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공장진격투쟁’이 무위로 돌아갔다. 회사측은 세제를 푼 물대포를 난사하며 비교적 여유있게 공장을 방어했다. 압도적인 수적 우세가 아니고서는 공장 정문을 밀치고 들어가 고공농성단을 구출하고 공장 안에 다시 투쟁의 거점을 만든다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게 증명됐다. 적어도 ‘강력한 연대투쟁’이라는 ‘마창노련의 정신’이라도 보여 회사측에 강한 인상을 남겨야 했으나 투쟁 현장에서 터지고 만 분란은 이마저도 어렵게 만들었다.

대신 회사는 두 번의 진격투쟁을 막아내면서 노동계의 역량을 적나라하게 파악했다. 기껏해야 500명, 그것도 흔쾌하게 진격투쟁에 합의하지 못한 시위대의 진격투쟁은 한번 ‘밀어붙이기’에 지나지 않음을 놓칠 리 없다.


이런 상태에서 회사는 교섭에 적극적일 필요가 없다. 고공농성 초기 ‘선 안전펜스 설치, 후 교섭’ 입장을 고수했던 회사는 지금 ‘선 농성 중단, 후 교섭’으로 돌아섰다. 회사는 31일 창원사업본부장 명의의 담화문에서 “조속한 문제 해결을 바라나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며 “협상 분위기 형성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농성을 중단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돌이켜보면 권순만 지회장 등 고공농성단의 예측이 그대로 적중했음을 알 수 있다. 고공농성 초기 안전펜스 설치 논란이 일 때 권 지회장은 “이미 우리의 요구안을 거부한 회사가 안전펜스를 설치하면 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기만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교섭단 구성과 관련해서도 노동계는 당사자인 창원비정규직지회의 참가를 당연시하고 있지만 회사는 창원비정규직지회는 물론 민주노총 경남본부나 금속노조 경남지부 등 상급단체의 교섭 참가에도 부정적이다. 오직 대우차노조와만 특별노사협의회의 연장선에서 교섭에 임할 수 있다는 게 회사측 입장이고, 이는 노동계의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회사가 교섭의제로 고공농성단이 요구하는 △희망자 전원 원직복직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철회 △지회 활동 보장 등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교섭이 이뤄지더라도 특별노사협의회에서 회사측이 제시한 최종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대우차노조 본조나 창원지부도 회사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지난해 9월30일 (주)대정이라는 불법파견업체가 폐업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창원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다. (주)대정의 비정규직들은 창원공장에서 가장 막강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창원공장 외 부평공장과 군산공장에는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이 없다. 대우차노조 창원지부 한 전직 임원은 “회사가 비정규직 해고자들을 이처럼 탄압하는 것은 가장 강한 곳을 시범케이스로 조져 창원공장은 물론 부평공장과 군산공장의 비정규직 조직화 움직임까지 차단하려는 것”이라며 “이것을 외면하고 초기부터 회사와 협상 운운한 상급단체와 정규직지부의 태도는 기만”이라고 평했다.

결국 창원비정규직지회의 처지와 명확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상급단체와 정규직지부는 교섭에 전혀 의지가 없는 회사를 붙잡고 늘어졌고, 회사가 말을 바꾸는 순간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6개월의 천막농성끝에 그야말로 ‘벼랑끝’의 심정으로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고공농성을 선택했지만 지금 주도권을 완전히 회사에 뺏기고 말았다. 한 창원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우리의 목소리가 이렇게 상급단체조차 울리지 못할 줄은 몰랐다”며 “투쟁만을 외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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