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의 노동정책을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예산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올해 전북도의 노동부문 예산은 본예산 기준 880억3천62만7천원이다. 전체 예산의 1.1%다. 17개 광역자치단체 평균이 0.86%임을 고려하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많다.

문제는 인력이다. 전라북도 행정기구 설치 및 정원 운영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을 보면 전북도청 노동 관련 부서는 일자리경제본부 기업지원과다. 노동 전담부서로 보기는 어렵다. 이곳에서 일자리·고용 관련 인원을 걷어 내고 보면, 노사협력팀 5명이 노동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이다. 전북의 전체 인구는 139만6천331명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노사협력팀 1명이 35만9천266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노동행정 중간기관이 발달한 것도 아니다. 우선 노동권익센터처럼 노동문제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는 기관은 없다.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무료노동법률상담소, 근로자종합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행정 중간기관이 부족한 것은 다른 16개 광역자치단체가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전국 평균은 5.8곳이다. 서울시에만 36곳이 있다. 전북도는 전국 평균을 하회한다.

일자리와 고용을 제외한 조례도 16개에 불과한 상황이다. 앞으로 어떻게 노동문제를 해소하고 정책을 펼칠지 가늠할 수 있는 노동정책 기본계획도 수립이 불투명하다.

경기도, 압도적 전담 인력과 촘촘한 제도

다른 지방정부는 어떨까. 노동계와 전문가에게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노동정책을 선도하는 우수한 곳은 어딘지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서울시와 경기도를 꼽는다. 경상남도가 바로 뒤를 쫓는 후발주자다. 대구시와 경상북도 관심도가 낮다는 평가도 나온다. 나머지 지역 평가는 특별할 게 없다.

최근 노동정책 후퇴 기조가 감지되는 서울시를 제외하고 경기도를 살펴보면 두드러진 특징이 보인다. 노동 전문 행정조직인 노동국 설치와 노동국에 배치한 공무원 71명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노동존중특별시를 선포하고 노동정책 선두주자라 자부하는 서울시가 30명을 배치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2배가 넘는 숫자다.

제도도 촘촘하다. 경기도는 노동기본 조례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 생활임금 조례, 성평등 기본조례 같은 노동정책의 기반이 되는 조례를 제정했다. 이와 함께 감정노동자·공무직·비정규직·사회복지사·소방공무원·예술인·운동선수·이동노동자·장기요양요원·청소년 상담사·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필수노동자를 아우르는 취약노동자 보호와 처우개선을 위한 조례를 차곡차곡 쌓았다.

예산도 탄탄하다. 경기도는 올해 본예산에 839억3천196만원을 노동 관련 예산으로 편성했다. 전체 예산인 28조6천7억9천711만원과 비교하면 0.29%로 낮은 수준이지만 규모로 따지면 광역 지방정부 17곳 가운데 7위에 해당한다. 행정인력처럼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결코 뒤처지는 숫자도 아니다.

17개 지방정부 비교해 보니
대구·대전·전북·경북 하위권

30일 <매일노동뉴스>가 지방정부 노동정책을 평가해 봤다. 지방정부의 노동 관련 조례 제정 현황과 행정조직, 인력, 노동인권센터 같은 중간기관 기구수, 예산 규모를 토대로 점수를 매겼다. 자치법규시스템과 국가법령정보센터를 활용해 조례 제정 현황을 살폈다. 행정기구 설치 조례 시행규칙에 따라 노동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파악하고 관련 부서의 인원을 따로 조사했다. 다만 고용과 노동, 일자리 업무를 혼재한 부서는 노동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수만 추렸다. 정량평가가 지역 특유의 맥락을 탈색하는 문제가 있지만 지방정부 노동정책을 한눈에 조망해 보기 위한 시도다. 팔다리 역할을 하는 노동권익센터 같은 중간기관은 17개 광역 지방정부를 취재해 취합했다.

행정인력은 전국 평균인 11명을 기준으로 5명 단위로 점수를 가감했다. 11~15명은 1점을, 16~20명은 2점을 주는 식이다. 11명보다 적으면 점수를 차감했다. 행정인력이 5명 이하인 지자체는 대구시·대전시·세종시·강원도·충청북도·전라북도·전라남도·제주도였다. 이들은 -2점을 적용했다.<표1 참조>

중간기관은 평균 5.8곳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인력 조사와 마찬가지로 평균보다 5곳 많으면 1점을 가산하고, 5곳 적으면 1점을 차감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울시가 36곳으로 5점을 가져갔다. 지방정부에 설치된 노동 중간기관은 주로 근로자종합복지관과 비정규직노동센터, 노동법률상담소, 노동권익센터 등이다. 노동권익센터를 설치해 비정규직과 다른 취약노동자 노동문제를 포괄한 곳은 다소 손해를 봤다.<표2 참조>

