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일만에 도출됐던 포항건설노사의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지난달 12일 전문건설업체들이 제시한 ‘최종안’에서 문구정도만 수정됐던 이번 잠정합의안에 대해 당시 노조는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개악안”이라며 크게 반발했지만 최근 조합원 이탈 등 조직상황을 고려해 교섭을 재개해 지난 10일 노조가 수용했다.

그렇다면 포항건설노사가 잠정합의한 올해 임단협안이 어떤 문제를 지녔기에 당시 노조가, 그리고 조합원들이 이를 거부한 것일까.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단협 제27조 인사원칙이다. 기존 단협에는 ‘회사는 작업자 채용시 조합원을 우선으로 채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언론에서 ‘독점적 노무공급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작업현장에서 건설노동자를 채용할 시 비조합원과 조합원 중 조합원을 우선채용하도록 한 조항이다. 즉,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에게 일종의 권익을 부여해 전문건설업체들이 노동자를 채용할 경우 노조가 단협에 근거해 조합원을 우선채용하도록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잠정합의한 단협안에서는 ‘회사는 작업자 채용 시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달리 말하면, 회사가 비조합원을 채용하더라도 노조가 단협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문제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한 것.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정책부장은 “상시적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 건설일용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항상 놓여 있는데, ‘조합원 우선채용’ 조항은 건설일용노동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또 지역건설노조는 이를 기반으로 노조존립의 근거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역건설노조는 이러한 힘을 기반으로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안전, 임금체불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 조직 확대를 꾀할 수 있어 노조활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포항건설노조 뿐만 아니라 타워크레인기사노조, 건설운송노조 덤프분과 등 비정규직 건설일용노동자들로 구성된 대부분 지역건설노조의 경우 ‘조합원 우선채용’ 조항이 단협에 명기돼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조항은 제58조 평화조항이다. 전문건설업체들은 ‘노사쌍방은 협약내용을 성실히 준수해 셧다운 현장 등에서 추가공수 등 어느 일방의 부당한 요구가 있을 시 어느 일방이 노측일 경우는 조합이, 사측일 경우는 협의회가 책임진다’는 조항을 요구했다.

셧다운(Shut Down)은 원래 가동되던 공장을 멈추고 일정 기간동안 실시하는 신·개축 공사를 일컫는데 생산이 중단되기 때문에 전문건설업체들은 최대한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평소작업시간을 연장해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전문건설업체들은 평소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돼 있는 근무시간을 오후 12시까지 연장하는데 이럴 경우 하루 일당의 2배 내지 3배를 지급했다.

건설노동자들 역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지만 일년 평균 8개월 정도 근무할 수밖에 없는 건설현장에서 목돈을 쥘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한 노동시간을 참고 일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잠정합의된 평화조항으로 인해 이제 노사는 법에 명시된 것 이상의 추가공수를 줄 수도, 요구할 수도 없게 됐다. 법에는 연장근로시 1.5배만을 지급하도록 돼있기 때문에 사실상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임금이 그만큼 삭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

최명선 정책부장은 “그동안 현장에서 추가공수 등에 대해서는 조합원들과 전문건설업체들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게 됐다”면서 “추가공수는 사실상 연장수당의 개념으로만 해석하기보다는 위험수당이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장장 16시간의 노동은 평균 나이 45세의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는 사실상 무리한 근로시간이라는 것. 따라서 목돈을 벌기 위해 노동자들은 그만큼의 위험을 그동안 감수해왔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된 조항은 제42조 교섭대표 선정이다. 기존 단협에서는 ‘사용주쪽 단체교섭 대표는 전년 일년간 총 연인원 최고순위 1순위에서 10위까지에 업체대표를 구성하여 참석하며 변경시 반드시 노조와 합의하에 교섭대표를 선정한다’고 돼 있으나 이번에 잠정합의한 조항에서는 ‘노사교섭대표는 노사 각각 선정한다’고 돼 있다.

이는 전문건설업체에 고용된 인원수를 두고 교섭대표를 선정하는 것은 그만큼 그 업체의 규모나 건설현장에서 지니는 영향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노사간 체결한 단체협약 적용의 파급성이 크다는 의미를 지닌다.

최명선 정책부장은 “결국 이번 잠정합의안은 회사쪽이 노조의 조직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제안한 안이었으며 장기간의 파업으로 생계가 곤란해 더이상 투쟁을 지속시킬 경우 조직력의 와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노조 집행부가 ‘개악된’ 잠정합의안을 심사숙고해 받은 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조합원들은 ‘개악된 잠정합의안’을 가지고 현장으로 복귀할 경우 18년간의 노조역사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판단해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킨 것 같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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