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태아(2세)도 산재보상 대상에 포함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 논의를 시작한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원고인 제주의료원 노동자 주장을 인용한 지 1년여 만이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개정안 5건이 계류 중이다. 다만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제외하고 소급적용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태아산재 인정을 위해 노력했던 활동가들이 당사자에게 필요한 법안이 되려면 어떤 내용이 개정안에 담겨야 하는지 의견을 보내왔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생식은 부모의 생식세포가 감수분열을 통해 만들어져 서로 합쳐지는 수정과 착상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태아가 성장해 출산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사이클에 따라 변화·유지해야 하는 생식기관의 조절기능(호르몬 분비), 감수분열을 통해 생식세포를 생산하는 기능(세포분열 관리), 생식기관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기능(온도조절·감염관리 등), 태아의 형성과 성장을 도모하는 기능(영양관리), 그리고 커지는 태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기능(체중 및 신체균형 관리) 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어야 성공적인 생식이 이뤄진다. 그러나 직업을 통해 이러한 생식관리 기능에 악영향을 주는 다수 요인이 여러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로 플라스틱·농약·세제 등에 섞여 있으면서,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는 여러 화학물질은 호르몬 분비·조절 기능을 훼손함으로써 생식기능을 저하할 수 있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도 남성의 정자수와 질이 저하되거나, 여성의 난소에서 배란이 이뤄지지 못하고 낭포로 남는 현상 등의 증가가 그 결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일반 생활환경에서의 노출로도 그러하지만, 직업적으로 이러한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취급하는 경우 더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유전독성·세포독성을 지니거나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화학물질들을 직업적으로 취급하는 경우 이러한 문제가 급격히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어 월경이 없어지거나 무정자증이 생길 수 있다. 한국에서도 양산 엘지전자 공장에서 발생한 브로모프로판 중독증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될 수 있다. 그 이외에도 방사선, 항암물질, 납·유기수은 등의 중금속, 그리고 다수의 유기용제 등은 그 자체의 독성 때문에 생식세포의 세포분열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생식기관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온도와 위생 조건 등이 유지돼야 하나 보일러 작업 등 직업적으로 더운 곳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 꼭 끼는 옷을 입고 일을 해야 하는 경우 등이 문제 될 수 있으며 여러 감염증 또한 생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른 한편 전신 신체기능이 전체적으로 저하되면 우선적으로 본인의 생명 그 자체의 보존을 위한 반응이 시작돼 그 양상의 하나로 생식기능 또한 현저히 저하된다. 그 결과 직업적으로 체중관리를 과도하게 해야 하는 직업군이나 극심한 운동을 해야 하는 직업군에서는 전신 신체기능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생식기능이 저하된다.

임신과 출산은 짧은 기간에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증가하는 현상이다. 해당 기간 동안 급격한 체중 증가 때문에 초래되는 신체의 불균형 상태에 추가적 부담을 주는 직업적 활동은 임신과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10킬로그램 이상의 무거운 하중을 운반해야 하거나, 지속적으로 혹은 자주 서서 일해야 하는 업무 등은 신체균형 유지에 커다란 부담이 된다.

다시 호르몬 분비의 조절기능으로 돌아가 현재 가장 많이 문제가 되는 직업성 유해요인으로 교대근무·스트레스 등은 생명체가 지구상에 출현하면서 생긴 일주기(하루의 반복, circadian rhythm)를 방해함으로써 호르몬 분비기능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돼야 한다. 모든 생명체는 일정한 주기를 가지면서 생명현상을 유지하는데, 이러한 주기가 외부적 환경에 의해 방해를 받으면 생명현상 중 생식기능 또한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교대근무와 스트레스는 인체의 자율신경 조절을 방해함으로써 현재 생식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직업적 생식독성 요인에 노출되는 직업군으로서 주요한 직업들로는 병원 종사자, 반도체 등 화학물질을 다량으로 사용하는 산업종사자, 철강 등 온열, 중금속·코크스 등 복합적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산업종사자 등이 현재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직업군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생식독성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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