 

노동예산은 전체 예산 대비 비율로 따졌다. 경기도는 0.29%로 가장 낮았다. 평균 비율은 0.86%다. 강원도가 평균보다 1.09%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강원도는 전체 예산 대비 노동예산도 1.95%로 가장 높았다. 1천299억6천976만원을 노동예산으로 쓴다는 계획이다. 부산시와 인천시·경기도가 2점씩 감산됐다.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제정한 시·도는 15점을, 수립 중인 시·도는 10점을 가산했다. 움직임이 없으면 가산도 감산도 하지 않았다.<표3 참조>

이런 결과를 종합한 결과를 토대로 지도를 그려 봤다. 면적이 넓고 인구도 많을 뿐 아니라 산업단지도 다수 포진한 대구·경북은 노동정책 평가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각각 8점과 7점이다. 예산과 비교해 인력이나 노동 관련 조례가 적고 노동정책 기본계획도 없었던 곳이다. “잘하고 있다”는 통념이 앞선 경남도보다 부산시와 광주시·충남도가 점수가 높았는데 이들 지역은 모두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방정부 ‘방향타’ 노동정책 기본계획, 6곳 수립

노동정책 기본계획은 노동친화 지방정부로 이끄는 방향타나 다름없다.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일자리·고용현황과 노동문제 파악이 필수다. 이런 작업 과정에서 중앙정부 노동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세밀한 노동문제 조망과 접근이 가능하다. 최근 경남 노동정책 기본계획 연구용역에 참여한 심상완 창원대 명예교수(사회학)는 “노동정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실태조사를 하면서 노동문제를 파악했다”며 “당초 제조업 같은 전통적 노동문제를 염두에 두고 실시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이른바 취약노동자의 실태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이를 노동정책 기본계획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기본계획 수립이 그 시도 자체로 시계가 흐릿한 지방의 노동문제를 발굴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표4 참조>

광역자치단체 17곳 가운데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한 곳은 서울시·광주시·부산시·세종시·경기도·충청남도 6곳이다. 인천시와 울산시·충청북도·경상남도·제주도는 기본계획 수립을 추진 중이다. 나머지 6곳은 기본계획 수립 의사를 드러내지 않았다. 정혜숙 제주도청 주무관은 “앞서 노동정책 기본계획 마련을 위한 용역연구를 마쳤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영향을 노동정책 기본계획에 반영하기 위해 최종 검토 중이다”고 설명했다.

취약노동자 보호 대책 강화, 지방 노동정책 추세

취약노동자 대상 정책을 확대하는 기류는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마련한 지방정부 6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6곳 모두 다양한 형태의 취약노동자 보호 대책을 기본계획에 포함했다. 2기에 접어든 서울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보면 29개 추진과제 가운데 13개 과제가 이주노동자나 택배노동자·경비노동자·돌봄노동자 같은 비정형·사각지대 노동자 지원과제다.

다른 지방정부도 유사하다. 충남도는 48개 단위과제 가운데 14개, 부산시는 50개 정책과제 가운데 20개가 취약노동자 보호를 목표로 삼고 있다. 경기도는 52개 단위과제 가운데 25개를, 광주시도 추진과제 56개 가운데 31개를 취약노동자 관련 사업으로 채웠다. 다만 세종시는 30개 추진과제 가운데 취약직종 실태조사와 감정노동자 보호체계 마련 사업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취약노동자 지원사업이 없어 차이를 보였다.

중앙정부와 달리 근로감독권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취약노동자 보호는 지방정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노동정책이기도 하다.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지방정부는 취약노동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행정조직”이라며 “필수노동자를 비롯해 플랫폼, 프리랜서, 여성, 콜센터 같은 노조 밖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잘 하는 게 좋은 지방정부 노동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노동정책을 집행하는 역할만 했다. 심상완 명예교수는 “중앙정부의 고용노동부 같은 조직이 지방정부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도가 많다”며 “있다고 해도 국가사무를 위임받은 지방 집행기관 역할에 국한한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게 산업재해다. 산재는 중앙정부 사무라 지방정부의 운신 폭이 크지 않은 분야다. 특히 민간영역인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지방정부가 감독권을 행사할 수도 없어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의 산재 관련 사업은 주로 관련 위원회를 설치하거나 안전의식을 제고하고 지원하는 캠페인이다. 다만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고 관내 산재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하고 산재예방 활동을 위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했다. 시행이 11월부터라 아직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산재에 관심을 기울인다. 서울시·부산시·인천시·울산시·경기도·충남도·전북도·전남도·경남도가 산재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이 가운데 서울시·부산시·광주시·경기도·충남도는 노동정책 기본계획에 산업안전 관련 사업을 포함했다. 세종시도 사업장 안전의식 제고 사업을 한다.

