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태아(2세)도 산재보상 대상에 포함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 논의를 시작한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원고인 제주의료원 노동자 주장을 인용한 지 1년여 만이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개정안 5건이 계류 중이다. 다만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제외하고 소급적용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태아산재 인정을 위해 노력했던 활동가들이 당사자에게 필요한 법안이 되려면 어떤 내용이 개정안에 담겨야 하는지 의견을 보내왔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
▲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

그동안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은 암 피해 못지않게 유산·불임 등 생식독성 피해를 끊임없이 호소해 왔다. 그중 2세(자녀)의 건강손상 피해는 온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것이다. 아이가 백혈병에 걸리거나, 소아암에 걸리거나,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거나, 콩팥이 하나밖에 없거나, 발달장애를 앓거나, 신체 장기의 결함으로 대수술을 하고 후유장애가 남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다. 아이가 아프고 힘들 때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흘린 눈물을 우리가 다 헤아리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는 이 문제가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노동자의 몸을 보호하지 않은 기업과 국가의 명백한 책임이 있는 산업재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는 이 문제를 방치해 왔다.

반도체 노동자들은 그간 법이 마련되지 않아 산재신청을 망설여 왔다. 10년 전에 먼저 태아산재 인정을 주장하며 싸웠던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2세 산재 판결이 잘 나오기를, 그리고 대법원 판결 이후 국회가 2세에게 적용할 산재보험법을 신속히 개정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1년간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기다리다 못해 반올림은 지난 5월20일, 법 개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세 분과 함께 집단 산재신청을 제기했다. 최근 뒤늦게서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려 한다. 이제라도 다행이지만, 고용노동부 안을 반영해 만든 법안을 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개정법 시행일 이후 출생한 자녀에게만 적용한다는 발의안은 당장 수정돼야 한다. 10년을 이 문제로 싸워 온 제주의료원 노동자, 이미 태어나 고통받아 온 반도체 노동자의 자녀들이 아무도 적용받을 수 없다면, 과연 이 법은 누구를 위한 입법이란 말인가. 국회와 정부가 그동안 이들의 피해를 방치하고 외면해 왔던 것도 모자라, 법을 만들었는데도 단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배제된다면 국회는 최소한의 공감력도 없는 기관, 피해자의 권리나 인권적 가치도 생각할 줄 모르는 무개념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다. 국회는 다시 한번 현존하는 2세 산재 피해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소급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또 발의된 법안은 ‘임신 중 노동자’ 즉 여성노동자의 경우만을 상정하고, 남성노동자 영향은 배제하고 있다. 비과학적이고 차별적인 태도다. 가임기에 아버지가 유해요인에 노출된 경우에도 자녀의 건강손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드시 고려되길 바란다. 실제 반도체 남성 엔지니어 노동자들의 2세 피해사례도 적지 않다. 현행 노동부 고시의 생식독성 정의에서도 ‘수태 전 부모의 노출로부터 발생한’ 태아의 노출이라고 명시해 아버지의 유해요인 노출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모성뿐 아니라 부성 영향도 고려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험급여는 자녀의 성장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최근 산재를 신청한 반도체 노동자의 자녀들도 이미 성인이 됐거나 곧 성인이 될 자녀들이다. 아이 때부터 있던 만성질환이 성인이 돼서 점점 더 악화되거나 질병이 재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 발의된 법안을 보면 휴업급여·유족급여를 배제하고 있다. 질병 피해를 입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자라서 노동자가 되고 가족을 부양하는 경우를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렇게, 제한만 하려 말고 아픈 이의 필요에 의거한 보험급여를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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