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소속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집단해고를 규탄하고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수십 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환경을 바꾸려 노조를 만들었던 간접고용 청소노동자들이 집단해고 위기에 놓였다.
3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지부장 장성기)에 따르면 LG트윈타워 청소용역업체 ㈜지수아이앤씨가 지난달 30일 “용역계약 해지”를 이유로 청소노동자 80여명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같은날 한국거래소 청소용역업체 ㅇ사는 만 65세 정년도래자 9명에게 근로계약기간 만료를 통보했다. ㅇ사 노사는 지난 4월 “회사는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중, 정년·근무평가 등의 이유로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본합의서를 체결했지만,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조건과 처우를 개선할 권한이 있는 원청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간접고용 청소노동자의 투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실제 두 사업장 원·하청업체가 간접고용 청소노동자를 대하는 모습은 놀라우리만치 유사하다. 지수아이앤씨 원청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과 ㅇ사 원청인 한국거래소는 각각 업무방해·집회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사업장 내 쟁의 행위시 200만~1천만원을 내라”는 엄포에도 청소노동자가 생활임금 보장·정년연장이라는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이어 나가자 ‘해고’를 통보했다.
원·하청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선 언제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집회금지 가처분신청하던 원청,
용역계약 해지 결정?”


“토요일에 임금도 못 받고 일했어요. 그렇게 하라면 그래야 되는 줄 알고요. 무시당하고 착취 당하고 노예처럼 일했어요. (관리자는) 플래시 비추면서 화장실 청소한 것 감시하고 다녔어요.”
3일 오후 LG트윈타워 앞에 선 청소노동자 김진하(63·가명)씨의 눈에는 매서운 바람 탓인지 눈물이 고였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노조를 만든 뒤 이들이 제출한 주요 요구는 생활임금 보장과 정년연장이다. 지수아이앤씨 내규에 따르면 정년은 만 60세지만 이후 노동자 건강상태·근태를 고려해 1년씩 계약을 연장한다. 노동자들은 만 60세를 넘으면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해한다.
노조와 회사는 지난해 11월부터 2020년 임금·단체교섭을 해 왔지만 회사가 ‘시급 60원 인상’ 외 대안을 내놓지 않아 지난 4월 교섭이 결렬됐다. 노동위원회 조정 결렬 후 간헐적으로 진행된 교섭에서도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노조가 LG트윈타워 앞에서 51일째 천막농성을 하며 투쟁을 이어 가자 회사는 12월31일부로 ‘근로계약 해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장성기 지부장은 “구광모 회장과 지수아이앤씨는 친족기업으로 구광모 회장의 지시가 없다면 용역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다”며 “이 사태의 책임은 분명히 구광모 회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지수아이앤씨는 구광모 LG회장의 두 고모가 운영한다. LG그룹 100% 출자 자회사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과 계약하고 올해까지 10년간 용역업무를 수행했다.
노조는 “지수아이앤씨 관리자들은 청소노동자와 개별면담을 하며 위로금을 줄 테니 사직서에 서명하라고 했다”며 “노조를 분열하려는 회사의 술수”라고 비판했다.
지수아이앤씨 관계자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으로부터 지난 23일 저녁 더 이상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노조와) 교섭을 하면서도 청소상태에 대한 고객사 입주민들의 불만이 고객의 소리를 통해 접수됐고, 교섭 중에도 품질 유지를 요청했지만 유지가 안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이 매년 서비스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10년 동안 잘해 왔지만, 올해 평가가 가장 낮게 나왔다”고 덧붙였다.
 

강예슬 기자
▲ 강예슬 기자

“애써 얻은 노동조건,
용역업체 변경되면 말짱 도루묵”


한국거래소 노동자들은 지난 4월 한국거래소가 용역업체를 바꾼 뒤 문제가 생겼다. 한국거래소와 용역업체 ㅇ사가 최저임금 기준으로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그간 노사합의로 쌓은 성과물은 말짱 도루묵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청소노동자이자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한국거래소분회 조합원인 이선주(56·가명)씨는 “2019년에 시급 8천800원으로 협상했으니 입찰할 때 그 금액 기준으로 하면 되는 것인데, 최저임금 기준으로 입찰하는 게 말이 되냐”며 “싸워서 시급은 지켜 냈지만, 유급휴가와 보건휴가·상여금 모두 없어졌다”고 답답해 했다.
지부와 ㅇ사가 2020년 임금·단체교섭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가운데 ㅇ사는 지난달 30일 청소노동자 9명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했다. 분회는 교섭에 돌입하기 전인 4월 체결한 기본합의서를 사측이 어겼다며 반발하고 있다.
ㅇ사는 다른 노조 소속 정년 도래자 2명에게만 근로계약만료 통보와 함께 “건강진단서(보건소) 제출시 건강상태 및 인사평가를 검토하며 1년 촉탁계약으로 정년을 연장할 수 있음”이라고 단서 조항을 넣었다. 다른 노조와 2020년 해당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게 이유다. 지부는 “복수노조와 다른 내용으로 명백한 차별을 두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지적했다.
ㅇ사쪽은 “고용유지 조항은 노사 간에 성실한 단체교섭을 진행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는 것으로, 성실한 단체교섭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정당한 인사권(정년을 이유로 한 근로계약종료 통보) 행사마저 금지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개별교섭 중인 사측에게는 공정대표의무 위반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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