기본정책과 관련한 조례 강화
감정노동·사회복지 ‘공통분모’

그러나 노동형태가 다양화하면서 중앙정부 차원의 노동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조설립 같은 문제가 대표적이다. 전국 공통의 ‘룰’을 만들어야 하는 중앙정부가 “노동자냐,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지역민이냐, 아니냐”를 잣대로 과감하게 지원을 결정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유연성이 돋보인다.

다만 이런 지방정부의 취약노동자 보호 대책을 노동정책 기본계획만으로 완성도가 있다고 평가하긴 이르다. 지방행정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는 조례와 어떻게 조응하느냐도 중요한 평가 대목이다.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한 지방정부 6곳 가운데 전남은 취약노동자 관련 조례를 16개 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과 일자리 관련 조례를 제외한 노동 관련 조례 23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취약노동자 관련 조례인 셈이다.

전남은 △감정노동자 권리 보호 등에 관한 조례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 △비정규직 차별해소 및 무기계약직 전환 등에 관한 조례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에 관한 조례 △산업단지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운영 지원 조례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에 관한 조례 △소방종사자 등 복지증진 지원 조례 △예술인 복지증진에 관한 조례 △장기요양요원 처우개선 조례 △중소기업 노동자 자녀 장학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 조례 △청소년지도사 처우 및 지위 향상에 관한 조례 △프리랜서 권익 보호 및 지원 조례 △플랫폼 노동자 지원 조례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 조례 △하도급업체 보호 조례 같은 취약노동자 임금처우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조례를 촘촘히 제정했다. 이 밖에 경기도와 부산이 취약노동자 관련 조례를 15개씩 제정했고, 서울과 광주는 14개를 제정했다. 충남은 13개를 제정했다.

세종은 노동과 관련한 조례가 6개에 불과했다.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에 관한 조례를 제외하면 별다른 취약노동자 보호 조례가 없었다. 노동정책 기본계획에서도 취약노동자 관련 사업이 2개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취약노동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17개 지방정부로 넓혀 보면 감정노동자 관련 조례는 경북과 세종을 제외한 15곳이 모두 제정했다. 이동노동자 관련 조례를 제정한 곳은 경기·부산·대구·제주·울산·대전 6곳이다. 디지털 전환으로 새로운 노동문제의 중심에 선 프리랜서를 보호하는 조례는 서울·부산·광주·대전·울산·경기·충남·전남·경남·제주 10곳이 제정했다. 해녀 같은 나잠어업 종사자나 진폐노동자처럼 지역의 산업 특성을 반영한 조례를 제정한 지방정부도 있다.

지역 사회적 대화, 노사민정 우회
노동자권익보호위원회 활용 움직임

지방정부가 노동정책을 수립하는 과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노동정책이기 때문에 지역 노동계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역의 노사정 대화는 막혀 있다. 노사관계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노사관계발전법)에 따라 모든 지자체는 노사민정협의회를 설치해 운용한다. 그러나 제 역할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선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지역본부가 이런 기구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노사민정협의회가 지역의 일자리·고용정책을 논의하는 성격이 짙다는 점도 한계다.

곳에 따라서는 지방정부와 협력 여부를 놓고 노동계 간 갈등이 표출되기도 한다. 최근 울산시에서는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협력선언 참가를 검토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를 울산지역 노동계가 비판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거나 수립을 준비하는 지방정부는 노사민정협의회가 아닌 다른 경로를 택하기도 한다. 심상완 명예교수는 “노사민정협의회에 양대 노총이 참여하지 않는 문제가 있어 노동자권익보호위원회를 통해 연구용역을 수행했다”며 “다만 연구단계라 별 문제가 없었을 뿐, 실제 수립을 위한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대표성 문제가 표출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권익보호위 혹은 근로자권익보호위는 지방정부 노동 관련 기본조례를 바탕으로 설치한 기구다. 지역 노동계를 비롯해 재계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노사민정협의회보다 폭넓은 의견 수렴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방정부 노동정책이 취약노동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향하면서 노조가 역할을 할 대목이 많지 않다.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는 공통적으로 “경기도의 노동정책 기본계획은 훌륭한 수준이지만 도가 앞서가다 보니 노동계는 사후 의견수렴이나 수정 방식으로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도 “경기도의 정책이 취약노동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이고, 그런 내용에 노동계도 동의한다”며 “다만 조직된 노동자를 기득권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재계보다 조직과 인력, 예산이 모자란 지역 노동계가 효과적으로 지방정부 노동정책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