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처리가 또 유보됐다. 법사위는 21일 법안을 상정했으나 대체토론만 하다가 계류시켰다.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과 사실상 연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5일로 예정된 양당 정책협의회 결과에 따라 비정규직법은 오는 27일 또는 2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다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28일까지 법사위를 통과할 경우 비정규직법은 5월1일이나 2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날까지도 법사위를 통과하지 않으면 4월 국회 회기 내 처리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여당, 법사위 점거(?) 하다

지난 21일 아침 일찍부터 국회본청 4층 법사위 회의장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오전8시를 갓 넘겨 우윤근, 정성호, 김영주, 이은영 등 여당 법사위원 4명이 회의장에 들어가 안쪽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환노위 소속인 김영주 의원은 몸이 아픈 선병렬 의원 대신 법사위에 배치됐다. 이들 의원들은 민주노동당이 지난 14일처럼 법사위를 점거할 것에 대비, 회의장 확보 차원에서 미리 점거(?)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

이 시각,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국회본청 2층 의정지원단에서 의원단총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총회를 마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여당이 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8시40분께 급히 법사위 회의장으로 향했다. 법사위원인 노회찬 의원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약 1시간 동안 회의장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이같은 대치는 9시40분께 안상수 법사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일단락됐다. 민주노동당은 여당이 선점하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상정까지는 했지만

안 위원장은 “오전10시부터 법사위를 열겠다”며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참관을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참관을 시도하며 회의장에 들어오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또 법안은 상정하고 대체토론을 해봐야 의결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약 40분간 비공개 면담을 가진 직후 안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배석을 허용했다.

곧이어 열린 법사위에서 안 위원장은 비정규직법을 일괄 상정했다. 장윤석 한나라당 간사는 “25일 양당정책협의회 이후인 27, 28일 법사위에서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절차적 정당성보다 내용적 정당성이 중요하다”며 “환노위에서도 토론을 통해 이견을 많이 좁힌 만큼 얼마 남지 않은 이견을 좁히기 위해 최대한 심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이어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법안 제안설명을 하고, 전문위원이 검토보고를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대체토론을 거부하고 자리를 떴다. 여당 의원들만 대체토론에 참여했다.

낮 12시께 대체토론이 끝나자 안상수 위원장은 “다수인 여당 의견만 듣고 소수인 야당 의견을 듣지 않은 채 회의를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며 법안 계류와 정회를 선언했다. 여당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오후 2시부터 속개된 법사위에서도 비정규직법은 다뤄지지 않았다.

'인질극', 언제 끝날까

법사위에 상정, 계류 중인 비정규직법은 이르면 오는 27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다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사위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열쇠는 한나라당이 쥐고 있다. 오는 25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정책협의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비정규직법 처리 등 쟁점 법안들의 향배가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두 당이 여러 쟁점에 대한 일괄 타결하면 비정규직법도 즉시 처리될 것이다. 일괄타결이란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사학법 재개정을 여당이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여당이 사학법 재개정에 동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학법 재개정 협상이 결렬되면 비정규직법의 4월 국회 회기 내 처리도 힘들어진다.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비정규직법 처리에 동의해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당이 처리를 강조하면 할수록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인질’에 해당하는 비정규직법의 ‘몸값’은 높아진다. 이것은 지난 1년 반 동안 비정규직법이 국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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