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연맹 출범 17년만의 일이다. 레미콘, 덤프, 플랜트 등 각각의 건설현장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 ‘차라리 죽여라’라고 외치긴 했지만, 연맹 깃발 아래 각각의 건설노동자들이 업종과 지역을 넘어 대규모 투쟁을 벌이기는 처음이다.

11일 오후 2시 서울 곳곳에서 부문집회를 마치고 모인 건설노동자들이 대학로 8차선 도로에 자리를 잡는다. 10일부터 파업에 들어가 서울 집중투쟁을 벌이고 있는 타워크레인기사노조, 32일간 대구지역 건설현장을 멈췄던 대구경북건설노조, 포항과 광양, 울산과 여수에서 올해 공동투쟁을 벌이고 있는 플랜트노조들까지.


◇ 파업 끝난 대구경북건설노조도 = 대구경북건설노조의 파업이 끝난 후 망치를 잡은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김홍진(59)씨는 하루 일당 10만5천원을 포기하고 이곳을 찾았다. 32일간의 파업에 참여했던 그의 얼굴이 기자가 대구에서 봤을 때보다 환하다. “현장에 복귀하니까, 현장소장도 그렇고 주위 동료도 대하는 것이 냉랭해, 그래도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아직 사측과 합의한 임금인상분이 지급되진 않지만 합의서를 지키도록 앞으로도 현장에서 계속 싸워야 해.”

임금을 제외하고는 다단계하도급 문제나 1일 8시간 노동 등 노동조건이 여전히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김씨는 “내가 20년을 건설현장에서 참고 살았는데, 이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참지 않을 거야”라며 “정부와 원청사는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 태풍 부는데도 일하라고? 타워크레인기사노조도 = 지난밤 서울 경기대학교에서 하루 밤을 보낸 타워크레인기사노조 조합원들도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올해로 12년째 타워크레인을 조종하고 있는 김영숙(45·여)씨는 “최근 노동부가 20m/sec 초과시에 운전작업을 전면중지 하도록 관련규정을 개정하겠다고 하는데, 부산에서 타워크레인이 쓰러졌던 태풍 매미 때 풍속이 24m/sec 였다"면서 "결국 태풍과 같은 바람이 불어도 계속 일을 하라는 거 아냐"라고 되물으며 정부의 방침을 지적했다.

김씨는 “오전 7시, 70~100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안전장비 하나 없이 올라갔다가 점심 때 한번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서 그 하늘 위에서 살아, 화장실 문제부터…, 그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다 이야기해”라며 손사레를 친다.


◇ 지난해에도, 올해도 파업, 울산건설플랜트노조도 =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수건을 들고 지난해 거리에 나섰던 울산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 700여명도 이날 집회에 참여 했다. 1년 전과 똑같이 올해도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로 25년째 건설현장에서 일했다는 박종선(57)씨는 지난해 파업에 이어 올해도 파업에 동참했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은 이날 현재 6일째를 맞고 있다.

“작년 파업에 동참하고 나서 객지로 떠돌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려고 울산으로 다시 왔다”는 그는 “지난해 울산시청이랑 원청사, 전문건설업체들이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공수표였다”고 비난했다. 박씨는 “또 싸워서 바꿔야지, 조만간 울산에서 좋은 소식 들려줄 테니 기다리라”고 힘있게 말했다.

건설산업연맹이 이날 대회에서 대정부 요구안으로 밝힌 내용은 모두 8가지다. 다단계 하도급 폐지를 비롯해 △무분별한 외국인력 도입 반대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건설인력 육성대책 마련 △노동시간 단축 △안전보건 대책 마련 △덤프·레미콘 수급조절 △건설산업 시장개방 대책 마련 등이다.

체불임금 1위, 산재사망 1위, 노동시간 1위 등 악조건의 건설현장에서 수년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쳐왔던 건설노동자들은 이날 '2006년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업종과 지역을 넘어 한 목소리로 선언한다. "이제는 참지 않고 함께 우리들의 권리를 찾겠다"고.

다단계하도급 근절 등 제도개선 시급
플랜트, 덤프, 형틀목공 등 건설노동자들이 대정부 8대 요구안 수용을 촉구하며 11일 대규모집회를 했다. 남궁현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사진>은 “지난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울산건설플랜트노동자, ‘차라리 죽여라’라고 외친 덤프노동자들의 투쟁이 올해 대구경북건설노조의 32일간의 파업으로 이어진 것”이라면서 “누적된 건설현장의 부조리를 바꾸기 위한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제 하나로 모아 대정부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대규모 투쟁의 의미는.
“2001년 레미콘노동자들의 투쟁부터 최근의 대구경북건설노조의 파업까지 지금까지 수차례 정부를 상대로 건설현장의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제기되는 요구들은 당시에도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이 다단계하도급 철폐, 노동시간 단축, 산업안전 보건 대책 마련 등이다. 오늘은 건설현장 안에서도 직종이 달라 각각 투쟁해 오던 건설노동자들이 이제 하나로 모여 공동의 요구를 걸고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에 나설 것을 선포하는 자리다.”


- 8대 요구안 등 대정부 교섭이 진행돼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단계하도급 근절,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건설현장 노동시간 단축 등 대정부 요구안을 만들어 지난 5월부터 노동부, 산자부, 재경부, 건교부, 법무부 등 5개 부처에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5개 부처 모두 실무교섭만이 진행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유의미한 답변들을 듣지 못했다. 특히 노동부의 경우 노동안전 문제와 특수고용직 노동3권 등에 대해서 요구하고 있는데, 건설현장에 대한 이해도 떨어질뿐더러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건교부가 더 적극적이다.”


- 이후 투쟁은.
“건설현장의 부조리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구속과 수배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 상경투쟁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대정부 투쟁과 교섭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건설노동자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시 제2, 제3의 투쟁을 만들겠다. 정부는 극단의 현실에 처해 있는 200만 건설노동자의 8대 요구에 대해 시급히 제도개선 방안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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