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최근 사학법 재개정과 비정규직법 등 쟁점법안들을 일괄처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따라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과 3·30부동산대책 후속법안 등 주요법안들의 각 상임위 처리가 중단됐다.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과 이들 법안들을 사실상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초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본회의 직권상정 처리를 이유로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국회가 1월말까지 파행됐다. 새로 당선된 이재오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표 중심의 장외투쟁 일변도를 비난하고, 이어 1월30일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북한산 회담을 가졌다. 당시 이재오 대표는 여당에게 사학법 재개정에 나서 줄 것을 주문했다. 여당은 재개정 논의에 동의했다. 국회는 곧 정상화됐다.

한나라당은 여당과 합의한 대로 이재오 의원의 대표발의로 2월24일 재개정안을 제출했다. 재개정안은 교육위에 상정, 교육위 법안소위에 회부됐다. 한나라당은 여당에게 4월 회기 내 재개정안 통과를 요구했다. 여당은 확약할 수 없다고 맞섰다.

4월 국회가 막바지에 이르자 한나라당은 여당을 압박하기 위해 실제 행동에 나섰다. 덕분에 지난 20일 이후 국회 각 상임위에서는 주요 법안들이 의결만 남겨둔 채 중단됐다. 비정규직법도 법사위 의결만 남겨둔 채 21일 심의가 중단됐다.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중시하는 이유는 사학법이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내부의 파워게임의 소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오 대표는 오는 7월 한나라당 대표에 출마할 계획이다. 당대표가 된다는 것은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군에 오른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사학법 재개정을 고리로 박 대표가 이끌던 ‘엄동설한 장외투쟁’을 중단시켰다. 이 상황에서 사학법 재개정에 실패할 경우 이 대표의 정치적 상처는 불가피하다. 대표 선거에서도 ‘빨간불’이 켜진다. 따라서 이 대표에게 사학법 재개정은 자신의 정치적 활로를 판가름하는 중대 사안이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이 대표는 여당으로부터 4월 회기 안에 사학법 재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는 확실한 보증을 받지 않는 한, 비정규직법을 포함한 모든 쟁점법안들의 처리를 중단시키는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쟁점 법안들의 4월 처리가 줄줄이 무산될 판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여당이 사학법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을 자극하는 비정규직법 처리를 사실상 미뤘다. 하지만 4월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 처리를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여당에게 사학법 재개정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비정규직법의 처지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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