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푸드뱅크마켓센터의 기부물품 부정판매·채용비리 등 비리를 공익신고했다가 직장내 괴롭힘을 겪은 사회복지사 김은미(35·가명)씨가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근로복지공단 서울강남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서울의 한 푸드뱅크마켓센터의 기부물품 부정판매·채용비리 등 비리를 공익신고했다가 직장내 괴롭힘을 겪은 사회복지사 김은미(35·가명)씨가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근로복지공단 서울강남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직 내부 비리를 고발했다가 집단적인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적응장애를 겪은 공익신고자 사연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공익신고자는 비리 폭로 이후 감시를 당한 사실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로 드러났는데, 뒤에도 지속적인 따돌림을 당해 입원까지 했다. 그는 현재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해 홀로 싸우고 있다.

푸드뱅크 사회복지사, 내부 비리 제보
조사 과정에서 신분 노출돼 보복 조치

1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 위탁기관인 한 푸드뱅크마켓센터의 사회복지사 김은미(35·가명)씨는 2018년 보조금 부정수급 및 채용비리를 공익제보한 이후 감봉 조치를 당하고 전보 발령을 받았다. 김씨는 비리를 폭로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2011년 2월 푸드뱅크마켓센터에 입사했다. 푸드뱅크는 식품 제조업체나 개인에게 식품·생활용품을 기탁받아 소외계층에 지원하는 복지기관으로, 김씨는 기부물품을 저소득층에 전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서울시 담당 구청과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2015년께부터 상사에게 기부물품을 목적 외로 사용하도록 지속적으로 강요를 받았다. 김씨는 기부받은 식료품을 직원들이 아침식사로 해결하는 것을 목격했다. 후원품인 전기방석은 직원들의 의자에 놓였다. 게다가 푸드뱅크는 법적으로 판매가 금지된 기부물품을 바자회를 열어 헐값에 팔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센터장이 특정 직원들에게 인건비 명목으로 휴대전화 요금을 수년간 지급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8년 7월께부터는 내정자 채용을 위해 부당한 업무를 지시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김씨는 센터가 내정자의 조건에 맞춰 지원요건 필수사항을 수정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후 푸드뱅크에서 근무하던 공익근무요원들의 추가 폭로가 이어지자 내부에 고충처리 신고를 했다. 그러나 다른 기관에 민원을 넣으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는 결국 2018년 말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제보를 했다. ‘내정자 채용비리 문제’도 이듬해 초 서울시 응답소에 제보했다.

그런데 공익제보 사실이 노출되면서 위기가 닥쳤다. 채용비리를 조사하던 구청 담당 조사관이 2019년 4월 센터를 방문해 채용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씨를 직접 대면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구청이 센터에 보낸 공문에 김씨의 직위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직원들이 채용비리 신고자가 김씨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CCTV 조작해 감시하고 무단 촬영
지병 치료·백신 부작용 병가도 반려

그때부터 보복 행위가 시작됐다고 한다. 동료 사회복지사인 A씨는 김씨가 졸고 있는 모습을 무단으로 촬영해 소장에게 전달했다. 김씨를 감시하기 위해 CCTV도 임의로 조작했다. 검찰 조사에서 동료 직원은 “소장이 ‘김씨가 일하는지 매일 감시해야 하니 근무지 방향으로 CCTV 방향을 돌릴 수 없을까’라고 하자 A씨가 카메라를 임의로 조작하고는 모니터에서 잘 보이는지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센터의 괴롭힘은 집요했다. 회사는 김씨에게 공익제보 2년 전인 2016년 폭행 사건 가해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사건 당시 동료 직원인 B씨가 김씨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팔에 난 상처를 촬영해 소장에게 보고한 것이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거구인 B씨가 상해를 입을 상황이 아니라고 진술했고, B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상처가 생긴 경위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그런데도 소장과 A씨는 구청 담당 조사관이 채용비리 조사를 마친지 하루 만에 근무태만을 이유로 센터에 징계를 요청했다. 센터는 2019년 8월 인사위원회를 열고 감봉 1개월에 보직 변경과 전보 발령 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공익신고 사실이 알려진 것이 징계와 연관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과거의 고충처리 신고를 공익신고 이후 다시 꺼내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감봉 및 부당전직 구제신청을 했다. 서울지노위는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부당감봉만 인정했다. 하지만 권익위 문을 두드린 결과 전보조치가 위법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센터장이 김씨가 공익신고자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인사위원회를 열었다는 취지였다.

징계 이후에도 괴롭힘은 지속됐다. 2018년부터 중증질환을 앓았던 김씨는 센터장에게 치료를 위해 병가를 신청했지만, 센터장은 반려했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이상 반응을 보여 연차를 신청했는데도 이마저 거부됐다.

팀장인 김씨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철저히 소외됐다. 김씨는 “센터장은 다른 직원들에게 업무를 공유해 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했다”며 “신입 직원에게 전화해 위치를 묻고 감시하는 등 센터장의 인권침해적 행동이 지속돼 버티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올해 1월에는 부하 직원에게 상해를 입은 사건도 일어났다. 1월7일 김씨의 타지역 센터 방문시간을 부하 직원이 임의로 변경하려고 센터에 전화하자 김씨가 바꿔 달라고 했지만, 이 직원이 수화기를 꺾어 손목과 팔꿈치 등이 함께 꺾인 것이다. 이 사고로 김씨는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이 직원을 폭행으로 신고했고, 경찰에서 조사 중이다.

▲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편집 김혜진 기자
▲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편집 김혜진 기자

적응장애 산재신청, 공단 거부
“신분노출 신중한 조사 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가 겪은 심리적 압박은 상당했다. 김씨는 2018년 11월께부터 우울증과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는 의사에게 “가해자들과 말하면 손이 떨린다. 2018년부터 거의 혼자 밥을 먹는다. 대놓고 업무에서 배제한다” 등의 고통을 호소했다. 손이 떨리고 명치 끝이 아팠다. 급기야 올해 2월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2주간 입원 치료 후 적응장애 진단이 내려졌다. 현재까지도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김씨의 적응장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가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직장내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김씨는 이에 불복해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해 다음달 27일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괴롭힘을 주도한 동료 직원들은 모두 퇴사했다. 당시 검찰은 푸드뱅크 대표의 식품 등 기부 활성화에 관한 법률(식품기부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를 무혐의(증거불충분)로 사건을 종결됐다. 업무상 횡령은 기소유예에 그쳤다.

하지만 김씨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소장과 센터장, 센터를 위탁운영 중인 복지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 7일에는 근로복지공단 지역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는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씨는 “공익신고를 하고 신분이 노출된 것을 확인하고는 소름이 돋고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며 “그동안 숨어서 많이 울고,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기도 했다. 조사기관의 중립성이 깨지는 순간 누군가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 있으니 신중하게 조사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씨를 대리한 한민옥 변호사(법무법인 논현)도 “센터는 공익신고에 대한 철저한 보복성 조치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국가기관에서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인정됐지만, 현재까지도 아무런 실질적인 구제를 받지 못했다. 가해행위는 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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