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청주지법 충주지원 2021. 4. 6. 선고 2020고단245 판결 근로기준법 위반

1. 판결의 배경과 사실관계

이 사건 판결은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한 법원의 첫 형사판결인 것으로 보인다. 직장내 괴롭힘 사건 특성상 사실관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전후맥락에 대한 파악이 다른 사건유형에 비해 더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먼저 사건의 배경이 되는 사실관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피해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제기한 부당전보 구제신청 사건 판정서(충북지노위 2019. 11. 12. 충북2019부해217)를 통해 확인되는 사실도 일부 추가한다. 다만 이 사건 판결문에서 인정된 범죄사실 등의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만 보강하겠다.

1) 피고인은 약 30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여러 병원과 공장 등의 구내식당을 위탁 운영하는 법인(회사)의 대표이사고, 2019년 3월7일 입사한 60대 노동자 H는 회사가 위탁받아 운영하는 G병원 구내식당에서 조리원으로 근무했다.

2) H를 포함한 노동자 3명은 2019년 7월10일 본사에 찾아가 G병원 구내식당 관리과장 I의 각종 갑질 문제를 알리면서 개선을 요청했다. 같은해 7월12일 피고인은 G병원 구내식당 직원들에게 교육하면서 H 등이 본사에 찾아와 면담한 사실을 밝혔고, 구내식당의 불법 잔반처리를 관할 관청에 내부고발자가 신고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때부터 그해 7월24일까지 직장상사 I는 H에게 폭언을 하고 사직을 요구했으며 내부고발자 색출명목으로 전화통화 내역 제출을 강요했다. 한편 7월23일 피고인은 I에 대해 ‘지위 악용의 오해를 받게 언행’함을 이유로 경고장을 교부했다.

3) 7월24일 I로부터 폭언을 들은 H는 근무지에서 이탈했고 7월25일 지역 노동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7월27일 직장내 괴롭힘 신고서를 피고인에게 발송했다. 7월29일 피고인은 H를 7월25일자로 ‘무단 결근으로 인한 퇴사’ 처리했음을 공고했다. 8월20일 지역 노동센터에서 H를 비롯해 회사 전·현직 노동자 8명의 피해 증언 간담회가 개최됐고, 이 자리에 참석한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진술을 녹음해 I에게 전달했는데 I는 H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4) 8월27일 피고인 I에 대해 인사위원회를 개최했으나 직장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기존 인사경고를 유지하는 결정이 내려졌고, H에 대해서는 복직을 명령했다. 9월2일자로 기존 근무지가 아닌 L공장 구내식당으로 전보발령했다. 8월29일 H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조치 및 전보발령 취소 등을 요청했으나 피고인은 수용하지 않았다.

5) H는 9월16일 직장내 괴롭힘 사실을 신고한 것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했다며 피고인을 충주고용노동지청에 고소했다. 9월18일에는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했는데, 충북지노위는 11월12일 신청취지를 인정하는 판정과 구제명령을 했다. 이 사건 판결은 H가 피고인을 9월16일 고소한 형사사건의 1심 법원 판결이다.

2. 판결의 내용 및 평석

1) 판단기준

법원은 근로기준법 76조의3은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한 사용자에게 지체 없는 사실 확인 조사의무, 피해근로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 임시 조치의무(피해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는 금지), 조사 결과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되면 피해근로자의 요청에 따른 적절한 조치의무와 직장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조치의무 역시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 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인지를 판단할 때 “피해근로자의 주관적 의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과 함께 “사전 조치, 사실조사, 사후 조치 등 일련의 절차가 적절한지 여부도 함께 고려함이 옳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76조의3은 각종 사용자의 조치에서 피해근로자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설령 신고내용이 사실이 아니더라도(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신고인 및 피해자를 보호하는 규정이다. 피해근로자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판단 요소가 돼야 하며, 신고를 접수한 사용자가 취한 태도와 행위들을 연계해 종합적인 맥락 파악 속에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사건 법원의 판시는 타당하다.

2) 구체적 판단

피고인은 I에게 즉시 인사경고를 한 뒤 외부인사가 다수 참여한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I를 징계함과 동시에 H를 복직 및 전보발령해 적정한 조치를 다했다고 주장했다. 전보발령지인 L공장 구내식당은 기존 근무지에 비해 노동 강도가 낮고 시설도 더 쾌적해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인이 H 등이 본사에 찾아와 면담한 사실 등을 공개해 이때부터 I의 폭언 등이 행해졌고, 직장내 괴롭힘 신고 직후 피해근로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조치로써 H를 해고했으며, 피해 진술 녹음을 I에게 전달해 I가 H 등을 고소하게 됐고, 사실확인 조사는 인사위원회 심의가 전부인데 인사위원회에 H의 출석 및 의견 진술 기회가 보장되지 않은 사실에 주목했다. 또한 I에 대한 징계도 직장내 괴롭힘 인정이 아니라 조직 관리에 미흡했다는 사유로 행해졌고, 전보발령은 L공장 구내식당 인력부족이 사유라고 봤다. 특히 H로부터 어떠한 의견도 듣지 않았고 가족 부양이나 원거리 출퇴근 등 H의 사정은 완전히 배제됐으며, H가 일관되게 전보발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처우임을 호소하고 있는 점도 감안했다. 결국 피고인이 보여 준 일련의 행태와 함께 각 절차에서 피해근로자의 의사를 종합해 보면 전보발령은 H에게 불리한 처우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3) 양형

법원은 피해자의 피해 호소 및 직장내 괴롭힘 신고 이후 피고인이 취한 개개의 조치를 살펴보면 “근로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이른바 피고인의 경영마인드라는 것이 현행 규범에 못 미치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근로자를 대상화하고 인식하는 것에 기인한다”는 내용까지 적시하며 검사가 구약식 청구한 벌금 200만원을 넘어 징역 6월(집행유예 2년)에 보호관찰과 12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3. 시사점

2019년 7월16일 시행된 이른바 직장내 괴롭힘 금지제도는 그동안 법률로는 규제가 어려웠던 각종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법률상의 규율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일종의 사업장 내 자율규범으로 설계된 탓에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이런 지적에 따라 사용자가 직장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와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받고도 조사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등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올해 4월13일 근로기준법이 다시 개정됐다. 10월14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부족하나마 제도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바람직한 법 개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법 개정이 오히려 직장내 괴롭힘 여부에 대한 소극적인 판단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사건 판결은 직장내 괴롭힘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인가의 여부가 판단대상이라 제한적이긴 하다. 하지만 피해근로자의 주관적 의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고, 사용자의 각종 조사 및 조치 등 일련의 절차가 적절했는지의 여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편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이른바 ‘괴롭힘 감수성’이 일천한 검사의 구형에 대해 비록 집행유예이긴 하지만 징역형을 선고했다는 점 또한 선례로서 고무적이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 및 금지제도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 문제다. 여전히 봉건적 질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직장의 현실을 넘어 직장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대단히 중요한 기제이자 단초일 수 있다. 이 사건 판결을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법 해석과 집행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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