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자본은 낯선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의 관행과 제도, 기억은 모두 잊기를 경고드립니다.”

지난해 12월23일 당선을 확정한 직후 내놓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당선소감 중 일부다. 양 위원장이 이끄는 민주노총의 항로는 어떻게 될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노사정 관계자와 전문가 100명에게 올해 가장 주목할 인물을 물었더니 다수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뽑았다. 2019년 1위, 2020년 2위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에 3위로 밀려났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2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불거진 고용충격에 대비하면서 고용노동부의 위신은 정부 안에서도, 사회적으로도 높아졌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4위를 차지했다. 대선이 본격화하는 해라는 점에서 대선주자들의 이름도 순위권에 올랐다.

정부에 경고장 날린 양경수 위원장 압도적 1위

지난달 15일부터 같은달 22일까지 이뤄진 설문조사에서 노사정·전문가 100명이 올해의 인물로 거론(주관식·중복응답)한 이는 모두 67명이다. 가장 주목할 인물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43표를 받았다. 설문조사는 민주노총 결선투표 기간 중 이뤄졌다. 차기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답이 38표, 양경수라는 응답이 5표였다.

민주노총은 정부 집계에 따른 조합원수가 2019년 기준 104만4천여명을 기록해 1노총 위치에 있다. 전임 김명환 위원장은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 1노총으로서 역할을 하겠다며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다. 양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 대신 올해 11월 총파업을 통해 노동자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 새 집행부의 사업은 총파업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들이 민주노총 요구를 공약으로 수용하고, 선거 후 노동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양 위원장은 선거 과정과 당선 후 여러 차례 “총궐기 수준이 아니라 100만 조합원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일부 사업장이 시한부파업을 하거나, 연가투쟁을 하는 등의 기존 형태는 지양한다는 얘기다. 노정 관계는 한동안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동명 위원장은 2위, 문재인 대통령은 3위를 기록했다. 각각 20표, 19표를 받았다.

한국노총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책연대를 유지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갖가지 사회의제를 두고 사회적 대화를 이어 가고 있다. 정부 정책입안 과정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고용 충격을 헤쳐 가는 과정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야에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들이 대거 자리 잡은 상황이어서 국회 입법 논의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국노총의 대정부, 대국회 대응 전반을 진두지휘하는 김 위원장이 2위에 오른 것은 새삼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시작은 창대했던 문재인표 노동정책, 미완의 과제로 끝나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청와대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같은 노동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 논의가 교착하던 상황을 타개한 이도 문 대통령이다. 청와대에서 정기국회 통과를 기대한다는 메시지가 나오고서야 더불어민주당은 입법에 속도를 올렸다.

정부는 선한 의지를 갖고 노동정책을 추진했다지만 노동계 평가는 후하지 못하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물거품이 됐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면서 노동자에게 남긴 상처는 깊다. ILO 기본협약을 비준한다면서 이와 관련도 없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동시에 처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 16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정부는 과연 어떤 노동정책을 펼치게 될까.

4위는 17표를 받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차기 노동부 장관을 꼽은 이(10표)와 이 장관 실명을 써낸 이(7표)를 합한 수치다. 이 장관에 대한 평가, 앞으로 노동부에 거는 기대 등이 설문조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고 두 답변을 더해 계산했다. 이 장관은 노동부 공무원 중 고용보험제 등 고용정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코로나19 고용 충격에서 이 장관 능력은 빛을 발했다. 일자리안정자금 요건을 완화하고,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별도 지원하는 등 고용보험 가입·미가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총선을 맞아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자 정부 차원으로 논의를 이어받았다. 다만 코로나19 고용 충격으로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긴 했지만 집단적 노사관계 등 노동정책을 소홀히 했다는 평가는 피해 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정부 국정과제였던 비정규직 감축을 위한 사용사유 제한 도입,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 개편 등은 손도 대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 해소가 시대의 과제로 떠올랐지만 포괄임금제 개선 대책도 묵혀 두고 있다. 10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노동부 차관을 했던 임서정 청와대 일자리수석도 2표를 받았다.

선거의 계절, 대선주자들이 달린다

올해는 선거의 해다. 4월에는 서울시장·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열린다. 내년 3월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하반기에는 각 정당 대선후보 경선이 예상된다. 설문조사에서도 권력재편기 상황이 투영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4표를 받아 5위에 선정됐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9표)는 뒤를 이은 6위에 올랐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대선후보’라고 응답한 이도 6명이 나와 8위를 기록했다. 서울시장 당선자와 윤석열 검찰총장은 각각 5표를 받아 공동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재명(5위), 이낙연(6위), 대선후보(8위), 서울시장 당선자·윤석열(공동 9위) 등 선거와 관련돼 지목된 인물이 5명이나 된다.

<매일노동뉴스> 조사에서 노동·경제 문제와 별 인연이 없는 인물이 올해 주목할 인물로 선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문성현 경사노위원장은 7위로 지난해(공동 5위)에서 두 계단 내려왔다. 7표를 받았다. 경사노위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보건의료체계 강화, 관광산업 고용안정, 배달노동자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근로자대표제도 개선 등 많은 사회적 합의를 했다. 사회적 취약층이 경사노위 문을 두드렸고, 정부와 연결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노동계 한 축인 민주노총이 불참해 미완성 상태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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