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만에 진행된 투표에서는 야당 의원들을 제외한 175명이 투표에 참석해 173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13년간 유예된 끝에 본회의를 통과하던 날, 국회는 이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2010년 1월1일 이 시간을 기억해 달라. 누가 다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누가 찬성표를 던져서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기억해 달라”며 울분을 토했다.
개정 노조법, 올해 노사관계 압도
노조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올해 1년 노사관계를 결정짓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노·사·정 리더들은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노조법 통과'를 2010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노조법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를 올해 7월부터 도입하고,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1년6개월 유예(2011년 7월 시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수노조의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가 쟁점이었다.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로 새 노조법은 노사관계에 폭풍우를 일으켰다. 사업장 노사는 사업장대로, 중앙의 노사는 중앙대로 맞부딪혔다. 기업에서는 7월 타임오프 제도 시행을 앞두고 단체협약을 유리하게 맺으려는 노사가 힘겨루기를 벌였다. 사용자들의 단협해지가 잇따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노동과 총자본은 타임오프 한도를 결정하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대결했다. 타임오프 한도는 곧 노조를 이끄는 유급 전임자수를 결정한다. 때문에 한도를 놓고 노사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근면위는 그러나 대립을 조정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급기야 5월1일 새벽 근면위는 타임오프 한도를 표결에 부쳐 처리했다. 노동계 위원들의 출입을 막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국회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사전에 작전을 짰다는 문건도 폭로됐다. 논의는 길었지만 처리는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노동계는 처리시한인 4월30일이 지났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을 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노동부는 타임오프 한도 적용 매뉴얼을 내놓았다. 이를 어기는 사업장은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조정자 역할을 벗어던지고 직접 필드에 나서기도 했다. 노동부는 경상도와 충청도 등에서 잇따라 단협 시정명령을 내렸다. 대부분 노조가 금속노조 소속이었다. 금속노조는 파업을 벌였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단식을 감행했다. 노동부는 타임오프 제도가 안착됐다고 평가했지만 노사관계는 불안했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구미의 KEC에서 사고가 터졌다. 타임오프를 사용할 전임자수를 놓고 교섭에 난항을 겪더니, 파업과 직장폐쇄가 이어졌다. 130여일을 파업을 벌이던 노동자 200여명이 공장을 점거하고 교섭재개를 요구했다.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은 경찰이 교섭장에 나온 노조간부에 대한 체포작전을 벌이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경찰진압에 격분한 김준일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이 분신을 시도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다”던 권영길 의원의 우려가 실제상황이 된 셈이다. <매일노동뉴스>의 '2010년 10대 노동뉴스' 설문조사에도 이런 사정이 그대로 반영됐다.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 핵심 의제로 떠올라
대법원은 지난 7월22일 현대자동차에서 사내하청으로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간주한다고 판결했다. 자동차 조립·생산 작업이 대부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 방식으로 진행되고, 사실상 현대차의 통제를 받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법조계는 대법원의 판결을 “사내하청 관행에 제동을 걸었던 판결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했다. 법원이 간접고용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법원의 판결은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8월26일 서울중앙지법은 2006년 불법파견 논란으로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KTX 승무원들을 한국철도공사 소속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당시 KTX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외주회사 직원이었는데, 공사가 애초부터 직접고용을 약속한 뒤 채용했고 작업을 직접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파견근로를 시켰다는 것이다. 8월 판결은 무려 4년여 만에 불법파견의 실마리를 푸는 단초를 마련했다.
지난달 12일에는 서울고등법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번에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판결문에는 의장·차체·엔진 등 대부분 공정에서 불법파견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올해 대미를 장식한 판결은 창원지방법원에서 나왔다.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데이비드 닉 라일리 전 GM대우 사장에게 원심을 뒤집고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판결이다.
일련의 불법파견 판결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단비가 됐다. 당장 소송을 진행했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움직였다. 하청업체 폐업에 반발하며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300여명이 울산승용1공장을 점거했다. 지난해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옥쇄파업을 벌였던 쌍용차 노동자들이나 KEC 노동자들의 뒤를 이은 셈이다.
현대차는 그러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급기야 민주노총이 주최한 정규직화 결의대회에서 금속노조 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황인화(33)씨가 분신을 시도했다. 황씨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노동자는 하나다”고 외쳤다. 정규직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도 농성 노동자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중재에 나섰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파업 25일째인 이달 9일 농성을 풀고 회사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2천일 가까운 농성을 벌였던 기륭전자 파견노동자들의 복직과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복직합의도 나왔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2005년 7월 노조를 만들자마자 집단으로 해고됐는데, 우리나라 파견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을 온몸으로 알렸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 9명도 회사와 복직에 합의했다. 며칠 뒤 열린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 전에 정부가 문제소지를 없애려 한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남북관계 초긴장, 인권추락 덮어
지난달 23일 오후 2시34분부터 1시간여 동안 북한군이 연평도에 해안포 100여발을 발사했다. 이날 공격으로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충격은 컸다. 휴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를 공격한 데다, 민간인 희생자가 나왔다는 점, 무엇보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줬다. 연평도 포격은 남북관계를 초긴장 상태로 몰고 갔다.
공포감은 순식간에 다른 이슈을 지워 버렸다. 포격이 있던 날 민주당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국정조사와 특별검사를 요구하며 서울광장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대포폰까지 만들어 사찰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다는 이른바 ‘대포폰 게이트’를 여론화하기 위해서였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뿐만 아니라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YTN과 같은 언론계까지 불법사찰했다는 증거도 드러났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연평도 포격 직후 천막농성을 접었다. 항간에는 ‘대포로 대포폰을 날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불법사찰 문제처럼 올해도 인권과 관련한 논란이 잦았다. 5월에는 우리나라 인권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방한한 프랑크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을 국가정보원이 미행했다는 의혹까지 일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인권위원들이 릴레이 사퇴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가 파업을 벌였다. 이들 방송사의 파업은 올해의 사건 7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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