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태아(2세)도 산재보상 대상에 포함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 논의를 시작한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원고인 제주의료원 노동자 주장을 인용한 지 1년여 만이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개정안 5건이 계류 중이다. 다만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제외하고 소급적용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태아산재 인정을 위해 노력했던 활동가들이 당사자에게 필요한 법안이 되려면 어떤 내용이 개정안에 담겨야 하는지 의견을 보내왔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여야의 정쟁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 소위가 열리지 않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심정이었다. 10여년의 세월을 원망과 슬픔 속에 고통받아온 당사자들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국회와 정부에 화가 났다.

11년 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무더기로 유산과 사산을 경험했고, 다행이 태어난 아이들은 선천성 심장기형이 있었다. 처음엔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영문을 몰랐는데 노조의 문제제기와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조사로 그 원인이 밝혀졌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임신부가 다루면 안 되는 30가지가 넘는 독성물질을 다뤄 왔고, 지속적인 과로와 스트레스에 노출돼 왔다. 그러한 노동환경이 유산과 사산, 그리고 선천성 질병을 가진 아이 출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가 당사자인 조합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손을 잡고 “당신의 탓이 아니다”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조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사자들의 용기로 산재신청과 함께 싸움이 시작됐고 쉽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모(母)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산재로 인정한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10년 동안 고생하고 아파했던 엄마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조속히 보상이 이뤄지고 안정된 치료환경을 통해 상처받은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은 휴업·장애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피해를 입은 다른 노동자들은 산재신청을 해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싸움을 시작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십 번의 기자회견을 했다. 10여년의 재판을 준비하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피해자인 엄마의 몫이었다. 결국 엄마는 병원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고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고용노동부는 우리에게 신속한 보상과 소급적용을 장담한 바 있다. 그러나 담당자가 바뀐 뒤 그 약속은 사라졌다. 약속은 둘째치더라도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이 산재보상의 목적이기에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즉각 구제방안을 마련하고 실시해야 했다. 제도의 부족함을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는 야만적인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와 국회에 다시 한번 요구한다. 엄마의 업무로 인해 건강손상을 입은 2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더 이상 방기하지 말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을 제대로 개정해야 한다. 또한 일터에서 사용되고 있는 생식독성 물질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다치고 병드는 것은 노동자 책임이 아니다. 관리감독이 부실한 정부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보다는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과 병원의 책임이다. 또다시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법 개정을 미뤄,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2세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또 어디선가 제주의료원 노동자들이 겪었던 슬픔이 반복되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의 일터는 안전하지 못하다.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신속히 구제되고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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