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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이 최근 주요 업무상질병의 업무관련성 조사와 판정 지침을 개정했다. 뇌혈관질병·심장질병, 정신질병, 근골격계질병이 대상이다. 이들 질병 대부분은 까다로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치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 길게는 6개월 넘게 시간이 걸린다. 신속한 산업재해 처리를 위해 절차를 간소화하라는 지적이 줄 이은 까닭이다. 그런데 이번에 공단이 개정한 지침은 특별한 내용이 없다. 근골격계질병의 경우 2014년 12월 이후 7년 만에 개정된 것인데도 큰 변화가 없다. 정신질병은 오히려 산재 신청 문턱을 더 높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학자문 절차만 소폭 개정

근로복지공단이 “뇌혈관질병과 심장질병, 근골격계질병, 정신질병에 대한 업무관련성 조사 및 판정 지침을 개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지침은 공단 직원에게 적용하는 내부 규정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의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을 조사하는 기준이 된다.

이번에 개정된 지침 내용은 주로 자문 절차를 명확하게 하고 용어를 정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뇌혈관질병과 심장질병의 경우 질병 이름이 해리성대동맥류에서 해리성 대동맥자루로 변경되고 재해조사서에서 만성적 부담 확인을 위해 휴일근로 시간을 명시하도록 했다. 또 발병일과 관련해 자문을 의뢰할 때 신경외과·신경과·심장내과 등 해당 상병 분야 전문의 자격을 가진 자문의사에게 자문을 받도록 했다.

근골격계질병은 전문의 자문은 임상적 소견으로 한정하고 현장 재해조사나 업무관련성 평가는 직업환경의학과 상시자문의사에게 의학 자문을 구하도록 했다. 정형외과 같은 전문의가 업무관련성을 평가하지 않고 직업환경과 의사에게 의학적 자문을 구하도록 한 것이다.

정신질병 인정받으려면 종합병원 가야

정신질병의 산재 인정기준에서 자해행위는 업무상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까지 일부 확대했다. 그런데 재해노동자가 정신질병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 폭이 좁아졌다. 정신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가 주치의 진단서와 회신서, 의무기록, 개인상담 기록을 제출하더라도 임상심리검사 결과가 없거나 제출된 검사 결과가 정신질병 특진의료기관에 해당되지 않으면 특별진찰을 받아야 한다. 특진의료기관은 공단 소속병원이거나 종합병원 이상으로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가진 전문가를 보유한 산재보험 의료기관이다.

하지만 정신질병의 경우 특성상 내밀한 진료를 요하기 때문에 재해노동자 대부분은 대형병원을 찾기보다는 동네병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임상심리검사를 요구하는 것은 의사에게 진단을 받았는데도 물리치료사에게 다시 검사를 받아오라는 방식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임상심리검사는 의사가 아니라 임상심리사가 한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업무상사고와 달리 업무상질병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친다.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는 공단의 재해 현장 조사는 고작 1~2시간 만에 끝난다. 조사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길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산재노동자 10명 중 7명이 생활고를 겪고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공단에 업무상질병 심의 절차를 간소화하라는 주문이 나온다. 공단의 이번 지침에는 국회의 반복되는 주문에 대한 개선 방향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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