 △3기 신도시사업 등 정책 수행에 차질(73.9%)이 예상되고 △지역균형·낙후지역·해외사업에도 차질(75.4%)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58.5%는 노사 간 갈등이 커질 것이라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성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41.5%)과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20%)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H 조직개편 논의의 시발점이 정치권의 무책임함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 전문가는 “LH 업무는 국민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잘못 쪼개면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며 “조직 해체를 너무 쉽게 들고나온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부산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국민 분노를 LH로 향하도록 책임을 전가했다는 것이다.

2019년 공공임대주택 공급 73.1%가 LH
정부 “돈 벌어 주거복지하라” 지원 안 해

LH 조직 개편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을 통한 주택공급과 함께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미치는 여파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164만4천919호 가운데 120만1천904호(73.1%)를 LH가 공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LH를 해체하면 전국 차원의 공공주택 공급이 끊길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주거복지 개념을 어떻게 실제 국가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생긴다. LH가 공공임대주택 공급 같은 주거복지 정책을 실제 사업으로 실현할 수 있었던 배경은 주택·토지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교차보전 방식으로 주거복지 사업에 쏟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LH가 돈 벌어서 주거복지하라”며 사실상 재정지원을 끊었다.

전문가들은 LH 혁신은 LH가 주거복지와 공공임대주택, 도시재생 같은 공공사업에 주력할 수 있도록 하고 조직개편도 이를 위해 토지와 주택, 주거복지를 연계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H 사태 발본색원을 위한 정부의 합동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공직자 이해충돌 제한을 강화하고 수사 결과에 따른 엄벌이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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